신문을 받자마자, 1면의 화사한 색감의 그림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푸른 하늘과 분홍 벚꽃을 그린 그림은 솜사탕 같기도 하면서 나에게 봄이라는 계절을 인식하게 했다. 평소 신문은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홍대신문의 1면은 그와 반대로 나의 감성을 자극했다. 신문은 봄을 맞이하여 학교 근처의 숨은 벚꽃 명소 소개에 관한 기사로 문을 열었다. 최근 여의도에 갔다가 사람들 틈에서 정신없이 벚꽃을 보고 왔던 기억이 있던 터라, 학교 근처의 숨은 명소에서 잔잔히 봄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신문을 받자마자 보이는 헤드에서 학교 홈페이지 변경 보도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구석에 위치해 있더라도, 필자의 전공인 컴퓨터 공학과 관련되어 눈에 띄었을 터였다. *프론트엔드 작업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저렇게 큰 변화라면 개발자가 무척 고생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생을 안겨 준다. 웹 페이지를 새로 만드는 개발자뿐만 아니라, 새로운 **UI에 적응해야 하는 학생에게도 수고가 따른다. 이런 생각에서 다음 기사들을 자연스레 ‘변화’의 측면에서 살피게 됐다.2면에는 ‘무전공 입학 확대’라는 변화에
모든 기록은 역사다. 당신이 그것을 원하든 원치 않든, 기록했다면 일단 그것은 역사가 된다.이는 얼마 전 필자가 전공 수업에서 들은 말이다. 필자는 홍대신문에 투고글을 부탁받고 신문을 집어 읽는 내내 이 문장이 떠올랐다. 신문은, 언론은 빠르고 분주하게 현재를 현재에게 실어 나른다. 이들의 기록에는 현재의 욕망이, 불만족이, 행복과 불행이 묻어있다. 일직선의 시간을 상상해 보자. 현재의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미래로밖에 나아갈 수 없다. 이들에게는 속도와 방향의 선택권조차도 없다. 좋든 싫든 미래로 이를 악물고 나아가야만 하는 현재의
홍익의 교정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어섰지만 아직도 교정 곳곳에 스며 있는 추억들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까맣게 잊고 있던 대학 시절의 추억들이 친구나 동문들을 통해 가끔씩 소환될 때면 20대의 미숙하면서도 빛났던 젊음의 순간들이 다양한 장르의 청춘 영화로 반복 재생된다. 대학 시절의 모든 경험과 만남은 누군가의 기억을 통해 끊임없이 재확인되고 더해지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내 인생의 큰 자양분이 되고 있다. 그러던 중 나는 나의 모교에 다니고 있는 제자가 전해준 홍대신문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홍익에서 지냈던 소중했
홍익대학교에서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는 친구를 보면서 필자도 언젠가는 보고서 같은 양식의 글만 쓰기보다는 신문 기사 같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떤 주제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잘 몰랐는데 이번에 ‘홍대신문을 읽고’ 라는 투고글을 부탁받아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먼저 1면에서는 학생들이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를 다룬 기사가 눈에 띄었다. 해당 기사들은 학교 기숙사 및 등록금과 같은 학교 내부의 문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홍익대학교는 이원화 캠퍼스로 운영되는 대학교로 서울캠퍼스와 세종캠퍼스로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현진건(1900~1943)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상징하는 명대사다. 주인공 김첨지가 아내가 먹고 싶어 하던 맛있는 설렁탕을 사 왔지만, 아내가 죽어 먹지 못하자 비탄하면서 한 말이다. 신문을 펼쳐보자마자 해당 구절이 생각났다. 지면 신문 및 대학 언론의 위기 속에서 『홍대신문』을 읽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 텐데, 이 좋고 재밌는 걸 왜 읽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에서다.필자가 학보사의 편집장이라 그런가, 본지의 1면은 보자마자 감탄부터 나왔다. 보통 학생회나
학교를 떠나 직장생활을 시작한 겨울의 첫날, 친한 동생이 손에 쥐고 온 『홍대신문』을 건네받아 읽게 되었다.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기에 신문 속 모두가 모르는 사람일 거라 생각하니 괜스레 더 마음 편히 읽게 되는 심리는 무언가. 멋들어진 글씨체로 적힌 제목으로 문을 연 뒤, 헤드, 보도기사, 단신, 인터뷰를 지나 사진 기획으로 매듭지은 한 덩이의 신문을 읽으며 든 짤막한 생각을 나눈다.신문의 맨 앞과 맨 뒤를 채운 ‘홍익패션위크 2023’ 기사에서는, 자칫하면 지나칠 수도 있는 그 작품들을 그려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홍익대학교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에게 투고글 부탁을 받았다. 평소 신문을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오랜만에 기사를 읽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가장 먼저 5면의 ‘사진 기획’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역사적인 장소라고 하면 경복궁이나 박물관 등 객관적인 역사 또는 유물 등이 있는 곳을 방문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장소들을 찾아간다는 것이 매우 새로웠고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장소들이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것도 잘 몰랐기에 사진으로 생생하게 직접 볼 수
어느 비 내리던 날에 친구가 건네준 회색 종이 신문. 본가에서도 구독을 끊은 지 오래인 종이 신문을 이렇게 다시, 그것도 나와는 연이 없던 『홍대신문』을 만나니 기분이 새로웠다. 신문지 특유의 냄새와 감촉이 나를 반겨주는 듯했다. 가장 먼저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얼마 전 있었던 홍익대학교의 가을 축제의 한 현장을 담은, 맨 앞장의 큼지막한 네 장의 사진이었다. 신문 너머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듯 하나같이 열정적인 모습들이었다. 연예인 초청 무대, 축제 버스킹, 디제이 페스티벌, 그리고 주점 부스.사실은 주점 부스 사진밖에 보이지
‘4년 만의 대동제, 좋지 아니한가?’ 제자가 건네준 『홍대신문』이 내게 물은 처음 질문이었다.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말을 되새기는 한편, 신문의 종잇장 소리를 즐기며 지면을 넘겨 보았다. 교사인 내게 4면의 은 집중할 수밖에 없는 기사였다. ‘채용은 감축, 정원은 동결?’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다룬 대학 신문의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교육이라는 내용적 측면에 더해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에 골몰하며 울부짖는 우리에게 『홍대신문』은 교육계가 나아가야 할 방면을 하드웨
올해 『홍대신문』을 접하기 전까지 약 3년간 종이 신문을 읽지 않았다. 종이신문 시장은 점점 작아지고, 실시간으로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인터넷 기사가 중심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오랜만에 만난 종이 신문이기에 가끔 생각날 때마다 『홍대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그런 필자에게 『홍대신문』의 감상평을 적을 기회가 우연히 주어져 이 글을 쓰게 되었다.『홍대신문』을 읽고 나서, 대학신문은 교내 소식 위주로만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필자의 편견이 깨졌다. 학교 관련 소식 이외에도 여러 기획 기사와 인터뷰까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놀랐다.
신문이 발행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기획 회의에서 해당 호에 들어갈 내용을 선정하고, 기획 기사의 경우에는 몇 주 전부터 취재를 시작하기도 한다. 그 후 선정된 내용을 바탕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고, 지면을 편집해 작성된 기사를 배치한다. 기자들의 노력이 담기지 않은 곳이 없고, 편집국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신문 한 호가 발행되기까지의 신문사 기자들의 노력은 감히 끝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홍대신문의 경우 그 노력이 더욱 대단하다. 매주 12면 발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학보사가 미흡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