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든 처음에는 조금 진부할지라도 정석을 따를 필요가 있다. 기존 체제를 완벽히 숙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체제로의 혁신을 시도하는 것은 오만이며 방종이다. S동 211호 글을 밤새 고쳐 쓰며 이를 제대로 깨닫게 됐다.기자는 이번에 처음으로 S동 211호를 맡게 됐다. 전에 없던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품고서 기자는 소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감 하루 전, 드디어 근사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에 없던 구성과 소재로 나름의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써놓고 보니 제법 뿌듯해지는 글이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미
새벽 3시 10분. 이제는 그다지 늦었다고 생각되지 않는 시간에 기자의 이름만을 달랑 남겨놓은 빈 페이지를 노려보고 있다.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해서 기사가 써지는 것도 아닌데, 과도하게 섭취한 카페인은 사고를 잠시 멈춘 채 멍하니 빈 화면만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본 칼럼은 기자의 퇴사 전 마지막 기사라는 특수성까지 갖추고 있어 더욱이 한 글자 한 글자 이어 나가기가 버겁다. 자칫하면 ‘힘들었다. 하지만 뿌듯했다. 홍대신문 안녕!’하는 초등학생 그림일기가 될 것 같고, 여차하면 ‘나 힘들었던 것 좀 알아주세요!’하는 진부한 호소문
이번 오피니언에서 기자는 ‘책임감’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책임감의 사전적 정의는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기자는 이전까지 책임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관계 속에서의 책임감이 중요했던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저 개인에게 주어진 것만 완료하면 되는, 가벼운 일들뿐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된 기자는 처음으로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느꼈다. 조별 과제, 대인 관계 그리고 신문사 활동에서는 개인의 책임감이 강조됐다. 기자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혼자서 할 수 있는
누군가 세상일을 딱 두 가지로 분류하라고 한다면, 기자는 ‘내가 바꿀 수 있는 일’과 ‘바꿀 수 없는 일’로 나눌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분류 같지만, 이렇게 나눠 생각하는 게 무기력감을 없애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지면 한 편에 남겨두려 한다.기자는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상대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태도, 거절당하기 싫은 마음, 그리고 상대도 나에게 무리한 부탁을 안 했으면 하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이
오랜만에 펜을 쥐고 종이에 글을 적으면 유난히 손이 아프다.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필기하고 문제를 풀다보니 기자의 중지에 두껍게 자리 잡은 굳은살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펜을 쥐지 않은 건 고작 3달 정도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미 굳은살이 연해진 기자의 손가락은 이전처럼 장시간 펜을 쥐기 어려웠다. 이번에도 그랬다. 거진 3주 만에 글을 쓴다. 더군다나 올해부터 매주 발간으로 바뀐 탓에, 기사를 쓰지 않은 3주가 더 길게 다가왔다. 어떻게 기사를 시작할지, 어떤 단어를 사용할지 조심스럽고, 어려운
지난 4월 1일(토),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덕분에 기자는 경기가 없는 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은 늘 중계방송과 함께하고 있다. 어릴 적 아빠의 어깨너머로 보기 시작해 어느덧 삶의 일부가 된 야구를 보며 느낀 건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야구는 1회 동안 낼 수 있는 점수가 무한하고, 경기 시간에 제한이 없다. 따라서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아무도 결과를 알 수 없고 그들을 막을 수도 없다. 짧게는 3시간 길게는 4시간, 5시간까지도 이어지는 경기에 선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한다. “열심
만약 당신이 세상을 뒤흔들만한 진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밝힐 수 있는가? 단, 진실을 밝힐 시 자신을 포함한 가족, 친척, 친구가 위험에 빠질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1986년 9월 6일 월간 《말》지의 특별호 를 통해 ‘보도지침’이 폭로됐다. 한국일보의 김주언 기자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1985년 10월 19일부터 1986년 8월 8일까지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전달했던 보도지침 584건을 공개한 것이다. 보도지침이란 전두환 정부
먼저, 이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 글은 기자가 꽤 오랜 시간 쌓아뒀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기 위한 반성문이자 사과문이다. 12면을 가득 채운 기사 중 그나마 가벼운 느낌의 칼럼을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읽게 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신문의 한 코너를 개인의 고해성사를 위한 장으로 이용할 기회를 준 동료 기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기자가 처음 신문사에 들어올 때, 면접에서 선배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책임감이 있으시다는 거죠?” 당시 기자는 책임감이 있다고 자신했었
며칠 전, 늦은 신문 마감을 끝내고 귀가한 기자는 불편한 존재와 마주했다. 불을 켜지 않아 깜깜했음에도 그 존재의 실루엣은 단번에 보였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바퀴벌레였다. 바퀴벌레는 작년에도 집 근처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현관 바깥이었다. 내 방 안에 있는 건 아니었으니 소리 한번 지르고 현관문을 쾅 닫아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 영역 안에 있었다. 기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문을 닫고 도망가느냐, 방 안에 들어가 못 본 척 지내느냐, 움직이는 그것을 찾아 죽이느냐.우선 방에 들어가지 않
자극의 사전적 정의란 ‘어떠한 작용을 주어 감각이나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게 함.’이다. 모든 인간은 자극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 독자와 필자가 소통하는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기사의 특정 부분에 반응을 보인다. 어떤 이들은 유연한 글 흐름에 반응을 보이지만, 어떤 이들은 참신한 소재에 이끌리기도 한다. 그러나, 글에 자극받는다고 해서 결과가 항상 긍정적이진 않다. 글의 부정적 측면만을 찾기 위해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는 제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기사의 작성자는 독자에게 만족감을 줄 필요가
기자는 2022년 3월, 22학번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본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처음 입학한 학교는 낯설기만 했다. 당시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해 전공 수업은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그렇기에 기자는 모니터를 통해서만 동기들을 만날 수 있었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학우들의 코로나 확진 소식에 학교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그러던 5월, 거리 두기 해제로 인해 드디어 동기들을 대면으로 만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자신이 홍대 신문기자라는 한 오빠를 만났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같이 기사를 작성해 보자는 오
기자의 사설 기사를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것이 기자의 두 번째 마지막 기사이다. 기자는 원래 저번 학기에 발간된 1311호를 끝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한 학기 더 기자 타이틀을 달게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신문사 체계가 붕괴될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본지는 약 2년간 암흑기를 겪었다. 새로 들어오는 기자는 적고 나가는 기자는 많았다. 결국 최악의 인력난을 맞이했고,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기자 다섯 명이 12장의 지면을 채워야 했다. 55기 기자 한 명과 56기 기자 네 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