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는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는 황해도 고산군 석담리에 있는 고산구곡의 아홉 곡을 그린 10폭 병풍이다. 고산구곡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 율곡 이이(李珥, 1536~1584)가 「고산구곡?뭏?지은 배경이자 서원을 경영하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이이는 주자의 무이구곡처럼 조선 땅에 구곡을 두어 주자를 따른 성리학자의 면모를 보였다. 고산구곡은 이후 1세기가 지나서야 그림의 소재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주로 〈고산구곡도〉는 주자에서 이이로 이어져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에게까지 성리학의 도통이
4월의 어느 날, 기자는 유독 날씨가 흐리던 서울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남강이 흐르는 도시, 진주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경상남도에 위치한 진주는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무려 4시간을 가야 하지만, 힘들고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자의 생각이 무색할 만큼 진주로 가는 길 창밖으로 본 자연은 아름답고 푸르기만 했다. 서울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산과 자연이 곳곳에 펼쳐진 풍경이 낯설어서일까. 기자는 점점 진주에 가까워질수록 이번 여행의 주인공인 ‘논개’의 삶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을 끌어안
이전 호에서 『태백산맥』(1989)을 취재한 기자는 이번에는 벌교를 떠나 진도로 향했다. 목적지까지 향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이었다. 기자는 2시간이나 차 안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꽤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차량이 도로에 들어서자 기자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한반도 최남단에 있는 해남의 푸른 바닷가와 조용한 마을을 보면서 기자는 평화로움을 느꼈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매일 과제에 쫓기며 무엇인가를 해내야만 하는 도시속 일상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해방감도 잠시, ‘아차!’ 싶었다
“떫은 홍차에는 영국의 현실주의가, 엽차의 신비한 향미에는 오리엔트의 꿈이 서로 대조적인 맛을 풍기고 있다.”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中-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이어령(1934~) 작가가 홍차에 대해 남긴 말이다. 위의 말처럼 엽차(葉茶)가 동양의 차 문화를 상징하듯, 홍차는 우리에게 영국의 대표적 차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차의 원산지는 중국이고, 홍차 역시 그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또한 홍차는 단순히 귀족만의 전유물이 아닌, 영국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음료이자 남녀 갈등의
역사학자들끼리 하는 재미없는 농담이 있다. “자신이 전공하는 시기와 자신이 사는 시기는 언제나 대전환기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시기나 격변의 시기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도 최근 ‘4차 산업혁명’이나 ‘AI’와 같은 용어를 ‘딸기’나 ‘시계’ 같은 단어보다 더 자주 듣게 되니, 지금이 바로 인류사의 대전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객관적 근거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필자 일생 안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다는 특이점에 도달하여 신세계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인간의 노동력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체해 할 일을 잃은 사람들이 극단적으
자연의 아름다움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무심코 쓰는 모든 인공물들은 생태계에 가늠할 수 없을 큰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이번 展에서는 아름다움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서지만, 비극으로 가득 차 있는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수백 만개의 이미지를 직접 촬영하고 조합했으며, 자연과 인간의 삶을 존중하고 아끼자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생태계의 아름다움 너머에 있는 아픔에 공감하고 작가가 던진 “인간이 저지른 거대한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스스로에게 있는가
교보문고는 지난 3월 넷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이자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2018)를 선정했다. 어떤 독자는 단순히 겉표지의 귀여운 곰돌이 푸 캐릭터에 반해, 또 다른 독자는 책 속의 구절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이 책을 구매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독서를 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다.독자들을 ‘힐링’하게 하는 베스트셀러 도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독자는 책 속에 등장한 주인공과의 동일시 또는 거리감
홍익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하는 과 은 조선시대와 근대에 제작된 유물로 한국 전통 목가구의 양식을 이해하고, 선조들의 문화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현존하는 전통 목가구는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으로, 전통 목가구의 양식은 당대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의 기반이 되는 유교 사상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유교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조선 시대에는 남녀의 생활공간이 구분되었으며, 이것의 영향으로 전통 목가구는 생활공간에 따라 크게 안방 가구와 사랑방 가구, 그리고 부엌 가구로 구분됩니다. 안주인인 여성의 방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을 생각하면 밥을 짓는 따뜻하고 고소한 냄새와 맛있는 반찬 냄새가 풍기는 부엌 풍경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1950)에서의 부엌은 신데렐라가 계모와 의붓언니들의 구박을 받으며 온갖 궂은일을 하는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부엌은 어떤 이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가족이 모이는 ‘따뜻한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겐 ‘노동의 공간’에 그치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의미를 지닌 부엌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부엌에 담긴 우리 이야기 부엌
홍익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하는 정점식(1917-2009) 선생의 ‘두 사람’(1956)은 인물을 소재로 한 신사실주의 경향의 반(半)추상작품입니다. 선과 면으로 요약된 두 개의 인간형상이 화면에서 좌우대칭을 이루며 형상의 외곽이 검은 테두리로 강조되어 석상과 같은 묵직하고 장중한 조형감을 가집니다. 또한 단순화된 형태와 모노톤의 색조, 그리고 평평한 화면이 작품의 추상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정적인 이 작품에서 머리 부분에 머리카락처럼 휘날리는 검은 선이 눈길을 끕니다. 1950년대 한국 미술을 이끌었던 주요 화풍 중에는 자연
이 책은 한마디로 문학이 인간의 삶에 제공해줄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의 화두를 붙잡고 쓴 것이다. 서양문학 전공자인 필자는 30여 년간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서양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깨우침 혹은 혜택이 있다면, 그것이 지닌 ‘비극문학전통’에서 가장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서양문학은 그의 시작인 고대 희랍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부터 인간의 고통과 수난을 작품의 주요한 대상과 모티프로 삼았으며, 이는 후대 문학의 가장 중심적인 색조와 성격의 한 면을 규정하게 된다.
