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늦은 신문 마감을 끝내고 귀가한 기자는 불편한 존재와 마주했다. 불을 켜지 않아 깜깜했음에도 그 존재의 실루엣은 단번에 보였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바퀴벌레였다. 바퀴벌레는 작년에도 집 근처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현관 바깥이었다. 내 방 안에 있는 건 아니었으니 소리 한번 지르고 현관문을 쾅 닫아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 영역 안에 있었다. 기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문을 닫고 도망가느냐, 방 안에 들어가 못 본 척 지내느냐, 움직이는 그것을 찾아 죽이느냐.우선 방에 들어가지 않
자극의 사전적 정의란 ‘어떠한 작용을 주어 감각이나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게 함.’이다. 모든 인간은 자극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 독자와 필자가 소통하는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기사의 특정 부분에 반응을 보인다. 어떤 이들은 유연한 글 흐름에 반응을 보이지만, 어떤 이들은 참신한 소재에 이끌리기도 한다. 그러나, 글에 자극받는다고 해서 결과가 항상 긍정적이진 않다. 글의 부정적 측면만을 찾기 위해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는 제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기사의 작성자는 독자에게 만족감을 줄 필요가
기자는 2022년 3월, 22학번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본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처음 입학한 학교는 낯설기만 했다. 당시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전공 수업은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그렇기에 기자는 모니터를 통해서만 동기들을 만날 수 있었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학우들의 코로나 확진 소식에 학교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그러던 5월, 거리 두기 해제로 인해 드디어 동기들을 대면으로 만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자신이 홍대 신문기자라는 한 오빠를 만났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같이 기사를 작성해 보자는 오
기자의 사설 기사를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것이 기자의 두 번째 마지막 기사이다. 기자는 원래 저번 학기에 발간된 1311호를 끝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한 학기 더 기자 타이틀을 달게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신문사 체계가 붕괴될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본지는 약 2년간 암흑기를 겪었다. 새로 들어오는 기자는 적고 나가는 기자는 많았다. 결국 최악의 인력난을 맞이했고,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기자 다섯 명이 12장의 지면을 채워야 했다. 55기 기자 한 명과 56기 기자 네 명이
첫 S동 211호를 작성하기 전, 평소 기자 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고민을 펼쳐봤다. 그중 하나를 골라 미뤄놨던 고민의 답을 내리겠다고 결심했다. 심사숙고 끝에 첫 오피니언에 기자 생활의 마지막을 써보는 건 어떨까 싶어 주제를 골랐다. 단서를 찾기 위해, 현재 모든 열정을 쏟고 있는 기자의 마지막이 어떨지 생각해봤다. 더 이상 즐겁지 않고 힘들기만 한 학보사 일을 쌓아두고 징징대는 모습, 식어버린 열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신문사를 나갈 날만 기다리며 대충 쓰기 시작한 기사… 정말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머리가 아파졌다.
