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고전 읽기를 좋아한다. 특히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가장 좋아한다. 사서오경은 그 경전 안에 담긴 뜻이 명쾌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기자가 스무 살이 되던 2022년,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논어(論語)』를 다시 펼쳤다. 어른이 된 기념으로 기자의 호(號)를 정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던 중 기자의 눈을 빼앗은 한 문장이 있었다.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그릇이 아니라는 뜻의 문장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직전, 기자는 친하게 지냈던 윤리 선생님께 찾아가 이 문장의 함의를 알아냈고, 그 함의에 매료된 기자는 호
여기 부품이 되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다. 기자는 요즘 “나는 ‘쓸모’있는 사람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사람에게 쓸모가 있냐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기자는 요즘 스스로가 쓸모있는 부품이길 바란다. 잠깐, 글을 이어가기 전에 정정해야겠다. ‘부품’이라는 표현, 쓰기는 그렇게 썼지만만 ‘번듯한 사회의 일원’이라고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기자는 딱딱하고 초라한 어감으로 ‘부품’이라는 표현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없으면 전체가 이뤄질 수 없는 어엿한 역할의 ‘부품’을 말하고 싶다.기자는 올해로 4학년
첫 오피니언, 첫 ‘S동 211호’. 내가 쓰겠다며 호기롭게 손을 들었지만 쉽게 쓰지 못하고 있다.깜빡이 는 커서를 바라보며 기자에게 신문사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봤다. 어느 날엔 하염없이 감사하고 어느 날은 벅차게 힘든 이 존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다가 불현듯 고등학교 사회문화 시간에 배운 ‘내집단’ 개념이 떠올랐다. 미국의 사 회학자 섬너(William Graham Sumner, 1840~1910)는 구성원들이 가지는 소속감에 따라 사회 집단을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분류했다. 내집단이란 본인이 소속해 있으면서 동
작년 이맘때, 23학번 새내기였던 기자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바로 수강 신청을 시원하게 망쳐버린 것이다. 먼저 대학생 노릇을 하고 있던 오빠의 조언에 따라 난생처음 PC방을 간 것이 화근이었을까? 신청에 성공한 강의는 단 두 개뿐이었다. 수강 신청이 끝난 컴퓨터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기자의 머릿속은 텅텅 비어버린 시간표와는 달리, 끊임없이 밀려드는 근심 걱정으로 빈틈없이 채워지고 있었다.아마 올해 입학하는 신입생 몇몇은 이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개강을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여태껏 학교에서, 또는 학원에서 정해준 시간
마지막 발간을 앞두고 분주해진 홍대신문사에는 이번 학기를 마치면 기자실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적게는 세 학기, 많게는 네 학기 동안 취재부에 몸담은 57기 기자들이다. 다사다난했던 기자실에서의 추억도 상기시킬 겸, 퇴임이 코앞으로 다가온 취재부 57기 기자들끼리 서로를 인터뷰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민규 기자Q. 종간 및 퇴임하는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A. 어떻게 또 버텼다.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기 전 퇴사를 고민하다가 잔류하기로 결심하고, 친구 앞에서 선언했던 날이 기억난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반년이
대학에 갓 입학했을 당시의 기자는 무엇을 알려주는지 알 수 없는 대학 수업과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목표 없는 생활에 엄청난 무기력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중간고사 기간이 끝난 지난 5월쯤 기자가 수강 중인 교수님께서 자유 주제로 보고서를 한 편 제출하라고 하셨다. 개인이 직접 주제와 개요를 정하면 교수님이 그것을 읽고 피드백을 해주시는 방식이었다.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고 수정해 발표하는 것이 이 수업의 과제였다. 기자의 보고서 제목은 ‘왜 대학에 가야 하는가.’였다. 무모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솔직한
