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23) 는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 한복판인 로스앨러모스(Los Alamos)에서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 1904~1967)는 이런 과학자들의 리더이자 대표자다. 전쟁을 끝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연구를 진행하던 어느 날, 정기회의에 오펜하이머의 동료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1908~2003)가 자신
새로운 한 학기의 다짐을 생각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조금은 덥게 느껴지는 새벽에 이번 학기 마지막 달콤쌉싸름을 작성하고 있다. 이번 글은 편집국장의 논평이라기보단 수기에 좀 더 가깝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 학기를 끝내는 만큼 이번 한 번쯤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 대신 기자 개인의 생각을 글로 풀어보고 싶었다. 둘 다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닌 건 마찬가지겠지만. 애니메이션 영화(2006)의 주인공 마코토는 친구 치아키가 미래로 돌아감에 따라 이별을 겪어야만 한다. 영화의 절정부, 노을이
어린 시절 다들 한 번쯤 보석 반지 사탕을 손가락에 끼워봤을 것이다. 열기로 녹아버린 사탕이 침과 섞여 손가락에 다 들러붙어도, 모두가 꿈꾸는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닌 흔한 반지 모양 사탕이어도 마냥 즐겁기만 했던 초여름의 어느 날. 기자는 이상하게도 그 순간을 뇌리에서 지울 수 없다. 그날 무엇을 했는지, 누구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느껴졌던 것들은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상한 것은 그 순간의 기자가 ‘난 이거면 충분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대체 어떤 점이 만족스러워서 그런 생각을
SF 소설『메이즈 러너』의 주인공 토마스, 뉴트, 민호를 비롯한 아이들은 기억을 잃은 채 움직이는 거대한 미로 속 ‘글레이드’에 갇힌다. 자신의 이름을 제외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며 살아가 보려 한다. 하지만 글레이드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미로에서 탈출한 그 이후인『스코치 트라이얼』과『데스 큐어』에서도 주인공들은 생존을 위해선, 친구를 구하기 위해선, 자신들의 기억을 지우고 미로에 감금하고 친구들을 죽인 ‘위키드’를
프랑스 작가 생 텍쥐페리(Antoine-Marie-Roger de Saint-Exupéry, 1900~1944)의 『야간비행』은 남아메리카에서 우편 수송을 위해 야간비행이 시작된 초창기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로, 작가 본인이 아르헨티나 항공에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썼다. 각각 칠레, 파라과이, 파타고니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오는 세 대의 우편기 중 파타고니아에서 출발한 조종사 파비앙은 거대한 태풍에 말려든다. 그는 무전 교신도 끊긴 채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고 추락할 위기에 처한다. 파비앙은 태풍 위로 솟아올라 간신히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 the Mean)’란 극단적인 변수는 결국 평균에 가까워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뜻의 통계학 용어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모든 것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되어있다는 의미다. 영국의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1822~1911)은 서로 다른 무게의 콩 종자들을 모아 동일한 환경에서 길렀고, 자식 세대 콩들의 무게를 비교해보니 *분산은 모두 거의 비슷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또한 골턴은 아버지와 아들의 키를 조사해보기도 했는데, 이 조사 결과 또한 앞의 콩 실험과 마찬가지로
벚꽃이 평소보다 일찍 만개했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말처럼 4월 중순 중간고사 시기에서야 피던 꽃이, 기자의 생일인 3월 말에 목련과 함께 피었다. 이는 1924년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빠른 개화다. 벚꽃 축제로 유명한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부는 이미 꽃이 피었다 지고 있다고 한다. 만개한 꽃은 때와 상관없이 아름답지만, 기자는 마냥 그 모습을 즐길 수가 없었다. 꽃이 피고짐을 거듭하는 동안, 지구라는 터전은 점점 망가져간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0일(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세상은 단순히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그 사이 무수히 많은 회색이 있다는 것쯤은 다들 알 것이다. 둘 중 어느 색이 더 많이 섞였냐에 따라 짙은 회색이 되기도 하고, 흰색과 다를 바 없는 회색이 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명도’ 개념에서는 흰색이 많이 들어갈수록 고명도, 검정이 많이 들어갈수록 저명도라고 칭한다. 본지 지면 종이 색은 검정색과 흰색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회색이다. 기자들의 명함도 종이색과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홈페이지 메인으로 사용되는 색은 ‘Pantone Cool Gray 10 C’라고 이름 붙여
소설 『해리포터』시리즈에서는 다양한 마법 도구들이 등장한다. 그중 ‘호그와트 비밀 지도’는 주인공 ‘해리’가 마법 학교인 호그와트 3학년 시절 ‘위즐리 쌍둥이’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다. 작중 쌍둥이는 투명망토를 쓴 채 몰래 외출을 시도하는 해리를 보고, 그를 붙잡아 비밀 지도의 사용법을 알려준다. 처음 비밀 지도를 본 해리는 “이 쓰레기는 뭐야”라고 말한다. 쌍둥이는 그 말에 “이건 우리 보물이야”라고 반박하며 비밀 지도를 여는 주문을 가르쳐준다. 해리 말대로 쓰레기에 가까운 지도에 마법지팡이를 대고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엄숙
체스에서 ‘폰’(Pawn)은 가장 하위의 기물로, 첫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오직 앞으로 한 칸 전진만 가능하다. 반대로 ‘퀸’(Queen)은 가장 강력한 기물로, 가로세로 대각선 8방향을 칸수 제한 없이 움직일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폰은 별 가치가 없는, 다른 상위 기물을 보호할 뿐인 기물이고 퀸은 가장 중요한 기물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체스에는 ‘퀴닝(Queening)’이라는 흥미로운 규칙이 있다. 폰이 체스판의 반대편 끝 칸에 도달하는 순간, 폰은 그 즉시 퀸으로 승격한다는 규칙이다. 이 규칙으로 인해 폰은 게임의 후반부에
결국 ‘달콤쌉싸름’ 코너 필자에 기자의 이름이 적히는 날이 와버렸다. 본지가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편집국장’이라는 직책을 이름 석 자 앞에 달고 쓰는 이 칼럼은 그동안 기자가 작성했던 다른 어느 기사보다 어렵고 부담스럽다. 이건 아마 ‘홍대신문 편집국장’과 ‘달콤쌉싸름’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을 지금 온전히 감당해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모든 존재에겐 ‘이름’이 있다. 그것이 다른 존재가 붙여준 것이든, 스스로 부여한 것이든지 말이다. 그 이름은 저마다 의미가 있다. 이름마다 의미가 다르듯이 똑같은 이름에 대
건축물 쿤스트할(Kunsthal)은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 1944~)의 의해 설계됐다. 쿤스트할의 특징에는 렘 콜하스가 건물 전체적으로 구성과 외관에 있어 비대칭에 집착했다는 것과 그가 계산한 시나리오대로 관객이 전시관 내부를 둘러보게 했다는 점이 있다. 그는 제1전시관에서 제2전시관을 지나 제3전시관을 가는 동선을 철저히 계산했다. 그리고 기둥과 바닥의 타일, 위 천장 등을 이용해 관객의 동선을 유도했다. 여기서 또 재밌는 점은 건축물의 다양한 레이어(layer)다. 쿤스트할은 여러 방면에서 자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