좋은 글은 대개 비슷한 이유로 좋은 글이지만 나쁜 글은 저마다의 이유로 나쁘다. 깨어 있는 사람들이 좋은 글을 읽기 원하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보편적 진리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서, 좋은 기사란 무엇일까. 신문사에 들어오기 전, 기자가 생각하는 좋은 기사란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내용을 잘 전달한 기사였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함을 얻은 후 반년이 지난 지금 좋은 기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다. 원래 독자의 입장에서 기사를 봤다면 지금은 기자 입장에서 기사를 바라보게 됐다. 여기서 도출된 한 가지 생각이 있다. 기자는 본인의 글에 ‘
기자가 된 지 약 반년 차. 아직 이름 뒤에 적히는 ‘기자’라는 칭호는 무겁게만 느껴진다. S동 211호 문을 두드린 것은 순전히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서였다.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기자는 사실 영화도, 독서도, 글 쓰는 것도 모두 꺼리는 ‘가짜 국문과’였다.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는 선배의 말에 말문이 막힌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는 위기감을 느꼈다. 어쩌면 졸업할 때까지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든 것이다. 그러던 와중 신입생 카페에 국문과 선배 기자가 올린 홍대신문 수습기자 모
“기사의 객관성은 어디까지인가?”기자가 지난 3월 홍대신문 면접을 볼 때 받은 질문이다. 질문을 들은 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당시 면접은 홍대신문 기자 세명, 지원자 셋, 3:3으로 진행됐다. 기자가 답을 해야 하는 순서는 두 번째였기에 앞 순서 지원자가 말을 하는 사이 재빨리 답변을 생각해내겠노라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아뿔싸. 앞 순서 지원자가 시간을 더 달라며 답을 미루는 것이 아니겠는가? 곧바로 면접관들의 6개의 눈동자가 기자를 향했다. 기자는 속으로는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떨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신문사 활동을 할 땐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가서,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한낮에 와도 정신 차려보면 달이 빛나고 있는 한밤중이다. 하지만 신문사에서의 3학기는 느리게 지나간다. 3학기라는 시간은 1년하고도 반년이라는 시간이기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신문사에 입사하면 연속 3학기 활동이 필수다. 입사할 당시에는 3학기쯤이야 금방일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힘든 시간이었다. 2021년 3월에 입사한 기자는 이번 학기를 기준으로 3학기를 채우게 된다.1298호부터 이번에 발간하는 131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논술 학원에 등록한 첫날, 당시 강사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좋은 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해?” 대답할 수 없었다. 글에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그 무렵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대답을 회피하고, 우물쭈물하자 다시 한번 질문을 받았다. “그럼 나쁜 글이란 뭐야?” 대답이 명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꽤나 자신 있게 답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글을 쓴 시간 보다 고치던 시간이 더 길었던 이후에는, 나쁜 글은 난도질당한 초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원안 그대로 ‘통과’된 초고는 좋은 글이 되었다.초고
갓 고등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나온 이들에게 대학교는 드넓게 펼쳐진 들판과 같다. 울타리에서 나오자마자 자유를 만끽하며 뛰노는 이도 있을 것이고, 방금 태어난 송아지처럼 위태로운 한 발짝을 내딛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무한한 자유가 펼쳐져 있는 듯해도 경험이 부족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움이 가득하면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다행히 대학 사회는 어리숙한 새내기들에게 도움의 흔쾌히 손길을 뻗친다. 대학 내외에 있는 크고 작은 동아리와 모임들이 그러하다. 중요한 사명을 갖고 비장하게 모였거나, 혹은 단순히 공통된 관심사만으로 모였을지라도
김영민 교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재밌게 읽었던 기자는 어떤 주제에 대해 할 말이 없을 때 00이란 무엇인가 하고 혼자 되뇌이곤 한다. 그래서 이번 코너를 맡고도 생각했다. 기자란 무엇인가 또 기사란 무엇인가?처음 S동 211호에 입성했을 때 그 떨림을 기억한다. 기자는 어쩌면 운이 좋았다. 신문사가 인력난으로 고통받던 시기에 수습기자 지원서를 내밀어 경쟁자도 없이 덜컥 합격했다. 때는 마침 동계훈련 기간이었기에 수습기자 딱지를 바로 뗄 수 있었고 기사를 신문에 바로 실을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기자는 첫