‘살아있는 프랑스 문학의 신화’ , ‘생존하는 프랑스 작가 중 가장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는 작가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 1940~)는 프랑스인임에도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소설 『조서』(1963)를 시작으로 최근 『빛나 : 서울 하늘 아??2017)까지 총 158권의 소설을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다양한 역사적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소설의 배경은 사막, 섬 등 낯선 장소일 때도
현대 영화에서 분장은 영화 속 등장인물을 돋보이게 만드는 필수 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분장은 영화 속 인물의 성격, 살아온 모습 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최근 사극 분장의 경우 발달된 인터넷 덕에 소품이나 분장에 조금이라도 실제와 다른 모습이 있다면 고증오류라며 지적을 받는 경우가 많아, 더 치밀한 분장 준비가 요구된다. 이번 은 한국영화 분장의 대표주자인 조태희 대표가 참여한 영화에 사용된 분장 도구와 소품, 컨셉드로잉 등 총 500여점에 달하는 전시품을 통해, 영화 속 인물을 완성하기 위
홍익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하는 남관(1911~1990) 선생의 (1964)은 프랑스 앵포르멜(Informal)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으로, 서구 추상미술이 수용된 1950년~1960년대 초기 한국 추상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입니다. 무겁고 어두운 색조가 특징인 이 작품은 세월의 흔적으로 녹이 슨 철물을 연상시키며, 추상적인 문자 형태가 마치 고대 언어가 새겨진 유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우리에게 익숙한 김환기(1913-1974) 선생을 포함한 한국의 여러 추상 화가들은 1950~60년대에 걸쳐 프랑스에서
광장에서 거리 예술가가 공연을 시작하면, 구경꾼들은 원을 그리고 서서 거리 예술가의 공연을 구경한다. 사실 꼭 원 모양으로 서서 구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강의실에서처럼 거리 예술가를 정면에 둔 채 여러 줄을 만들어 구경하는 일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개는 자연스럽게 원 구조가 생겨나는데, 이때 주목할 만한 것은 구경꾼들 중 어느 누구도 원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워 행동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경꾼 개개인은 ‘가능한 한 공연이 잘 보이도록 서있으면서도 자신을 특별히 노출시키지 않도록 선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의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속초행 고속버스에 탑승했다. 기자가 속초에 처음 간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다. 겨울 바다를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스무 살 소녀는 속초 바다의 시원한 바람과 알싸한 내음을 잊지 못한 채 어느덧 기자란 이름으로 속초를 다시 찾았다.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두 시간 반. 좌석에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사이 기자는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 이윽고 햇살이 눈부셔 밖을 보니 한가득 눈이 쌓인 산등성이가 보였다. 올해 겨울엔 눈이 별로 내리지 않아 내심 서운한 마음이 컸는데, 그
어렸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우리는 모두 연필 한 자루를 잡은 손끝에 힘을 가득 담아 삐뚤빼뚤한 글자를 종이에 꾹꾹 써 내려갔다. 하지만 점차 필기에 익숙해지면 미리 깎아놓을 필요가 없어 편리한 샤프와 펜을 자연스럽게 즐겨 찾게 된다. 때문에 연필을 이용해 작업을 하거나 특수한 상관관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연필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도구이다. 하지만 연필에는 과거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 내재된 잠재력과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 여태 느껴보지 못했던, 연필이 인류사에 그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임현진 교수는 ‘지식인’을 인간사에 대해 고뇌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지니고 사회의 모순에 대해 고민하며 건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집단으로 규정한다. 그는 그 예로 대학생, 교직자, 문학가, 종교인 등을 제시했다. 본 기사에서 내리는 지식인에 대한 정의는 임 교수가 규정한 것과 같음을 밝혀둔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지식인으로 여겨지는 집단에게도 이 정의는 유효한가? ‘대학원생에 대한 폭언· 성추행 대학교수’와 ‘성범죄 가해 목사들의 여전한 목회 활동’ 등 일부 지식인의 비위(非違) 행위가 각종 언론에 연이어 보도되고 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 우리가 사는 이곳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조상들은 우리를 억압하는 일제와 다양한 방식으로 맞서 싸우고 있었다.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화를 통해 뜻깊은 역사를 되짚어 보며 우리로 하여금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번 전시는 ‘예술에 있어서의 독립 문제’를 주제로 대변혁기의 우리 예술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고자 기획되었다. 또한 독립운동가 겸 저항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의 친필이 일반에
우리의 일상에서 읽고 쓰는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토록 큰 적이 있었을까? 잠에서 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밥을 먹으면서, 화장실에 머물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읽고 쓴다. 심지어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도 문자를 주고받으며 소통한다. 읽고 쓰는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우리는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읽고 쓰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하면 빨리 읽고, 어떻게 쓰면 ‘좋아요’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지만이 우리의 관심사이다. 이러한 맹목적인 읽기와 쓰기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그저 문자를 실어 나르는 기계가 되어 가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