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오피니언, 첫 ‘S동 211호’. 내가 쓰겠다며 호기롭게 손을 들었지만 쉽게 쓰지 못하고 있다.깜빡이 는 커서를 바라보며 기자에게 신문사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봤다. 어느 날엔 하염없이 감사하고 어느 날은 벅차게 힘든 이 존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다가 불현듯 고등학교 사회문화 시간에 배운 ‘내집단’ 개념이 떠올랐다. 미국의 사 회학자 섬너(William Graham Sumner, 1840~1910)는 구성원들이 가지는 소속감에 따라 사회 집단을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분류했다. 내집단이란 본인이 소속해 있으면서 동
작년 이맘때, 23학번 새내기였던 기자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바로 수강 신청을 시원하게 망쳐버린 것이다. 먼저 대학생 노릇을 하고 있던 오빠의 조언에 따라 난생처음 PC방을 간 것이 화근이었을까? 신청에 성공한 강의는 단 두 개뿐이었다. 수강 신청이 끝난 컴퓨터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기자의 머릿속은 텅텅 비어버린 시간표와는 달리, 끊임없이 밀려드는 근심 걱정으로 빈틈없이 채워지고 있었다.아마 올해 입학하는 신입생 몇몇은 이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개강을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여태껏 학교에서, 또는 학원에서 정해준 시간
마지막 발간을 앞두고 분주해진 홍대신문사에는 이번 학기를 마치면 기자실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적게는 세 학기, 많게는 네 학기 동안 취재부에 몸담은 57기 기자들이다. 다사다난했던 기자실에서의 추억도 상기시킬 겸, 퇴임이 코앞으로 다가온 취재부 57기 기자들끼리 서로를 인터뷰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민규 기자Q. 종간 및 퇴임하는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A. 어떻게 또 버텼다.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기 전 퇴사를 고민하다가 잔류하기로 결심하고, 친구 앞에서 선언했던 날이 기억난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반년이
대학에 갓 입학했을 당시의 기자는 무엇을 알려주는지 알 수 없는 대학 수업과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목표 없는 생활에 엄청난 무기력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중간고사 기간이 끝난 지난 5월쯤 기자가 수강 중인 교수님께서 자유 주제로 보고서를 한 편 제출하라고 하셨다. 개인이 직접 주제와 개요를 정하면 교수님이 그것을 읽고 피드백을 해주시는 방식이었다.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고 수정해 발표하는 것이 이 수업의 과제였다. 기자의 보고서 제목은 ‘왜 대학에 가야 하는가.’였다. 무모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솔직한
끝이 있다는 건 상당한 위로다. 모든 것에 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마냥 슬프거나 아쉬운 일이 아니란 뜻이다. 좋은 일에 끝이 있다는 건 그 순간을 더 열정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하며, 괴로운 순간에 빠져있을 때도 언젠가 끝이 온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끝은 단순히 슬픈 게 아니다. 커다란 위로이자 버팀목,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침표이다.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2년 간의 기자 생활이 곧 끝맺어진다. 이번 호를 발간하고 나면 기자에게는 총 2번의 마감만이 남는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진 않았는데 어느새
우에다 신이치로(上田慎一郎, 1984~) 감독의 영화 (2018)는 좀비 영화 촬영 현장의 모습을 담아낸 일종의 소동극(騷動劇)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삼류 영화감독 ‘히구라시’는 어느 날 ‘영화를 찍는 영화를 찍는’ 영화 를 기획한다. 한 방송사를 통해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그것도 원 테이크로 찍어야 하는 영화 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여자 주인공 ‘치나츠’와 남자 주인공 ‘켄’은 좀비 영화의 촬영장에
기자는 최근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사전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 정의하고 있고, 민법은 ‘만 19세 이상의 성인’을 어른이라 지칭하고 있다. 기자는 어느덧 생일이 지나 만 19세에 이르렀고, 법적으로는 어른이 됐다. 하지만 누군가 기자에게 어른이 된 것을 실감하느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어떻게 하루아침 사이에 다 자라고, 책임질 능력이 생긴다는 것일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기자실에서는 “이제 다들 어른인데~”
이번 S동 211호의 제목은 기자가 보내는 메일 제목과 같다. 기자의 보낸 메일함에는 ‘홍대신문 관련해 메일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메일의 내용은 보통 인터뷰 요청이다. 영원한 미소, 12면 인터뷰와 같은 인터뷰 코너 진행을 위한 메일과, 보도 기사의 신빙성을 더해줄 인터뷰 요청 메일이다. 기자는 메일함을 볼 때면 인터뷰 성사의 어려움에 지쳐 있던 기자가 생각나는 동시에, 그 어려움을 극복한 기자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번 글에서 기자의 ‘극복’을 담아보고 싶다.기자는 2학기의 시작과 함께 수습기자가 아니라
4년 만에 축제가 돌아왔다. 기자에겐 입학 후 첫 번째 축제다. 더군다나 기자가 중학생이었을 때부터 좋아하던 연예인이 초청 가수로 본교에 온다고 했다. 그렇기에 기자는 해당 가수가 오는 날 수업을 빠지고 아침부터 입장 대기 줄을 서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여느 대학생들이라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체 공강 한 번쯤은 할 수 있지.’라고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장 조금 보태서 기자는 지각하거나 숙제를 안 해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고, 수업을 빠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아는 사람이다. 그만큼 기자가 수업을 빠
기자는 본인을 ‘기자’라고 부르는 것이 낯설다. 수습기자를 거쳐 준기자가 된 지금, 기자가 된 지 벌써 5개월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을 기자라고 칭하는 것은 어색하다. 나는 기자인가, 애초에 기자란 대체 뭘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 망설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기자는 전공에 대한 회의감에서 출발해 신문사에 도착했다. 기자의 전공은 시각디자인으로, 기억이 닿는 순간부터 당연히 미술을 하고 살 거라고 생각했던 기자는 해당 전공 외에 다른 것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2학년을 끝마치며 '
어떤 분야든 처음에는 조금 진부할지라도 정석을 따를 필요가 있다. 기존 체제를 완벽히 숙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체제로의 혁신을 시도하는 것은 오만이며 방종이다. S동 211호 글을 밤새 고쳐 쓰며 이를 제대로 깨닫게 됐다.기자는 이번에 처음으로 S동 211호를 맡게 됐다. 전에 없던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품고서 기자는 소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감 하루 전, 드디어 근사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에 없던 구성과 소재로 나름의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써놓고 보니 제법 뿌듯해지는 글이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미
새벽 3시 10분. 이제는 그다지 늦었다고 생각되지 않는 시간에 기자의 이름만을 달랑 남겨놓은 빈 페이지를 노려보고 있다.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해서 기사가 써지는 것도 아닌데, 과도하게 섭취한 카페인은 사고를 잠시 멈춘 채 멍하니 빈 화면만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본 칼럼은 기자의 퇴사 전 마지막 기사라는 특수성까지 갖추고 있어 더욱이 한 글자 한 글자 이어 나가기가 버겁다. 자칫하면 ‘힘들었다. 하지만 뿌듯했다. 홍대신문 안녕!’하는 초등학생 그림일기가 될 것 같고, 여차하면 ‘나 힘들었던 것 좀 알아주세요!’하는 진부한 호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