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9세기 초반에 지우재(之又齋) 정수영(鄭遂榮, 1743-1831)은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나무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과연 그는 어떤 나무를 그린 것일까? 야자나무 과의 상록 교목인 종려나무이다. 종려나무는 우리에게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야자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열대지방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남쪽인 제주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국내의 내륙지방에서는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에 이 나무를 그렸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선 후
우리는 오롯이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환경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는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개인전으로 작가의 9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을 보여주는 최대 규모의 *서베이(surbey) 전시이다. 필립 파레노는 전시와 작품과의 역동적 관계를 탐구한다. 작품은 단순히 전시되는 것이 아닌, 전시장에서 다른 작품들, 관객들, 그리고 사운드와 호흡하며 상호작용되는 것에 주목한다. 또한 작가는 작업의 핵심 요소로 ‘다수의 목소리’를 꼽았다. 전시를 통해 다양한 목소
덜컹거리는 버스 안,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은재’는 다르다. 올해 대학에 입학해 갓 상경한 그녀에게 서울의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살짝 열린 차창 사이로 들이치는 바람 탓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그녀이지만, 여전히 시선은 창밖 풍경에 고정되어 있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그녀의 새 보금자리가 되어줄 쉐어하우스, ‘벨에포크’였다.4명의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은재. 생판 남들과 한집에서 사는 것을 만만하게 본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실전은 상상 이상이
흔히 자정에서 일출에 가까운 시간을 칭하는 새벽은 대부분의 사람은 잠을 청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시험 기간에 24시간 개방하는 제4공학관(T동) 열람실에서 밤새워 공부하는 학우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새벽은 일과 시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몰입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번 오색찬란에서는 새벽을 활용하는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과거의 새벽과거의 새벽에는 야간통행금지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는 전근대사회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시됐으며 주된 이유는 치안상의 필요였다. 조선시대에도 실시된 이 제도는 과거의 새벽을 활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운명이라는 말을 ‘당연함’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네 운명이야.’와 같은 관용구는 운명을 우리에게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법칙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깨버리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간 사람들은 주체적인 인생을 영위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운명을 벗어나는 것은 무엇이며, 이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이번 COS에서는 〈마당을 나온 암탉〉(2011)과 〈할라〉(2019)를 통해 기존의 운명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으려 했던 용감한 항해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가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수시로 울리는 알림도 그렇지만, 한번 서핑을 시작하거나 웹툰을 보게 되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 책에 따르면, 직장인 평균 집중 시간이 3분이고 우리는 하루 2천 번이 넘게 핸드폰을 만진다.이 책은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개개인의 의지력 부족에서 찾는 게 아니라 우리의 집중력을 약탈하는 시스템에서 찾는다. 그래서 개인의 디지털 디톡스는, 대부분의 다이어터가 요요현상을 겪는 것처럼,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화면 저편에 우리를 스크린에 붙잡아 놓
전국광(全國光, 1945~1990)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고등학교에서 조각가 김찬식을 만나 조각에 눈을 떠 1967년 홍익대학교 조각과 입학, 1980년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제1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입선하는 등 조각가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재학 중이던 1972년 ‘에스프리(esprit)’를 결성하여 국립중앙공보관에서 창립전을 열고 1973년 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쳐나갔다. 물질과 형태를 둘러싼 당대 논의에 주목해 작업을 확장해 나가던 전국광은 1977년
“편지 왔어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 전쟁에 사용된 전투기 중 일부는 항공 우편기가 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했다. 우편 비행사 '파비앙'은 항공우편국 우편 국장 '리비에르'의 신임을 받는 베테랑 비행사로, 그녀의 아내이자 작곡가 '로즈'와의 야간비행을 소망하며 오늘도 사람들의 소식을 전한다. 로즈는 곧 있을 신항로 개척 기념식을 위한 곡 쓰기에 한창이지만 도무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그녀는 영감을 얻기 위해 비행을 떠난 파비앙의 비행일지를 읽는다. 동시에 파비앙은 로즈에게 새 피아노를 선물하기 위해 신항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이 명제가 당연하다 여겨지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민 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이전까지 신분제는 의심의 여지 없는 당연한 제도였고, 신분이 사라진 후에도 사람을 차별하고 억누르는 행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다. 탐관오리를 물리치고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일어난 농민들은 폭풍처럼 일어나 불꽃처럼 스러졌다. 농민들의 외침이 전국 팔도를 휩쓸던 1894년의 동학 농민 운동으로부터 130년이 지난 2024년, 기자는 더 나은 세상을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 1849~1924)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작가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누렸다. 영국의 맨체스터(Manchester) 빈민가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는 네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가 경영하던 철물점을 팔아 온 가족과 미국의 테네시주(Tennessee)로 이주했다. 이후 그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여러 잡지에 짧은 글을 실었고, 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렇게
