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대학의 소식을 그 대학의 학생이 만든 신문으로 접하니 대학생의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학 생활을 기대하는 신입생이 들어와 캠퍼스는 한층 생기가 돌고, 과제 활용에 ChatGPT를 사용하는 것은 뜨거운 화두이며, 높은 자취방 월세가 부담인 것은 홍익대학교나 우리 학교나 비슷했다. 이번 호 중 나의 관심을 끌었던 2개의 기사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았다.2면에 실린 ‘대학가 내 챗GPT 논란…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기사를 읽고 신기술에 직면한 대학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고민해 보았다. ChatGPT는
대부분의 현 세대에게 ‘종이 신문’이라는 것은 익숙치 않은 매체 중 하나이다. 기술이 발달한 현 사회에서 우리는 전자 기기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신문 외에도 즐길 매체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신문을 꺼리곤 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학교 내외의 소식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홍대신문’이다.2023년의 첫 번째 홍대신문, 1319호를 읽고 필자의 느낀 점을 전하려 한다. 홍대신문의 1면을 장식한 기사는 ‘2023 신입생 입학식’이었다. 필자가 입학했던 작년에는 입학식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대면으로 진행되는
홍익대학교에 다니는 친구에게 대학신문을 읽어보고 투고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뉴스는 물론 인터넷 기사도 잘 보지 않는 필자이지만, 필자와 비슷한 나이의 홍익대학교 학생들이 쓴 기사는 어떨지 궁금했기에 좋은 경험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1317호를 보고 필자가 느낀 점들은 이러하다.실내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 여부에 관한 기사가 먼저 보였다. 지난해 11월 10일(목)부터 11일(금)까지 그리고 14일(월)부터 16일(수)까지 5일 동안 홍익대학교 재학생들에게 실내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에 관하여 투표를 진행했다고 한다. 전체 576
홍익대학교에 재학 중인 친구를 통해 홍대신문을 읽게 된 것은 꽤 좋은 경험이었다. 평소 뉴스도 잘 안 보는 편이지만, 비슷한 또래가 기자로서 적은 기사와 신문에 담긴 사건에서 비슷한 고민과 여러 생각들을 엿볼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으며 덕분에 읽는 동안 굉장히 흥미로웠다. 다음은 내가 여러 기사와 글을 보고 느낀 바이다.지난 10월 29일, 너무나 참혹한 참사가 벌어졌다. 이태원 참사는 3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비롯해 온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1316호에서도 그 상처가 드러났다. 애도 기간과 날짜가 겹쳤던 와우
오랜만에 홍익대학교에 다니는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대학 신문 기자로 들어와서 강연 인터뷰를 하러 간다고 한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었다. 사실 대학 신문을 학생들이 쓰는 거라고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놀라움이 가시기 전 나중에 신문이 발간되면 읽고 서평을 써 달라고 하는 과제를 내줬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받아본 신문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다른 대학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는 기회가 된 것 같다.대학도 역시 많은 사람이 같이 사는 공간이다 보니 비슷한 논란들이 생기는 것 같다. 담배 냄새에 관한 논란에서 많은 공감
바야흐로 정보의 범람 시대다.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뉴스의 양은 신문 한 부의 분량을 아득히 뛰어넘은 지 오래다. 거추장스럽게 크고 팔랑거리는 종이신문보다는 작고 편리한 휴대폰이 우리의 손에 들어왔다. 그런 이유로 종이신문을 보는 것은 퍽 생소하고 낯선 일이 됐다. 처음 홍대신문을 받았을 때의 감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 이거 오랜만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신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신문의 마지막 면까지 읽고 난 후의 감상은 “아, 이거 생각보다 괜찮네”였다.홍대신문 한 부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학교
며칠 전부터 지하철을 이용해 통학하는 그 지루하고 긴 시간에 새 친구가 생겼다. 바로 홍대신문이다. 마냥 버려지는 시간이 홍대신문을 통해 알차고 흥미 있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자투리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처음 신문을 보았을 때 자그마치 1313번째로 발간하는 신문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홍대신문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에 대해 신문사 사람들이 굳건한 책임감으로 신문을 제작함을 느낄 수 있었다.본교에서 현재 가장 큰 화두는 바로 공사 중인 건물들일 것이다. 캠퍼스 내를 둘러보면 눈에 보이는 곳마다 공