기자라는 직업은 꽤나 중압감 있는 직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통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되고, 기사의 방향성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과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기자의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때로는 목숨까지도 위협하게 된다. 따라서 항상 편중되지 않게 노력해야 하고 어떤 기사를 다루든 공정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기자에게는 또한 많은 열정이 필요하다. 취재거리를 찾기 위해 직접 발로 뛰어다녀야 하고 다양하고 흥미로운 기삿거리를 위해 항상 주변을 잘 살펴야 하며 진실을 파헤
연구자와 기자는 몇 가지 특성을 공유한다. 대중은 그들에게 객관성을 기대한다. 연구자의 논문과 기자의 기사는 그들의 주장에 대한 출처로 활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들은 양심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몇몇은 책무를 잊곤 한다. 과거 미국에서 주목을 끌었던 데이터 조작 사례인 ‘색칠한 쥐 사건’이 이를 잘 보여준다.색칠한 쥐 사건은 1974년 피부암 연구 면역학자인 윌리엄 서머린(William T. Summerlin, 1983~)이 저지른 데이터 조작 사례다. 서머린은 흰 쥐의 피부를 검게 칠해 흰쥐에 이식한 후 배양에 성공한 것처럼 가장
환경과 상황은 사람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너무나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작 당사자는 알아채기 힘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바꿔놓은 우리의 일상도 그러하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점은 물론이고 완전히 뒤바뀐 환경은 조금씩 사람을 다르게 만든다. 하지만 이는 알아채기 힘들고, 그대로 그 사람은 좋지 않은 습관에 조금씩 물들어 가기 쉽다. 그 깊은 간극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그대로 영영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 수 있다.기자 또한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집에서 보내는 시
‘대추(待秋)하다’와 ‘비추(悲秋)하다’에 대해서 아는가? ‘대추하다’는 가을을 기다리다는 뜻이다. 우리가 추석 때 먹는 대추 열매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비추하다’는 가을철을 쓸쓸하게 여겨서 슬퍼하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지루해서 비추한다”에서 ‘비추’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먼 단어이다. 기자는 벚꽃이 활짝 피는 봄에 풋풋한 감정으로 수습기자가 됐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뭇잎이 붉어지는 가을까지 기자로서 활동 중이다. 기자는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에 대해 명확한 호불호가 없다. 마치 선과 악 사이에 있는 신인 아브라삭스(A
기자는 두려움이 많은 편이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생각했던 것과 조금이라도 틀어지는 일이 발생하면 두려움에 휩싸이곤 한다. 신문사에 들어오게 된 것도 어쩌면 두려움 때문이었다. 2학년이 되고 나서 아무 생각 없던 1학년 때와는 달리 진로를 찾아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기자의 전공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것이 언론사였다. 언론사라면 국어국문학과라는 기자의 전공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론사에 들어가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다가 기자의
신문사 일은 예측 불가의 연속이다. 속된 말로 언제 기사가 펑크 날지 모른다. 취재하려 했던 사안의 일정이 변경되어 취재 자체가 불가하거나, 예정된 인터뷰이에게 인터뷰가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을 때도 있다. 그때가 되면 새로운 취잿거리를 찾아, 새로운 인터뷰이를 찾아 부리나케 움직인다. 돌발 상황에 대처하다 보면 세 시간을 투자하면 될 줄 알았던 것이 다섯 시간이 되고, 여섯 시간이 된다. 하루는 24시간으로 정해져 있는데, 기사에 투자해야 할 시간은 계속 늘어만 간다. 야속하게도 교수님은 쉴 틈 없이 과제를 내주신다. 결국은 잠을
기자가 신문사에 들어오게 된 건 순전히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새내기의 첫 학기를 무의미하게 보낸 기자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홍대신문 수습기자 추가 모집 지원 마감 1시간 전부터 급하게 지원서를 써서 수습기자에 지원했다. 사실 충동적이었다고는 하지만 홍대신문의 모집공고를 그때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기자는 대학에 입학한 3월부터 수습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고 홍대신문에 지원할지 잠깐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기자는 중학교 3학년부터 오랜 시간 ‘기자’라는 직업을 꿈꿔왔고 그에 맞춰 고등학생 때부
코로나 19라는 어려운 시국에 기자 생활을 하는 것만큼 월등히 학교 생활에 전념할만한 일은 없을 것이다. 기자는 신문사 생활을 하며 누구보다 대학 생활에 젖어 들었다고 자신한다. 대학에서 경험한 기자 생활은 대학에서 경험한 다른 어떤 일들보다 특별했고, 학교를 졸업해서도 오래 기억할만한 추억이다.기자는 글 쓰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평소 기자 혼자만 보는 블로그에 적은 일기가 수십 건이 될 정도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은 반드시 왜 이것이 생각났는지 설명이 되어야 했고, 이를 기록하고 적는 일은 자연스레 습관이 되었다. 이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