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논술 학원에 등록한 첫날, 당시 강사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좋은 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해?” 대답할 수 없었다. 글에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그 무렵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대답을 회피하고, 우물쭈물하자 다시 한번 질문을 받았다. “그럼 나쁜 글이란 뭐야?” 대답이 명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꽤나 자신 있게 답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글을 쓴 시간 보다 고치던 시간이 더 길었던 이후에는, 나쁜 글은 난도질당한 초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원안 그대로 ‘통과’된 초고는 좋은 글이 되었다.초고
어릴 때 기자는 한강에 가지 못했다. 이는 영화 (2006)을 보고 난 이후부터다. 영화를 본 다음 날 기자의 오빠는 “실제로 한강에 독극물을 버린 사건이 있다”라고 했고 그날 이후로 기자는 한강에 가지 못했다. 당시 기자의 나이는 6살이었다. 이로부터 약 5년간은 한강이란 단어를 듣는 것도 싫어했다. 이 걱정과 두려움이 정확히 언제 사라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한강에서 먹는 라면이 가장 맛있다는 것을 안다. 괴물은 기자의 마음 속에만 존재했다. 물론 괴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한동안은 한강에 가길 꺼렸다. 막연한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려는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왔다. 허상(虛想)과 진여(眞如)를 구별하고, 환영(Phantasma)과 실체(Substance)를 구별하려는 노력이 그것들이다. 미술에서는 ‘진본과 위작’ 같은 논란뿐만 아니라 ‘원본(Original)과 복사본(Copy, Reproduction)’의 문제도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중요한 논점이 된다.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단 한 개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짜 작품은 복사본인 포스터, 달력, 잡지 등의 각종 인쇄물로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인쇄물들이 가짜
기자가 요즘 지독하게 빠져있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tvN에서 지난 2월 12일(토)부터 방영하고 있는 (2022)이다. 1998년 대한민국이 IMF를 겪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펜싱부 소녀 ‘나희도’와 몰락한 부잣집 도련님 ‘백이진’의 청춘 로맨스를 주축으로 그들 주변인의 이야기를 그려 나가고 있다. 청춘 한가운데 있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그들이 겪는 성장통과 그 시련을 이겨나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OTT 플랫폼들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요즘, 시청률이 잘 나오는
갓 고등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나온 이들에게 대학교는 드넓게 펼쳐진 들판과 같다. 울타리에서 나오자마자 자유를 만끽하며 뛰노는 이도 있을 것이고, 방금 태어난 송아지처럼 위태로운 한 발짝을 내딛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무한한 자유가 펼쳐져 있는 듯해도 경험이 부족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움이 가득하면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다행히 대학 사회는 어리숙한 새내기들에게 도움의 흔쾌히 손길을 뻗친다. 대학 내외에 있는 크고 작은 동아리와 모임들이 그러하다. 중요한 사명을 갖고 비장하게 모였거나, 혹은 단순히 공통된 관심사만으로 모였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기업은 고객의 입맛을 맞출 상품을, 교수들은 흥미로운 연구 성과를, 그리고 기자는 뉴스를. 뉴스의 어원을 ‘New Things’에서 찾을 수 있듯이 기자는 ‘새로운 것’과 가장 관련 있는 직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자는 뉴스를 필사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영양가 있는 보도 거리, 소위 특종을 찾기는 힘들다.학보사는 학내 혹은 대학 사회 사안을 다뤄야 하기에 소재도 한정돼있다. 특히 현재는 대학 사회에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사안이 없다. 과거를 살펴보면 대학 사회는 굵
홍익대학교 천체 관측 동아리 개밥바라기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고 누워 친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낭만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별을 보며 낭만을 만들어가는 천체 관측 동아리 ‘개밥바라기’의 박민호(신소재3)학우를 만나보았다.Q. 동아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린다. A. 동아리 이름인 ‘개밥바라기’는 금성의 순우리말 중 하나인 개밥바라기에서 유래됐다. 개밥바라기라는 이름은 새벽이나 저녁에 키우는 개에게 밥 주러 나갈 때 밝게 보이는 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아리방에 있는 천체망원경을 가
코로나 때문에 각종 산업이 침체됐다고 뉴스에 방영되지만, 확실한 것은 미디어가 그 힘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영화에서 수많은 대중성을 가르는 순위와 기록들은 일명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히어로 장르에 밀집됐다. 히어로 영화가 동일한 문법과 내용 전개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도, 그에 대한 수요는 줄었다고 보기 어렵다. 히어로 영화가 무엇을 사회 구성원에게 전달하기에 이렇게 높은 대중성을 지닌 장르로, 또한 주목도가 높은 장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작년 그 어떤 영화보다 강력한 화제성을 낳았던
