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고인돌의 성좌에 새겨진 한국의 고대철학』이란 제목은 다소 낯설게 들릴 것이다. 선사시대에 무슨 철학이냐고? 그러나 이런 제목이 붙기까지는 고뇌에 찬 배경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한국의 고대철학이라고 하면 고작 중국에서 들어온 유교와 불교 및 도교를 중점에 세우고, 그 주변은 토착신앙과 같은 것으로 치부한다. 과연 우리에게 중국에서 유입된 것 말고는 말할 수 있는 게 없는가?고구려의 고분벽화와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그리고 거기서 큰 문화적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오늘날 고도의 과학성이 전제되
김형구(1922-2015)는 아카데미즘에 입각한 사실주의적 인물상을 많이 표현한 화가이다. 그는 “미의 본질은 사물이 갖는 원초적인 신비를 색이나 형을 통해 추구하는 것”이라 믿고 이러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연이나 생활 정경을 별다른 가감 없이 화폭에 담았다. - 국립현대미술관 작가 소개 중 홍익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형구의 는 작품의 제목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아침 해변 풍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림이 환기하고 있는 아침바다의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조용한 바다 마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바닷일이라
열차 시간이 촉박한 듯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뛰어가는 여자,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는지 시끌벅적한 사람들 속 홀로 바쁘게 노트북을 두드리는 남자, 이른 아침 허한 배를 채우기 위해 빵집에서 산 샌드위치를 급하게 욱여넣는 남자. 아침 8시도 되지 않았지만 용산역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기자는 정읍행 열차를 기다리기 위해 바쁜 사람들 속에서 겨우 의자를 차지했다. 딱히 한 일은 없지만 역 내 사람들로부터 기운을 뺏긴듯한 기분 때문에 의자에 앉아 멍하니 TV 뉴스를 바라봤다. 어제도 오늘도 뉴스에선 같은 내용이었다.
장소는 시간이라는 상황을 만나 다양한 정서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홍익대학교박물관은 시간의 풍경을 담은 소장품 9점을 시리즈로 소개하여 시간의 풍경을 바라보는 미술가의 독특한 감성과 상상력을 경험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번 시리즈에서 소개될 첫 번째 소장품은 판화가 강승희(1960)의 ‘새벽 9669’(1996) 이다. 거대한 빌딩 숲의 실루엣 사이로 보이는 회색 하늘이 동이 트기 시작한 도시의 새벽을 보여준다. 거리를 빽빽이 채우던 많은 것들이 사라진 새벽의 도시는 잠시나마 아무도 살지 않는 자연의 상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라는 말은 언뜻 보기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런 맥락 없이 이 문장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꽤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이러한 문장의 논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본능’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주는 압박 때문이다. 이 문장은 본능이라는 명분으로 아름다움의 추구를 인정하고 허용해야만 한다고 주입하거나,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는 이들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일반화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 본능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추구해야만 하며,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
침대에서 일어나 뜨다만 눈으로 스위치를 찾아 화장실 전등을 키고는 변기에 앉는다. 아침 배변의 성패는 그날 하루의 기분을 결정하곤 한다. 학교에 와서는 볼일 보거나 손을 씻거나 혹은 옷매무새를 정리하기 위해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실제로 비뇨기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약 4~10회 화장실을 간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지금도 당신은 화장실 한 칸을 차지한 채 회색갱지를 부여잡고 일상 속 여유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화장실은 배변활동을 책임지는 동시에 우리 마음에 작은 여유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들
자신이 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이유는 책을 쓰고 나서 생각하면 미진한 구석이 있고 자칫하면 누군가에겐 책 홍보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홍보의 여지를 줄이면서 객관적인 눈으로 『개념설계의 시대』를 소개한다. 간결하지만 많은, 그리고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 재미나 흥미로 읽기엔 부적합하다. 작정하고 읽지 않으면 아마도 중간에 그만둘 것이다. 이에 중단하지 않고 읽도록 도움을 주는 글을 지금부터 쓰려고 한다.흥미나 재미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책은 저자의 안목인 프레임을 먼저 이해하면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의 「겨울의 순간들」의 일부분이다. 많은 동물들이 멸종위기 상황을 직면하게 된 지금, 서로의 운명으로 엮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번 展은 인류가 직면한 과제인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해답을 서로 다른 세 작가의 시점에서 찾는다. 전시는 ‘믹스 미디어(Mixed-Media)’ 기법을 활용하여 영원의 생명력을 회복하고, 공존을 모색하며 예술로 자연의 권리를 노래하기까지 이른다.
