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틈 없이 쏟아지는 과제와 바쁜 일정 탓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관리하는 시간이 부족해진 기자는 최근 유튜브(Youtube) 영상을 통해 자기관리에 관한 정보를 얻고 있다. 특히 기자는 외모 관리에 관심이 많아 관련 분야의 영상을 찾아보던 중 우연히 이라는 뷰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상민 동문을 알게 되었다. 기자는 동문의 다양하고 전문적인 자기관리 노하우와 차분한 말솜씨에 동문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기자는 동문을 만날 기회를 얻어 광화문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남성 뷰티’ 발전에 크게
왠지 모를 설렘이 있던 1학년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기자는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만 하는 3학년을 바라보고 있다. 대학 생활의 절반을 지나 고학년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은 모든 대학생들의 고민이 심화되는 시기이다. 기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하며 먹고살지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했고 기자가 과연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지 파악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저 ‘언론’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싶었는데, 지금 그 목표는 아주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들로 도리어 흐릿해졌다. 그 흐릿함을 지우고 싶어 기자는 같은 학과 선배 강규성(국어국
당신은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기억나는가? 기자는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미술 과목을 담당했던 담임선생님은 어렸던 기자에게 학문적인 가르침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을 하며 인생을 가르쳐준 ‘어른’이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 어느덧 당시 선생님의 또래가 된 기자는 10년 전처럼 어린 누군가에게 인생을 가르치고 있는 기자의 스승님, 서유미 동문을 만났다. 동문을 만난 곳은 경기도 분당에 있는 한 카페였다. 동문은 모교 언론사와의 인터뷰가 새롭고 괜히 성공한 듯한 기분을 준다며 미소를 지어보
한때 기자는 건설 현장에서 현장을 지휘하고 복잡한 설계 도면을 척척 그려내는 ‘건축가’를 꿈꾼 적이 있다. 시험 기간에 교내 곳곳에서 보게 되는 설계 작업에 몰두한 건축대학 학우들의 모습이 새삼 멋있어 보여서일까, 꿈이 바뀐 이후에도 기자는 문득 실제로 건축가가 건설 현장에서 하는 일에 대해 궁금해하곤 했다. 이러한 궁금증을 늘 안고 있던 기자는 현재 건축가로 활동하며 실제 현장에서 근무하는 김성준 동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건설 현장 이야기와 그의 학부생 시절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지난 2월 졸업한 동문은 현재 ‘대우건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기자는 정종민 동문과의 인터뷰를 위해 강남역의 한 카페를 찾았다. 자리를 잡고 괜스레 커피잔만 만지고 있는 사이 동문이 환한 미소를 띠며 카페로 들어왔다. 기자는 그를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미소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의 긴장을 풀어준 동문의 살가운 인사와 함께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디지털미디어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증강현실(AR) 기술 기업인 「Maxst」에서 3D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까지도 현재 그의 직업
현시대를 살아가는 여느 대학생이 그러하듯 기자는 졸업 후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만족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재 기자의 전공이 적성과 잘 맞는지 의문을 가진 채 요즘 기자는 막상 고등학생 때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심각한 진로 고민에 빠져있다. 진로와 관련해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고, 진로 서적을 여럿 읽어보아도 언제나 결론은 ‘당신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그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라’였다. 매번 반복되는 뻔한 결론들은 기자에게 전혀 와닿지 않았고, 싫증만 유발할 뿐이었다. 그러나 자신
요즘 들어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기사 마감으로 인해 지친 일상들이 반복되었다. 2년 전 의미 있는 대학 생활을 위해 지원했던 신문사는, 기자에게 뼈아픈 시련과 동시에 학생으로선 얻기 힘든 값진 성취감을 선물해주었다. 그러나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진 채 지원했던 2년 전 모습이 이젠 까마득할 정도로, 최근엔 정신없이 똑같은 하루들이 지나쳐갔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 기사를 작성하는 것인지, 좋은 기자란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른 채 스스로에게 괴로운 질문만을 되뇌고 있었다. 어느덧 삼 년 차 팀장이 된 기자는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기자는 새내기일 때부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풍문으로만 들었다. 같은 과인 어느 선배가 2018학년도 서울캠퍼스 제52대 부총학생회장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새내기인 그때는 학교에서 총학생회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당시 그들이 요구했던 총장직선제가 대학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녀의 강렬할 목소리를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용기 있고 논리적으로 부당함을 말하는 그녀의 소리는 새내기였던 기자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었다. 어느덧 기자가 학생자치의 일원인 학보사 기자로 활동한지 1년
지난 8월 23일(목) 본교 서울캠퍼스 체육관에서는 졸업식 행사가 진행되었다. 기자 역시 친한 지인이 졸업을 해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본 졸업생들의 표정은 밝으면서도 걱정스러움이 엿보였다. 이제 사회에 첫발을 딛는 졸업생 선배님들을 응원하며, 이번 주에는 이미 사회로 나아가 본인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박정훈 동문을 만났다. 동문을 만난 곳은 삼성역 주변의 카페였다. 그는 그의 아내와 함께 자리했는데, 수줍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해주었다. 기자는 동문을 처음 봤는데도, 마치 원래 알던 사이같이 편하게 느껴졌다.