정확히 10년 전,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던 캠퍼스에서 학내 신문사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대학 생활의 반 이상을 학내 신문사 기자로 생활한 후, 대학교 직원으로서 『홍대신문』을 읽어보니 그때 가졌던 뜨거운 열정을 다시금 떠올린다. 편집 회의로 늦은 밤까지 동료 기자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 인터뷰를 위해 뛰어다녔던 기억들은 신문을 읽으면서 독자들의 입장은 물론, 학생기자들이 가진 열정까지도 느끼게 해주었다. 『홍대신문』의 콘텐츠는 매우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그중 지난 호 1페이지 메인에 실린 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가 발생하고 팬데믹 상황이 된지 만 2년이 넘었다. 이 기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의 문화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는 어느새 현실의 삶과 환경보다는 비대면, 인터넷, 디지털 세계에 더 익숙해지고 있다. 디지털 세계는 디지털 화폐(가상화폐, 암호화폐라고 불리기도 함), 메타버스, NFT 라는 용어와 함께 새로운 세계를 펼치고 있다. 메타버스는 그리스어의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우주, 세계의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신조어다. 지난 2019년 10월 28일 페이스북의 CEO 마크
검도는 스포츠이기 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예의를 중시하는 예의 무도이다. 상호 간의 예의를 배우며 운동도 하는 검도반의 부회장 오세철(독어독문16)학우를 만나보았다. Q. 본교 검도반에 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A. 본교 검도반은 이번 연도에 45주년을 맞이하는 역사 깊은 동아리입니다. 훈련은 정규 운동으로, 시험 기간이나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주 5회 진행합니다. 수요일은 지도 사범님께서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직접 지도해주십니다. 사범님께 배운 선배들이 차근차근 알려주기 때문에 쉽게 따라올 수 있습니다. 검도반은 기수제로
개인적 관심사를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해석할 때, '소속감'은 전제조건으로서 기능한다. 강력한 소속감은 개인의 행동과 때로는 사고 내에 잠재되어있을 집단의 이해관계를 추측하게 한다. 이러한 원리 하에 작동하는 그러한 해석 방법이란 전쟁,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융의 분석심리학은 앞서 광범위한 인간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집단의 영향력을 집단 무의식(集團無意識)으로 규명한 바 있다. 집단사고가 개인의 사고를 대변하기까지 하는 그러한 현상은 보다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다.기자는 지난 10일(목)과 12일(토), 13일(일
김영민 교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재밌게 읽었던 기자는 어떤 주제에 대해 할 말이 없을 때 00이란 무엇인가 하고 혼자 되뇌이곤 한다. 그래서 이번 코너를 맡고도 생각했다. 기자란 무엇인가 또 기사란 무엇인가?처음 S동 211호에 입성했을 때 그 떨림을 기억한다. 기자는 어쩌면 운이 좋았다. 신문사가 인력난으로 고통받던 시기에 수습기자 지원서를 내밀어 경쟁자도 없이 덜컥 합격했다. 때는 마침 동계훈련 기간이었기에 수습기자 딱지를 바로 뗄 수 있었고 기사를 신문에 바로 실을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기자는 첫
솔직히 말해서, 신문 한 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단 한 번도. 부끄럽지만 읽지 않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시사 상식을 얻는 것 말고는 딱히 장점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나 혼자만의 공상에 빠져 시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했고, 굳이 내가 눈길 주지 않더라도 여러 사건 사고들은 흘러가고 또 발생하니 그저 물길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대로 두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방학을 즐기던 중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동기에게 ‘홍대 신문을 읽고’ 코너에 실릴 글을 부탁받았고, 신문 한 호를
2020년 봄 홍익대학교에 부임했다. 대학 졸업 후 15년 간의 긴 사회생활을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대학 강단에 서는 나에게 지인들은 많은 축하와 더불어 부러움을 표했다. 부러움의 이유야 여러가지였지만, 젊은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낭만 가득한 대학 캠퍼스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의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그러나 주변의 기대와 달리 2020년의 대학은 내가 알고 있던 캠퍼스가 아니었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대학의 상황은 마치 전시를 방불케 했다. 당시 치료제는 커녕, 백신이 언제 개발될 수 있을지조차 기약할
지난 10일(목),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위원장은 “날씨는 오늘로 완연한 봄인데 어쩌면 민주당은 겨울로 들어갈지 모르겠다, 하는 걱정 어린 직감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낙연 위원장이 위와 같이 말한 문장은 선행절이 후행절의 배경을 알려주는,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이다. 후행절은 차치하고 우선 선행절만 보자. 맞는 말이다. 날씨가 부쩍 따뜻해졌다. 완연한 봄이다.신기하게도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시점과 날씨가 따뜻해진 시점이 유사하다. 경쟁자인 상대 후보에 대해 폭풍우 같은 언행을 펼치며 치열했던 선거운
N포 세대, 헬 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 무기력하고 자포자기한 심정의 신조어들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활기차고 능동적이어야 할 젊은 청년 세대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친 청춘들을 다루는 담론들이 전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참된 자아를 찾기는커녕 세속적인 성공마저도 포기한 젊은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 생존주의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들이 이렇듯 성공이나 자아실현을 좇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존재함’, 그 자체로 만족하게 된 것에는 여러 사회 구조적 원인이 있다. 이 글에서는 생존주의 세대가 출현하게 된 사회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