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점점 쌀쌀해지며 낙엽도 거리마다 잔뜩 쌓인 요즘, 여러분의 앞에 성큼 다가온 기말고사는 잘 준비하고 계시는가요? 매년 이맘때쯤이면 학기가 끝나간다는 설렘 반, 성적이 발표된다는 걱정 반으로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학교에 방문하고 보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재잘거리며 오가는 학생들이 가득한 교정을 얼마 만에 보았는지요. 제가 수업을 들으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제 가슴이 다 뛰었습니다. 이미 한 번 경험해본 저도 이럴 터인데, 이 광경을 새롭게 경험한 C학번 친구들은 얼마나 즐거웠을까요.모니터 앞
안녕하세요. 학우 여러분. 저는 시각디자인과 16학번 이종혁입니다. 이번 여름에 학부를 졸업했어요. 지금은 시각 예술가로 활동하며, 내년에 계획하고 있는 전시를 준비 중입니다. 학교를 다니며 얻게 된 많은 것들 중, 현재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부분에 대해 쓰고자 해요. 제목에 쓴 것처럼 ‘연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제가 학부에 입학한 2016년도는 문화 예술계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기 시작한 해였어요. 돌이켜보면 2016년을 고등학교나 입시 학원에서가 아니라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서, 문화 예술계의 일원으로서 보낼 수 있었
안녕하세요, 본교 학우 여러분. 저는 2018년에 본교 도예·유리과에 입학해, 올해 2월에 졸업한 윤산하라고 합니다. 저는 현재 동 대학원 도예 전공에 재학 중이라 엄연히 말하자면 아직 본교에 몸을 담고 있는 새내기 선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졸업한 지 별로 안 된 저에게 ‘동문’이라는 호칭으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직도 대학원에서 전공 공부를 계속 하고 있기에 글의 독자인 후배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제 글이 후배 여러분께 좋은 감상이 될 수 있을지 우려되
얼마 전 태풍 힌남노가 지나갔습니다. 서울에는 큰 피해가 없었습니다. SNS에는 화창하게 갠 날씨 사진이 올라왔고, 어떤 학우는 우리 학교 익명 커뮤니티에 태풍에 대한 우려가 '설레발'이었다는 글을 적기도 했습니다. 같은 시각 포항과 경주, 울산에서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장례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포항제철의 노동자들은 49년 만에 가동이 중단된 공장에서 밤낮없는 복구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두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특히 서울권 대학생인 나와 삶의 궤적이 다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내 삶을 챙기기
졸업생이 재학생에게 전하고픈 말을 담는 이 코너에 원고 요청을 받았을 때 먼저 든 생각은 “지난 6년간의 대학 생활이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갔구나”였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겪은 대학 생활은 일반적인 혹은 평균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남학생들의 경우 대학 생활에 나름의 공식이 있습니다. 1학년 2학기 혹은 2학년 1학기 전까지 대학 생활을 즐기다 군에 입대하고 복학하면 취업을 위해 높은 학점과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것이죠. 전 그런 공식에서 약간은 벗어났습니다. 3학년까지 홍대신문에서 활동했고, 군 전역 후 남은 1년 동안은 높은 학점을
안녕하세요, 이렇게 홍대에 다시 인사를 건네네요. 오랜(2년)만입니다. 이 글의 청자는 누구일지 고민해봤습니다. ‘홍대‘라고 칭한 것은 정말 대한민국의 한 사립대학으로서의 홍익대학교에 인사를 건넨 건 아니고 이 글을 읽을 여러분이겠죠. 코로나가 발발한 뒤 개강한 학기는 혼란이었습니다. 여전히 겪고 계실 혼란이겠습니다. 저는 그 해 부리나케 졸업 전시를 하고 학교에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본가의 이사도 있었고 심리적 이유도 있었죠. 이렇게 다시 인사를 하기까지 꽤 걸렸네요.회화과를 졸업한 뒤, 작년 3월엔 아침 새벽에 깔리
최근 몇 년간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이외에 글을 쓰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상당히 어색하지만 기고 부탁을 받고 후배님들을 위해 어떤 내용을 담으면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저의 대학생활을 떠올려봤습니다. 입학 후 가장 먼저 교내 방송국에 아나운서로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인사만 해도 티가 나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말입니다. 아직도 면접 당시 “지금 사투리 쓰고 있는 거 알죠?”라는 아나운서부 선배의 질문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네! 고칠 수 있습니다”라는 당당한 대답이 선배들의 마음에 들었던지 운이 좋게 합격했고, 저는 그 학기가
재학 시절 몸담았던 홍대신문에서 기고를 부탁받고 어떤 주제의 글을 풀어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대학 생활을 돌아보니 당시 저의 선택들이 준 불안감에 대해 조언을 해 준 이가 없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빌려 새로운 시작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후배들께 조언을 빙자한 제 경험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우리의 삶과 죽음 사이에 선택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 것 같아요. 대학에서도 저희는 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2년 전에 졸업한 산업디자인학과 15학번 김지선입니다. 워낙 뛰어난 선배님들과 후배님들이 많이 계시다 보니 이런 글로 여러분을 만나는 데 부끄러움이 들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신다면 ‘이렇게 지내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이어가 봅니다. 다소 암울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학교에 입학하고 1, 2학년 때만 해도 저는 꿈이 확고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졸업 전시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고,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보며 그 꿈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
산책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가 하나 가득,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신문의 바깥에서 후배들의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읽는 일에만 익숙해져 지면 속에 들어앉는 것이 어색해져 버렸습니다.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신문 지면을 채우고자 고군분투하던 때가 어느덧 희미한 추억이 되었음을 새삼 느낍니다. 일과 중에 시간을 내어 나의 경험과 감정들을 열심히 쓰고 그 결과물이 지면 속에서 빛날 수 있도록 수없이 갈고 닦은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었는지를