여러 이유로 종이신문을 읽지 않은 지 오래였다. 친구의 부탁으로 펼치게 된 신문지는 어색함과 함께 새로운 기분을 단번에 느낄 수 있게 했다.종이로 된 신문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첫 지면의 헤드라인이 아닐까 싶다. 『홍대신문』 1311호의 그것은 세종캠퍼스 총동아리연합회 회장단의 선출을 알리는 기사였다. 교내 동아리 활동에 전반적으로 관여하는 조직인 만큼 비중을 두고 다룬 듯했다. 당선인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선거 정황이나 당선인들을 미리 철저히 조사하고 질문을 준비한 모습이 엿보였다. 실상 2020년 이후로
‘22학번 새내기’라는 이름을 달고 대학에 입학한 필자는 빠르게 대학 생활에 적응해야만 했다. 같은 학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고등학교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였다. 나는 그 점을 간과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발등에 떨어진 불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친구가 건네준 신문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학 신문에는 대학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학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이 소개되어 있어 내가 주도해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려줬다. 또한, 취업에 관한 기사와 자료들은 대학 이후 진로에 대한 고민을 상기시켜 주었고 미래에 대한 안목을 넓힐
정확히 10년 전,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던 캠퍼스에서 학내 신문사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대학 생활의 반 이상을 학내 신문사 기자로 생활한 후, 대학교 직원으로서 『홍대신문』을 읽어보니 그때 가졌던 뜨거운 열정을 다시금 떠올린다. 편집 회의로 늦은 밤까지 동료 기자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 인터뷰를 위해 뛰어다녔던 기억들은 신문을 읽으면서 독자들의 입장은 물론, 학생기자들이 가진 열정까지도 느끼게 해주었다. 『홍대신문』의 콘텐츠는 매우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그중 지난 호 1페이지 메인에 실린 신
솔직히 말해서, 신문 한 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단 한 번도. 부끄럽지만 읽지 않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시사 상식을 얻는 것 말고는 딱히 장점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나 혼자만의 공상에 빠져 시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했고, 굳이 내가 눈길 주지 않더라도 여러 사건 사고들은 흘러가고 또 발생하니 그저 물길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대로 두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방학을 즐기던 중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동기에게 ‘홍대 신문을 읽고’ 코너에 실릴 글을 부탁받았고, 신문 한 호를
고등학교에서 언론인의 꿈을 품고 교지부 부장으로 활동했던 필자에게 『홍대신문』의 감상문을 쓸 수 있는 기회는 설렘과 기대로 다가왔다. 우수한 기사들을 꼼꼼하게 읽어보면서, 교내 학생들은 물론이며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도 귀감이 될 『홍대신문』 기사의 내용과 특징을 모색해 보았다.1면의 헤드 기사는 ‘총학생회 미구성’이라는 하나의 점, 즉 단편적 사실의 기술에서 그치지 않고 넓은 맥락으로 나아가 추천인 제도 시스템과 여론이라는 두 가지 구조적인 측면에서 문제의 원인을 분석했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다. 미시적 접근에서 거시적 접근으로 내용을
홍대신문을 읽으면서 대학생 시절 학보사의 기사를 읽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현재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읽게 된 홍대신문에서 직장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대학생들의 열정과 패기, 대학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도 느낄 수 있었다. 1면에 실린 김성현·안동권 기자의 ‘본교 세종캠퍼스 용역 노동자 쟁의행위 돌입’은 흔히 ‘을’이라 불리는 이들이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월 발생한 서울대학교 청소 용역자 사망 사건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만, 민노총의 입장만 담았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노동자 측의 요구 사항