남해안에 비가 내리는 8월의 어느 날, 기자는 맑은 하늘을 뒤로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섬, 소록도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반도의 끝자락이라 볼 수 있는 전라남도, 전라남도에서도 남쪽 끝에 덩그러니 위치한 소록도까지 버스를 타고 무려 6시간을 가야 했다. 3번의 버스 환승과 6시간이라는 긴 시간 탓이었을까. 기자가 느끼기에 소록도라는 섬은 사람들에게서 고립돼 어쩐지 외로운 느낌이 드는 섬이었다. 소록대교에서 비 내리는 소록도와 바다를 바라보니 우울한 감정이 기자를 사로잡았다. 아무래도 『당신들의 천국』(1976)에서 인간
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든다’는 것을 마냥 반가워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면 몸이 쇠약해지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인지, 사람들은 ‘늙음’보다는 ‘젊음’을 추구하며 성형이나 시술 등 과학기술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자연의 순리에 발맞추어 점점 늙어가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누군가는 나이가 들고, 조금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도 한다. 앞으로 소개될 세 영화를 통해 배움과 도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나에게 대학 학보에서 처음 들어온 원고 청탁은 상대성 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그땐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신문 및 잡지 그리고 전문 서적이 인터넷과 함께 지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과학에 관한 지식이 이해하기 쉽게 쓰인 기사는 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활자로 된 서적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의 앱(app)과 유튜브(YouTube)를 통해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교육공학 기술과 시각 효과 및 음향 효과까지 추가되며 과학에 관한 정보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조선후기 18~19세기에 유행한 신선도(神仙圖)는 양란(洋亂)을 거친 뒤 혼란한 시기에 등장하였다. 궁중회화에서 민간으로 퍼진 신선도는 국가의 명운이 위기에 처한 대한제국 시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생명력의 지속에 대한 열망으로 더욱 유행하였다. 시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임금의 만수무강(萬壽無疆)과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하고, 왕조의 영원을 위해 궁중 헌납용으로도 그려졌다. 따라서 도교의 신선사상은 생명에 대한 위기의식이 느껴지는 사회적 혼란기에 유행하였고, 신선도는 그 영향으로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신선도는 도교가 바탕이 되는 회
연필, 지우개, 테이프 등.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찾게 되는 문구들은 내 책상이나 사물함 어딘가에 있을 것 같지만 막상 필요할 때 찾으려 하면 없거나 찾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그중 접착력을 통해 무언가를 봉하거나 벽 등에 붙이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는 테이프(Tape)는 그 편리함 덕에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되었다. 스테이플러만 들고 게시판에 홍보 포스터를 붙이러 다닐 때엔 그 짧은 셀로판 조각이 매우 간절하게 생각난다. 편리한 접착 조각의 탄생접착용 테이프가 사용된 최초의 기록은 1676년 류트(16세기를 중심으로 유
디즈니(Disney)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이야기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아 왔다.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가지고 삶을 그려나가는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은 단순한 재미를 떠나, 보는 사람들에게 세상 속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쯤 생각해볼 수 있게한다. 이번 에서는 약 100년에 걸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원화, 스케치, 그리고 컨셉 아트 등을 만날 수 있다. 디즈니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미키마우스(Mickey Mouse)’
하필 전국에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기자가 타고 있던 안동행 고속버스는 비 오는 도로를 세차게 달렸다. 도착하기까지는 약 네 시간 반, 그동안 기자는 『몽실 언니』(1984)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책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으로, 해방 직후부터 한국 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었다. 계속되는 마감에 지칠 대로 지친 기자에게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생(生)의 끈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들의 슬픈 사연과 저마다의 처절한 삶은 기자에겐 채찍질과 같았다. 지금껏 무얼 탓하며 살아온 것인지 반성하게 했으며, 앞으로의
최근 몇 년 사이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화두는 우리의 일상을 넘어 주된 문화적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불과 삼 년 전만 해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이 낯선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 사회에 ‘혼밥’ 문화가 뿌리 깊게 안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홀로서기’ 문화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혼자서는 무언가를 도전하기 두려운 사람,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또한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으로 인해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
‘희망’에 대해 낮게 소리 내어 말하는 일 중국을 대표하는 근대문학자 루쉰(魯迅, 1881~1936)은 자신의 첫 번째 소설집에 ‘함성’이라는 의미의 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동시대 중국의 ‘희망 없음’에 대해서 말하였다.“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오래지 않아서 모두 숨이 막혀 죽을 거야.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사멸되어 가고 있는 거니까 죽음의 비애 따위는 느끼지 못할 걸세. 지금 자네가 큰
우리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지구는 영원할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생태계는 계속해서 병들어가고 있다. 展에서는 지구 생태 위기 속에서 긍정적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도들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전시는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위기 속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모든 생명체가 조화를 이루며 연대하는 ‘새로운 모습의 공동체’를 상상하기까지의 모습을 아우른다. 이 전시에 참여한 14명의 작가들은 훼손된 지구
“오, 성스러운 초콜릿이여! 사람들은 무릎 꿇고 갈고 있고, 두 손 모아 당신을 부수고 있구나. 그리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당신을 마시네.” 스페인의 한 시인이 쓴 초콜릿을 찬양하는 시다. 이 시의 묘사처럼 초콜릿은 아주 오래전부터 성스럽고 귀하게 여겨진 음식이다. 초콜릿의 원산지인 남미의 마야 유적지에서 출토된 항아리를 보면 카카오나무에 옥수수 신의 머리가 달린 그림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는 마야인들이 초콜릿을 주식인 옥수수만큼이나 귀하게 여겼다는 의미다. 이렇듯 초콜릿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물고기나 게 등을 그린 어해도(魚蟹圖)는 그림의 소재가 다양해지던 조선 후기에도 즐겨 그려지던 소재 중 하나였다. 그림 속 물고기가 상징하는 바는 크게 3가지로 다산, 등용, 벽사 등 길상이다. 알을 많이 낳는 물고기 자체의 특성에 비롯하여 물고기는 다산, 다복, 풍요를 의미하고, 물은 임금에, 물고기는 신하에 비유되기도 하여 등용과 화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는 뜬눈으로 부정한 것을 항상 경계할 수 있기에 벽사를 의미한다. 어해도는 조선 후기 회화의 사실 정신에 맞물려 사생을 통해 실제와 닮게 그려지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