“내가 언제 취재라는 것을 해보고 기자 호칭을 들을 수 있겠어.” 기자는 이런 생각을 하며 홍대신문으로의 지원을 결심했다. 사실 그 전까지 기자를 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며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는 숫기도 없을뿐더러,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그러다 가벼운 호기심으로 홍대신문에 지원하게 됐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 몸을 담았다. 그 기간 동안 크고 작은 기사들을 써왔지만 ‘무엇을 위해 이 기사를 썼는가’에 확실히 대답할 자신이 없는 기사도 많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한 학기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5월도 중순을 향해 달려가고, 대학생활의 꽃 대동제도 이제 막 지나가는 중이다. 1학기의 다양한 학교 행사들이 하나 둘씩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 학생총궐기, 확대운영위원회 소집 등의 교내 주요 사안들을 떠올리다 자연스레 그를 생각하게 되었다. 전(前) 총학생회장 신민준(회화13) 동문. 그는 본교 서울캠퍼스의 2018학년도 제52대 총학생회장이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그를 작년 교내 행사 진행 및 직무 수행에 있어 침착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임했던 인물로 평가한다. 총학
기자는 인생에 있어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다른 이에게 쓴소리를 들어도 일에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기자가 한 행동과 도전에 대해 ‘피드백’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자가 받은 피드백을 ‘실패’로 여기며 동정하고 안타까워한다. 남들에게 기자의 인생이 ‘실패’로 비추어지는 것이 싫은 탓인지 기자는 어떤 일을 도전할 때 항상 대안을 만들어 둔다. 기자는 한 가지 일에 온전히 모든 힘을 쏟아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에 경쟁률이 높은 대회, 학과에 지원하는 것이 무서웠고
누군가 대학교 2학년인 기자의 목표를 묻는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기자가 고등학교 때부터 어렴풋이 가졌던 꿈이다. 기자 활동을 하며 세상을 공부해보고 싶다랄까? 나름의 거대한 소망을 가지며 기자라는 직업을 원하고 있다. 꿈을 가진지 약 5년 정도 됐는데, 바보 같게도 아직 그 꿈을 위해 실질적인 공부를 하고 있지는 않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며, 아직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노력을 미루고 있다. 이러한 기자에게 필연처럼 『시사IN』 수습기자 나경희(경영12) 동문
따르릉-. 갑작스레 찾아온 꽃샘추위 속에서도 어김없이 많은 기자들이 모여 기사를 쓰고 있던 바쁜 오후, 기자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의 내용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오는 ‘제보 요청’이었다. 본교의 한 대학원생 원우가 자신의 동기 이야기를 본지에 싣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주인공은 2019학년도 ‘새내기’로 본교 교육대학원 평생교육전공에 입학한 김희조 원우였다. 기자가 만난 그는 1949년생으로 올해 만 70세의 만학도(晩學徒)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젊고 깨어있는 학생이었다. 은퇴 후 다시 학위를 취득하
기자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강의실을 나와 홍문관으로 향했다. “또 신문사 일이야?”라고 묻는 친구의 물음에 기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개강 후 매주 굴러가는 쳇바퀴 속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지만, 기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왠지 모를 허탈함을 느꼈다. 신문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설렘은 이미 오래 전에 날아가 버렸고 또 하나의 업무를 껴안았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뒤로 하고 기자는 정문 앞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동문을 만났다.기자는 가장 먼저 동문의 대학생활에 관해 질문했다. 그녀는 판화과지만, 학교생활을
기자의 학교생활은 항상 불안함과 조급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입시에 치여 오르지 않는 성적을 붙잡고 전전긍긍할 때가 많았다. 무엇이 부족해 더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것인지 항상 생각하고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 기자는 ‘왜 항상 불안해하며 그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 쫓기는 듯한 인생은 대학에 와서 끝날 줄 알았지만 큰 오산이었다. 기자는 완벽한 기사 작성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며 여느 때와 같이 조급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나날들은 같은 과를
기자는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자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타인에게 드러내며 인정받고 관심 받는 느낌을 즐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듯 관심과 주목에 대한 갈증도 끝이 없기 마련이다. 때문에 기자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이 활동이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시간 낭비는 아닐까?’ 등의 고민을 하며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저울질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같은 과를 졸업한 강노빈 동문을 만나러 가기 직전, 기자의 마음이 평소보다 더욱 무겁고 긴장이 됐던 이유는 재학
기자의 3월은 항상 새로움을 향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시에 설렘에 가려진 무언가가 함께 있었다. 바로 걱정이다. 기자가 2학년이 되는 22살의 첫 여정에는 유난히 설렘보다 걱정이 앞서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만 늘어가던 개강 하루 전, 올해 본교를 졸업하여 사회에 첫 발돋움을 시작한 강유민 동문을 만났다.동문은 KB국민은행에 입행하여 행원으로서 거쳐야 할 연수를 마치고 당장 내일부터 은행으로 첫 출근을 한다고 했다. 첫 출근 하루 전 그는
기자가 동문을 만난 날은 본교 제69회 졸업식이 열린 날이었다. 졸업식이 진행된 체육관 앞은 졸업생과 그들을 기다리는 부모님, 지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길가에 서서 바라본 선배들의 얼굴에는 길고 길었던 십여 년 간의 학창시절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이번에 만난 동문 또한 힘들었던 학교생활과 1년간의 수험생활을 견디고 7급 세무직 공무원에 합격했다. 그래서인지 동문의 주위엔 미래에 펼쳐질 새로운 일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만들어진 긍정적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듯했다.동문을 만나게 된
이 글은 기자의 마지막 인터뷰이자 지난 대장정의 끝을 맺는 마침표가 될 것 같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마주했었고 때론 그들과 쉴 틈 없이 부딪히며 시퍼런 멍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아니 지금까지도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너무 무섭고 두렵다는 것이다. 기자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그들의 세상이 마치 기자의 삶을 잡아먹기라도 하듯 왠지 모르게 반감부터 앞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의 생각, 가치관 등이 공감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는 다른 것에 부딪혔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 때문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