평소 종이신문은커녕 인터넷 신문도 잘 보지 않았던 나에게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홍대신문은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홍익대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더불어 기성 신문처럼 다른 학교 학생들이 읽어도 재미있고 공감하면서 읽을 만한 기사들을 많이 실어놓았다. 홍대신문의 첫 페이지에서는 홍익대학교 내의 소식이 나오면서 ‘학교 신문인만큼 학교 내의 일을 많이 써놨구나’ 했는데 뒤로 갈수록 다른 대학생이 읽어도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기사들이 많이 있었다. 1면의 첫 번째 기사를 통해 총동아리연합회에서 일반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참여를 늘리
수많은 관중들 사이에 팔짱을 끼고 최근의 사회를 무심히 관전하는 사람들은 현재 우리나라를 혐오가 만연한 사회라고 평가한다. 권력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범죄에 온갖 핑계와 옹호를 덧붙여 논점을 흐리다가 결국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혐오의 사회’라는 단어로 뭉뚱그림으로써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사회를 망치는 난봉꾼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폭력과 부당함이 반복되면서 운명처럼 불거진 혁명과 변화의 사이에서 누군가는 피곤함을 느끼기도 하고, 틈새를 노려 그럴듯한 비논리로 제 주머니만 챙기는 얌체가 판을 치는 와중에도 세상은 어찌어
개인적으로 홍대의 미술 특성을 담은 기사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이채린 기자의 홍대 거리미술전 기사에서 ‘홍대거리는 ‘우체통’이 되고 그 안은 누군가가 보낸 작품인 ‘우편’으로 채워지게 된다’는 기사 초반내용이 인상 깊었다. 미술적 감성을 이끌어내어 거리미술전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점이 좋았다. 박찬혁 기자가 쓴 디자인 어워즈 수상 기사는 개념적인 내용을 나열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수상관련 기사인 만큼 그 수상에 들어간 노력이나 수상의 의의를 더 강조했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주제기획 면에서 메타버스에 대해 쓴 기사
박찬혁 기자는 재학생의 소장 도서 수, 연면적, 직원 수 등을 근거로 타 대학과 비교해 본교 도서관의 부족한 현황을 보여주었지만, 현황만 나타날 뿐 이에 대한 대안과, 도서관의 이용률을 높일 수 있는 개선 방안 등을 제시하지 못해 아쉽다. 또한 대출 도서 수를 근거로 도서관의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필자는 시험 기간에 공부를 하거나 과제를 할 때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어느 대학이든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에서 자리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어느 시점인지에 따라 방문자 수의 차이가 있기 때
김성현 기자의 “본교 세종캠퍼스 학우들 학교 시설에 불만 표출” 기사는 세종캠퍼스 기숙사에서 생활 중인 학우들의 여건이 취약한 점을 잘 보도했지만, 기숙사의 노후화된 환경 개선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문제점에 대해 조금 더 노력을 기해 차후 대책을 작성했더라면 더 좋은 기사가 되었을 것이다.문수현 기자와 엄태양 기자가 쓴 문화 기사는 각각 사랑과 노래에 대한 영화, 뮤지컬 작품에 관한 기사였다. 전반적으로 사진과 글의 구조가 다소 복잡하게 이뤄졌다는 느낌을 받아 기사의 가독성이 떨어졌다.김성현 기자의 “
필자가 제목을 이처럼 정한 것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홍익대학교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붉은 화살표이기 때문이다. 붉은색은 홍익대학생의 열정을, 하늘을 향하는 화살표의 형상은 트렌드와 미래를 추구하는 홍익대학교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홍대신문이 언론으로서 학생들의 이정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2면에서 안내자로서의 홍대신문의 역할이 가장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2면에서는 ‘군 복무 사회봉사 경력 학점 인정제도’를 주제로 기사를 작성했다.
홍대신문을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홍대신문이 언론의 기능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필자에게 ‘학보사’란 단순히 교내의 소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전달자’의 개념에 불과했다. 물론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은 중요한 역할이자 신문의 존재 이유다. 하지만 정보 전달의 기능만을 수행한다고 해서 그 매체를 ‘언론’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번 호 홍대신문을 살펴보며 그 대답을 찾아보려 했다.1면 ‘코로나 시국 속에서 입학한 신입생을 만나다’에서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하여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