대학생이 되고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이 바로 ‘진로 고민’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수능’과 ‘입시’라는 크고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방향 설정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에 와서 보니 미래가 불투명하고 어둡게 느껴졌고, 제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부터가 너무나 큰 난관이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하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참 많았고,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나?’ 고민하게 되는 나날들도 많았습니다. 과거의 저처럼 많은 후배님들도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저도 저만의 인생길을
동행 복권은 30일 진행된 제987회 로또복권 추첨에서 ‘2, 4, 15, 23, 29, 38’이 1등 당첨 번호로 뽑혔다고 밝혔다. 2등 보너스 번호는 ‘7’이다. 당첨 번호 6개를 모두 맞힌 1등 당첨자는 10명으로 이들은 23억 7871만 원씩 받는다. 10월 30일 자 한국경제 기사 중 일부 내용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역전을 꿈꾸며 여섯 개의 숫자를 고르고 자신의 숫자에 행운이 깃들기를 기대한다. 나에게 홍익대학교는 로또 1등이나 마찬가지이고 23억보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나의 당첨번호는 2, 5, 7, 14,
안녕하세요, 경영학부를 졸업한 고수연이라고 합니다. 졸업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글로써 후배님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수기를 작성하며 지난 대학 생활을 돌아보기도 하고, 그간의 경험이 어떻게 저를 성장시켰는지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학 생활은 저에게 ‘주관식의 여정’이었습니다. 정해져 있는 정답은 없으며 스스로가 각자의 답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 여정이었던 것이죠. 저에게 대학 생활은 스스로 탐구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라는 사람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다양한 사람들과
요즘은 잘 듣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굉장히 많이 들었던 짓궂은 질문이 있습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넌 오늘 뭘 할래?” 어린 저는 이 말을 듣고 지레 겁을 먹어 우울함과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다행히 현재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아주 잘 인지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세상의 멸망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한 세상의 끝. 바로 죽음입니다.우리는 죽음의 곁에서 살고 있습니다. 숨을 쉬고, 무언가를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확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학교를 졸업하고 제조기업 재경팀에서 6개월째 근무하고 있는 독어독문학과 14학번 이정준입니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서 제가 학교에 다니면서 느낀 점들과 당시에 이렇게 생각했더라면 좋았을 것과 같은 아쉬운 점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하고 싶은 것 찾기대학 생활을 되돌아보면, 이 시기가 가장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도전을 해서 실패해도 쉽게 일어설 수 있었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기에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을 꼭 찾아보라고
안녕하세요. 현재 IT기업에서 3년째 UX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시각디자인과 13학번 이주희라고 합니다. 아직 경험한 것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많은 사람이지만 대학교와 짧은 사회생활을 경험해보면서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아끼고 성장해나가며 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대학교에서 많은 인연과 스치기우물 안 개구리와 같던 저는 대학교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더 넓은 시야와 사고를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 친구들과 대화하고 추억을 쌓으며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대학교라는 울타리는 안
지금 학교에 다니시는 후배님들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어 전래동화를 듣는 기분일 수도 있으시겠지만 제가 학교에 다니면서 있었던 일과 그 시간을 통해서 느낀 점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나는 이 전공을 꼭 배우고 싶다, 이 학교에 꼭 진학하고 싶다’라는 확연한 목표를 가지고 오신 후배님들도 많겠지만, 아닌 후배님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 대학의 특정 학과에 왔다고 해서 자신의 길이 하나로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4년이라는 시간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에 짧지만 충분하기도 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냥
남들처럼 군 복무를 마치고, 학업에 복귀하며 복학생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그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삶의 행복을 무엇을 통해 느끼며 살아야 할까’ 어느 학생들처럼 저 역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복학하고 긴 방황이 이어졌습니다. 치열한 전공 속에서 나만의 개성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과연 내가 이 분야를 꾸준히 할 수 있을까’ 등 수많은 고민이 머릿속을 스쳐 갔습니다. 그때 희열을 크게 느꼈던 때 가 떠올랐습니다. 군대에서 고되고 힘든 상황 속에서 느꼈던 보람, 성취감,
세상이 조용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밝혀주던 일상의 톱니바퀴들은 간신히 돌아가는 듯 보입니다. 과방에서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는 어느새 고요해졌고, 강의실에서 들리던 우리의 열정은 화면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모든 것이 고요해지면 좋겠지만, 우리의 불안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요동치기 마련입니다. 떠들썩한 학교생활을 보낸 선배로서 여러분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습니다. 다만, 꼭 전해드리고 싶은 말은 그 불안감에 잠식되어 자기 자신을 날카롭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회가 침체되며 과방을
이 글의 첫 자를 떼기가 상당히 어렵더군요. 재작년, 이 신문 11면 상단에 편집국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실릴 글을 쓸 때보다도 말입니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나가야 할까요. 퇴임한 기자의 회고, 갓 졸업한 졸업생의 촉촉한 회상, 혹은 사회 초년생의 포부나 비애 정도를 담으면 될까요. 그중 어떤 입장에 무게를 실어 기록해야 할까요. 여하튼 이 글을 다 쓴 후에도 그 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으니, 괜한 부담감은 내려놓고 그저 생각나는 말들을 써볼까 합니다.저는 17학번입니다. 네, 휴학은 한 학기도 하지 않고 ‘스트레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