끝이 있다는 건 상당한 위로다. 모든 것에 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마냥 슬프거나 아쉬운 일이 아니란 뜻이다. 좋은 일에 끝이 있다는 건 그 순간을 더 열정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하며, 괴로운 순간에 빠져있을 때도 언젠가 끝이 온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끝은 단순히 슬픈 게 아니다. 커다란 위로이자 버팀목,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침표이다.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2년 간의 기자 생활이 곧 끝맺어진다. 이번 호를 발간하고 나면 기자에게는 총 2번의 마감만이 남는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진 않았는데 어느새
우에다 신이치로(上田慎一郎, 1984~) 감독의 영화 (2018)는 좀비 영화 촬영 현장의 모습을 담아낸 일종의 소동극(騷動劇)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삼류 영화감독 ‘히구라시’는 어느 날 ‘영화를 찍는 영화를 찍는’ 영화 를 기획한다. 한 방송사를 통해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그것도 원 테이크로 찍어야 하는 영화 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여자 주인공 ‘치나츠’와 남자 주인공 ‘켄’은 좀비 영화의 촬영장에
기자는 최근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사전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 정의하고 있고, 민법은 ‘만 19세 이상의 성인’을 어른이라 지칭하고 있다. 기자는 어느덧 생일이 지나 만 19세에 이르렀고, 법적으로는 어른이 됐다. 하지만 누군가 기자에게 어른이 된 것을 실감하느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어떻게 하루아침 사이에 다 자라고, 책임질 능력이 생긴다는 것일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기자실에서는 “이제 다들 어른인데~”
이번 S동 211호의 제목은 기자가 보내는 메일 제목과 같다. 기자의 보낸 메일함에는 ‘홍대신문 관련해 메일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메일의 내용은 보통 인터뷰 요청이다. 영원한 미소, 12면 인터뷰와 같은 인터뷰 코너 진행을 위한 메일과, 보도 기사의 신빙성을 더해줄 인터뷰 요청 메일이다. 기자는 메일함을 볼 때면 인터뷰 성사의 어려움에 지쳐 있던 기자가 생각나는 동시에, 그 어려움을 극복한 기자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번 글에서 기자의 ‘극복’을 담아보고 싶다.기자는 2학기의 시작과 함께 수습기자가 아니라
4년 만에 축제가 돌아왔다. 기자에겐 입학 후 첫 번째 축제다. 더군다나 기자가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좋아하던 연예인이 초청 가수로 본교에 온다고 했다. 그렇기에 기자는 해당 가수가 오는 날 수업을 빠지고 아침부터 입장 대기 줄을 서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여느 대학생들이라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체 공강 한 번쯤은 할 수 있지.’라고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장 조금 보태서 기자는 지각하거나 숙제를 안 해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고, 수업을 빠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아는 사람이다. 그만큼 기자가 수업을 빠
기자는 본인을 ‘기자’라고 부르는 것이 낯설다. 수습기자를 거쳐 준기자가 된 지금, 기자가 된 지 벌써 5개월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을 기자라고 칭하는 것은 어색하다. 나는 기자인가, 애초에 기자란 대체 뭘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 망설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기자는 전공에 대한 회의감에서 출발해 신문사에 도착했다. 기자의 전공은 시각디자인으로, 기억이 닿는 순간부터 당연히 미술을 하고 살 거라고 생각했던 기자는 해당 전공 외에 다른 것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2학년을 끝마치며 '
어떤 분야든 처음에는 조금 진부할지라도 정석을 따를 필요가 있다. 기존 체제를 완벽히 숙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체제로의 혁신을 시도하는 것은 오만이며 방종이다. S동 211호 글을 밤새 고쳐 쓰며 이를 제대로 깨닫게 됐다.기자는 이번에 처음으로 S동 211호를 맡게 됐다. 전에 없던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품고서 기자는 소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감 하루 전, 드디어 근사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에 없던 구성과 소재로 나름의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써놓고 보니 제법 뿌듯해지는 글이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미
