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평론가는 ‘눈’을 총동원해 작품을 해석하며 때로는 찬탄을 보내고 때로는 신랄한 비판을 한다. 일반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관에서 나오면 일제히 이래서 좋았다, 인물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 결말이 아쉽다 등 나름의 ‘눈’을 펼치며 토론하곤 한다. 이때 단번에 “재밌었다!” “별론데?” 왈가왈부할 수 있는 영화가 보통이지만,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가 절로 나오는 영화들도 있기 마련이다. 기자에겐 장률 감독의 가 그러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보통이 아닌 영화였다. “아저씨, 나랑 여행 갈래요?”“꺼져.”“일
지인과 (2022)에 관한 대화를 한 적 있다. 지인은 이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영화라 말했고 기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자가 생각하는 완벽한 영화는 무엇이냐”는 질문엔 도리어 답하지 못했다. 갖가지 영화를 나열해봐도 모두 조금씩의 결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신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은 있다. 좋은 영화는 보고 나면 여러 감정, 즉 여운이 남는다. 이 완벽하진 않더라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Andre Paul Guillaum
기자가 박해영 작가의 (2018)를 택한 건 인생의 쓴맛을 많이 볼수록 더 많이 위로받고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행복하자” 는 뻔한 말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하루를 버틴다. 각각 다른 퍼즐 조각처럼 모두 다른 사연이 있고 버티는 방식도 다르지만 서로를 통해 ‘행복’이라는 퍼즐을 마침내 완성시킨다.에는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아저씨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 중에는 정리해고를 당하고, 여러 번 말아 먹은 장사로 아내와 별거
기자가 이 코너를 위해 처음 선택한 작품은 이 작품이 아니었음을 고한다. 기자는 본래 평창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다루려 했다. 그러나 3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평창에서 촬영지로 향하는 버스는 하루에 단 두 번밖에 운행하지 않았고, 택시는 잡히지도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집에 가야 했고, 계획했던 모든 일이 꼬인 그날은 정말 ‘최악의 하루’였다. 다시 평창을 가기에는 시간이 없었던 터라 급하게 새로운 작품을 선택해야 했던 기자는 서촌과 익선동을 비롯한 종로 일대와 남산에서 촬영된 이 작품을 알게 됐다. 기자
수많은 현대인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지고 산다. 한강 뷰 아파트에 초고층 주상복합.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통창의 주거 공간. 편하게 쉴 수 있는 나만의 집을 갖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곤 한다. 그런 공간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안정감을 위해서다. 하지만 여기, 담배와 위스키 살 돈이 부족해서 집을 포기한 청춘이 있다. 바로 영화 의 ‘미소’다. 미소는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만 있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의 집을 청소해주며 생활비를 버는 미소는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작은 쪽방에서 산다. 빠듯한 생활을 하던 미
미생(未生).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大馬)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 완생(完生)의 최소 조건인 독립된 두 눈이 없는 상태를 이른다. 『울산매일신문』 2013년 8월호에 실린 문장을 빌리자면 ‘바둑판에서 미생은 한 집뿐인 상태를 말하며 두 집을 만들어야 완생이 되어 살아남을 수 있는 바둑판에서 한 집만 가지고는 죽은 목숨’이라 한다. 드라마 (2014)은 직장인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뒤늦게 이 드라마에 푹 빠진 기자는 미생이 종영한 지 8년이 지난 지금,
서대문구에 위치한 홍제동 개미마을은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달동네다. 오늘 소개할 영화 (2020)의 주인공 ‘이찬실’은 자신에게 닥친 벅찬 현실을 뒤로하고 달동네로 이사 간다. 그래서 기자도 눈앞에 쏟아지는 벅찬 과제를 쳐다보다, 그만 두 눈을 꼭 감고 택시를 타버렸다. 찌더운 여름날 카메라 하나 덜렁 들고 떠난 홍제동 개미마을과 다산 성곽, 그곳엔 찬실이가 있었다. “언니, 이런 산 공기를 쐬고도 다시 못 일어나면 언니는 사람도 아니야” 영화는 웅장한 음악이 깔리고 ‘감독님’이라 불리는 한 남성이 심장을 움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자우림의 노래 제목이자 tvN에서 2월 12일(토)부터 4월 3일(일)까지 방영한 인기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드라마 (2022)는 노래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가사처럼 영원할 줄 알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청춘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덮쳤을 당시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 그리고 사랑 이야기가 담긴 이
진해는 군항제로 유명한 도시다. 매년 4월 벚꽃 개화 시기를 맞아 정문을 개방하는 해군사관학교 주위로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군항제는 3년째 열리고 있지 않지만, 진해의 벚나무들은 매년 겨울, 봄을 기다리며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이맘때 그 바닷가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과는 관계없이, 진해를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추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진해를 떠나 서울로 온 어느 성공한 소설가는 젊은 시절 어머니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겨야겠다는 결심을 이루기 위해 진해로 돌아온다. 꽤 오래
귀농이라는 사회적 트렌드가 부상함은 도시라는 공간이 대중의 일상성을 대변함을 추측하는 동시에,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 줄 별도의 공간으로 시골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러한 맥락에서 최근 몇 년 사이 귀농을 소재로 한 방송과 드라마가 인기를 끈 한편, 그러한 소재들은 판타지를 자극하기 위한 단순한 포맷, 즉 정착과 적응의 서사로 점철되어 간다. 이는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응도를 차치하더라도, 귀농에 ‘실패’한 이들이 도시로 돌아오는 현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2018)는 눈밭에 쌓여 꽁꽁