드라마 〈마에스트라〉(TVN), 〈베토벤 바이러스〉(MBC), 〈내일도 칸타빌레〉(KBS)가 가지는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모두 지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지휘’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합창이나 합주에서 많은 사람의 노래나 연주가 예술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앞에서 이끄는 일’이라고 한다. 이처럼 지휘는 악곡이 조화롭게 연주될 수 있도록 앞에서 이끄는 일이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지휘자이다. 그렇다면 지휘자는 지휘를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까? 우리가 아는 지휘자의 역할은 지휘봉을 흔들며 박자를 맞추는
불교는 기원전 5세기 인도 북부 갠지스강 유역에서 시작되어 수백 년에 걸쳐 남쪽으로 전해졌다. 석가모니의 고향인 북인도와는 기후도 문화도 다른 남인도에서, 불교는 생명력 있는 신들과 더불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우리는 *스투파(stūpa)와 스투파를 둘러싼 울타리에 조각된 장식을 통해 수많은 인도의 신과 석가모니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스투파를 둘러싼 울타리 장식에 조각된 남인도의 다양한 신과 석가모니 이야기를 담고 있다.전시장에 들어서 처음으로 마주한 유물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신분이 높은 사람만 쓰는 햇빛
여기 출구를 찾아 나선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미정’. 미정은 자신이 단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찬 적도,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사랑으로 가득 찬 적도 없다고. 이전에 만났던 남자는 그녀를 가득 채워 주긴커녕 그녀에게 돈을 빌리고 잠적한 상황. 그녀는 이 답답한 상황을 뚫고 나가기 위해 ‘해방일지’를 쓰기 시작한다. 첫 장의 제목은 ‘좋기만 한 사람’. 기자는 그녀의 해방일지를 따라 길을 나섰다.경기도 외곽, 산포시에 사는 미정의 출퇴근길은 고달프다. 아침 7시부터 집을 나서 노란
어느 독자님께안녕하세요, 독자님. 이은서입니다.그동안 얼어붙었던 것들이 녹으며 만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화창한 봄입니다. 따뜻한 계절을 맞으며 독자님께 저의 온기를 담아 편지 한 편을 보내게 되었습니다.편지를 써 보는 것이 여간 오랜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온라인 메신저로 빠르고 간편하게 할 말을 전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고, 전화를 통해 목소리를 들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진중한 소통 방법이 된 시대인 것 같습니다. 한 자 한 자 말을 골라 담아 편지를 쓰는 것이 한편으로는 너무 어색하기도 하고, 낯부끄러운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하
“시간의 법칙은 견고하다. 앞으로만 흐르며 절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을 역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기억이다.” 드라마 (MBC)의 주인공 ‘이정훈’은 기억을, 시간을 역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말했다. 이처럼 기억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억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이번 COS에서는 기억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살펴보며, 나에게 기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기억을 왜곡하다] 영화
이승조(李承祚, 1941~ 1990)는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960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였다. 이승조가 미술대학에 다니던 1960년대 초 한국 미술계에는 국전 중심의 아카데미즘, 앵포르멜 경향이 팽배하였다. 앵포르멜 회화에 대한 획일적인 흐름을 극복하기 위해 이승조는 1962년 서승원, 최명영, 권영우 등의 홍익대학교 60학번 동급생 8명과 함께 그룹 ‘오리진(Origin)’을 결성하였다. ‘오리진’은 1967년 ‘무동인(ZERO GROUP)’, ‘신전동인(新展同人)’ 작가들과 함께 《한국청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은 동아시아 최강의 무위(武威)를 자랑하는 군대였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시작된 일본제국의 근대적 군대 육성 정책이 급속도로 효과를 거두어 ◇청일수호조규 체결 ◇대만 침공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체결 ◇갑신정변 ◇청일전쟁 승리 ◇대만 점령 ◇러일전쟁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의 패자가 된 일본제국은 결국 강제적인 국권 피탈을 통해 대한제국을 멸망시키고 식민지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런데 이와 같이 일본군의 승리로 점철된 행보의 이면에는, 비합리적
상상 속 동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서양 문화권에서는 유니콘, 켄타우로스, 페가수스 등을 떠올릴 것이며, 동양 문화권에서는 봉황, 해태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서로 다른 동서양의 문화권에서도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동물이 하나 있다. 바로 ‘용’ 이다. 이번 오색찬란에서는 2024년, 청룡의 해를 맞아 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동양에서 바라본 용]중국의 문헌『광아(廣雅)』에서는 용의 모습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용(龍)은 다른 짐승들과 아홉 가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는 낙타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신과의 진입장벽은 높았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정신 이상자’라고 취급하며 정신과에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정신질환 환자를 ‘이상하거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정신과 질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며 점차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유명인들의 정신과 진료 사실 고백과 정신건강 상담을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은 대중으로 하여금 정신 질환자만 정신과에 가는 것이 아니라 더 건강한 생활을 위해 정신과를 찾
글과 그림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그림은 글이 미처 전하지 못한 함의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글은 그림이 다 표현하지 못한 내용을 풀어서 제시한다. 전시 ‘문자와 삽화-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를 만나다-’는 글과 그림의 관계를 판화 예술로 승화시킨 독일의 판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를 필두로 김홍도와 조선 왕실의 판화, 중세 유럽의 성서에 기록된 삽화 등 다양한 삽화를 보여준다. 1부 ‘문자를 위한 그림’ 전시에서는 텍스트만으로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종교적 내용을 쉽게 전파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