새벽 3시 10분. 이제는 그다지 늦었다고 생각되지 않는 시간에 기자의 이름만을 달랑 남겨놓은 빈 페이지를 노려보고 있다.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해서 기사가 써지는 것도 아닌데, 과도하게 섭취한 카페인은 사고를 잠시 멈춘 채 멍하니 빈 화면만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본 칼럼은 기자의 퇴사 전 마지막 기사라는 특수성까지 갖추고 있어 더욱이 한 글자 한 글자 이어 나가기가 버겁다. 자칫하면 ‘힘들었다. 하지만 뿌듯했다. 홍대신문 안녕!’하는 초등학생 그림일기가 될 것 같고, 여차하면 ‘나 힘들었던 것 좀 알아주세요!’하는 진부한 호소문
이번 오피니언에서 기자는 ‘책임감’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책임감의 사전적 정의는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기자는 이전까지 책임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관계 속에서의 책임감이 중요했던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저 개인에게 주어진 것만 완료하면 되는, 가벼운 일들뿐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된 기자는 처음으로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느꼈다. 조별 과제, 대인 관계 그리고 신문사 활동에서는 개인의 책임감이 강조됐다. 기자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혼자서 할 수 있는
누군가 세상일을 딱 두 가지로 분류하라고 한다면, 기자는 ‘내가 바꿀 수 있는 일’과 ‘바꿀 수 없는 일’로 나눌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분류 같지만, 이렇게 나눠 생각하는 게 무기력감을 없애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지면 한 편에 남겨두려 한다.기자는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상대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태도, 거절당하기 싫은 마음, 그리고 상대도 나에게 무리한 부탁을 안 했으면 하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이
오랜만에 펜을 쥐고 종이에 글을 적으면 유난히 손이 아프다.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필기하고 문제를 풀다보니 기자의 중지에 두껍게 자리 잡은 굳은살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펜을 쥐지 않은 건 고작 3달 정도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미 굳은살이 연해진 기자의 손가락은 이전처럼 장시간 펜을 쥐기 어려웠다. 이번에도 그랬다. 거진 3주 만에 글을 쓴다. 더군다나 올해부터 매주 발간으로 바뀐 탓에, 기사를 쓰지 않은 3주가 더 길게 다가왔다. 어떻게 기사를 시작할지, 어떤 단어를 사용할지 조심스럽고, 어려운
지난 4월 1일(토),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덕분에 기자는 경기가 없는 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은 늘 중계방송과 함께하고 있다. 어릴 적 아빠의 어깨너머로 보기 시작해 어느덧 삶의 일부가 된 야구를 보며 느낀 건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야구는 1회 동안 낼 수 있는 점수가 무한하고, 경기 시간에 제한이 없다. 따라서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아무도 결과를 알 수 없고 그들을 막을 수도 없다. 짧게는 3시간 길게는 4시간, 5시간까지도 이어지는 경기에 선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한다. “열심
만약 당신이 세상을 뒤흔들만한 진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밝힐 수 있는가? 단, 진실을 밝힐 시 자신을 포함한 가족, 친척, 친구가 위험에 빠질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1986년 9월 6일 월간 《말》지의 특별호 를 통해 ‘보도지침’이 폭로됐다. 한국일보의 김주언 기자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1985년 10월 19일부터 1986년 8월 8일까지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전달했던 보도지침 584건을 공개한 것이다. 보도지침이란 전두환 정부
먼저, 이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 글은 기자가 꽤 오랜 시간 쌓아뒀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기 위한 반성문이자 사과문이다. 12면을 가득 채운 기사 중 그나마 가벼운 느낌의 칼럼을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읽게 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신문의 한 코너를 개인의 고해성사를 위한 장으로 이용할 기회를 준 동료 기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기자가 처음 신문사에 들어올 때, 면접에서 선배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책임감이 있으시다는 거죠?” 당시 기자는 책임감이 있다고 자신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