북촌 거리를 걷다 보면 생각나는 영화가 몇 개 있다. 대부분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이다. (2011), (2013) 등 홍상수 감독의 많은 영화는 북촌을 배경으로 하고, 나오는 카페나 식당도 겹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새 학기의 파릇파릇한 새싹을 떠올리며 기자는 홍상수의 영화 중 (2018)을 가져왔다. 탄생은 언제나 죽음과 함께한다. 영화 (2018)의 풀잎들은 자라나고 있는 것일까 죽고 있는 것일까. ‘저 사람은 오늘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영화에는 다섯의 짝이 등장한다. 그들은
국어 교사였던 이창동(1954~) 감독은 늦은 나이에 영화 (1997)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1999), (2007) 그리고 (2010) 등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되었다. 영화 은 청춘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칸영화제와 대종상영화제 등에서 상을 받은 소위 ‘좋은 영화’다. 하지만 3명의 주요인물을 중점으로 사건이 시작되며 관객들까지 미스터리한 진실을 찾아야 하므로 ‘어려운 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위 작품은 수많은 메타포를 비롯한 다양한 해석이 있는 거대한 구멍
이제 막 중간고사를 마친 기자는 많지 않은 시간이지만, 『도요새에 관한 명상』(1979)의 배경을 답사한다는 생각에 들떴다. 작품에서 꼬집은 참담한 근대 산업화 현장, 그로 인한 환경 파괴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마감까지 일주일 남았다는 점, 동진강 부근에 교통편이 비교적 열악하기에 차를 빌려야 하지만 차를 빌리기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점 때문에 하루 남짓의 시간밖에 할애할 수 없었다. 시간적 제약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신문사에서 나름 베테랑에 속한다는 자부심에 하루는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며 동진강 하구로 향했다.김원
생각해보면 주위에 감사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나를 도와준 사람들, 일면식도 없는데 흔쾌히 조언해준 사람들까지.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단 한 사람의 도움이라도 없었다면 분명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가끔 일이 잘 풀릴 때 나의 업적만을 생각하다 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잊을 때가 있다. 이에 대해 영화 (2006)는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사람은 절대 혼자서 빛날 수 없다는 것을. ‘이젠 괜찮은데, 사
기자는 사랑이란 서로가 첫눈에 반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하루 만에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보통 우연히 사랑에 빠지는 것은 로또 당첨만큼 어렵다. 우리들의 사랑을 떠올려보자. 처음에는 진전이 없고 운명이 아닌 것 같다고 자책하지만, 결국 서로에게 스며들며 사랑이 싹튼다. 이처럼 이정향(1964~) 감독의 (1998)은 상극이라고 생각하던 남녀가 여러 사건을 함께 겪고, 서로를 배려해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군 복무 중인 ‘철수’가 마지막 휴가를 애인과 보내려 ‘다혜’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무더웠던 날씨가 점차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로 바뀌자 문득 기자는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온다는 것을 느꼈다. 대학생들에게 여름의 더운 날이 지나가고 가을이 온다는 것은 곧,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강이 다가온다는 의미다. 방학 동안 인턴십으로 바쁜 나날들을 보낸 기자는 개강하기 전 외로운 마음과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멀리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핑계 삼아 청춘의 사랑과 이별을 담은 허진호(1963~) 감독의 영화 (2001)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은수: 여보세요.상우: 네, 여보세
때는 5월 초였다. 보따리 취재를 위해 기자실에 취재 수첩, 카메라를 가지러 가는 길이었다. 기자의 자취방에서 학교로 가려면 홍대 ‘걷고 싶은 거리’를 경유해야 한다. 당시 걷고 싶은 거리에서는 시위대가 일렬로 서서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다. 기자는 잠깐 서서 시위대를 바라봤다. 사진 찍을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음이 한스러웠다. 돌아올 때 카메라로 찍으리라 다짐했지만, 돌아왔을 때는 이미 시위대가 돌아간 후였다.다음 날, 영화 (2017)의 막을 연 남영동 대공분실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다. 어제 목격한
요즘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며 여유를 만끽하거나, 그 운치를 즐겨보는 것은 까마득하게 먼 일로 느껴진다. 기자가 이태준의 단편소설 『달밤』(1933)에 눈길이 간 이유는 달밤의 서정을 느낀 지 꽤 오래됐기 때문이다. 밤의 분위기가 그리워서였을까. 기자는 달밤을 소재로 한 이 짧은 소설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태준은 순박하면서도 어수룩한 ‘황수건’을 소설 전면에 내세워 사라져가는 순수함을 다룬다.『달밤』은 성북동으로 이사 온 지 대엿새 된 ‘나’의 집에 늦은 밤 황수건이 신문 배달을 오며 시작된다. 황수건은 순박하고 붙임성 좋은 인물
누구나 한 번쯤 지금 이 순간을 봄이라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연인이 생겼을 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봄이 오기까지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조근현 감독의 (2014)은 베트남 파병으로 남편을 잃은 ‘민경’과 병으로 인해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준구’, 그리고 그런 준구를 바라보는 ‘정숙’ 등 시련과 고난을 겪는 인물들을 내세운다. 그리고 이들이 ‘조각’이라는 예술 활동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는 과
홍대신문 기자들은 방학 중에 고정란 기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 문외한인 기자에게 ‘보따리’ 기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기자가 지난 방학에 선택한 『영란』은 선배 기자가 남겨놓은 보따리 기획서의 작품이었다. 기자가 다루고 싶은 작품이라기보다는 빨리 기획서를 통과시키기 위해 선택한 작품이라는 뜻이다. 별 감정 없이 기사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던 중, 연인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는다. 공선옥(1963~) 작가의 『영란』(2010)은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여읜 엄마이자 아내인 ‘나’가 목포에서 삶의 의미를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