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줄곧 선택의 상황에 있어 타인의 말을 따랐다. 본인의 의견에 확신이 없던 기자에게 타인의 한마디는 마치 정답지 같았다. 사실 줏대가 없기도 했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이 무서운 탓도 있었다. 타인의 의견대로 선택하면 결과에 대한 나름의 핑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내 생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을 따랐기 때문이야’라는 식으로. 어떻게 보면 무척 비겁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것이 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핸드폰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통통 튀는 음과 보컬
지난 3월 14일은 미국의 뉴스전문 케이블 TV 방송사인 CNN이 지정한 “해시태그 나의 자유의 날”(#MyFreedomDay)이었다. CNN은 특히 13세 이상의 전 세계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언제 자유를 느끼십니까?”(What makes you feel free?)라는 질문을 던지고, 자유의 가치를 훼손하는 현대판 노예제를 근절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자사의 캠페인에 한 줄 대답으로 참여해 줄 것을 촉구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한 네티즌들의 답변은 이날 CNN 채널의 화면 하단을 지나가며 실시간으로 소개되었다.
무대를 가리고 있던 천막이 올라가고 드럼 스틱으로 카운트를 세고 나면, 어둡던 조명이 밝게 빛나며 공연이 시작된다. 사람들의 환호가 들려오다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하며 기타의 선율에 보컬의 목소리가 얹어지고 베이스, 키보드가 그 뒤를 잇는다. 한 곡이 끝나면 무대 위 사람들은 다음 곡을 연주하기 위해 멤버를 교체하고, 기타를 조율하고, 마이크 선을 정리하고, 두세 명이 키보드를 들어 위치를 옮기기도 한다. 공연 시간 조정에서 가장 쓸모없는 자투리 시간으로 여겨질 법한 이 순간을 기자는 가장 사랑한다. 기자는 지난 겨울방학 동안 동아리
매년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에서 경제자유지수(Economic Freedom Index)를 발표한다. 여기에서 경제자유란 인간이 자기 자신의 노동과 자산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 지수는 경제와 관련된 12개의 지수로 구성되어 있고 경제자유도가 높을수록 점수가 높고 100점이 만점이다. 실증분석에 의하면 경제자유도가 높을수록 생산성과 경제성장률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자료에 의하면 186개국들 중 홍콩(90.2점)과 싱가포르(89.4점)의 경제자유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72.3점)은 29위이고
사실 기자는 신문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겨울을 떠올려보면 기자의 새내기 1년은 흐지부지 지나가고 있었다. 도무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기자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학창 시절 장래희망을 적는 칸 속에 ‘기자’라는 단어는 한 번도 쓰인 적 없었기 때문에 근 반년이 넘도록 고민했다. 어쩌면 결정을 피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문사 입사는 여태껏 다들 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고 흐르는 대로 살아왔던 기자에게 처음으
그야말로 회색이었다. 영원히 가라앉지 않을 것만 같던 미세먼지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서서히 가라앉으며 하늘의 구름을 내보였고, 그와 동시에 캠퍼스는 새 학기의 한주를 넘겼다. 지난 6일(수), 전국 15개 시·도에는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졌다. 비상저감조치 발령 기간 동안 서울에서는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을 제한했고 서울시청과 구청 및 공공기관의 주차장 441곳을 전면 폐쇄하기도 했다. 조치 발령은 수도권과 충청 일부 지역에 일주일 연속으로 이어졌고, 결국 국회는 3월 미세먼지를 국가재난에 포함시키는 법안을 본 회의
신문사 생활은 기자가 아닌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 쉼 없이 이어지는 생활에서 듣는 말이 동기들끼리 나누는 훈훈한 덕담이거나 신문을 잘 봤다는 칭찬이라면 기사를 쓸 맛이 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듣는 말은 이번 기사도 아쉬웠다는 평가다. 내 마음처럼 잘 쓰이지 않는 기사를 향한 속상한 마음도 무시할 수 없다. 그 마음을 아는 학보사 기자이기에 홍대신문 1269호를 보며 홍대신문의 부족한 점뿐만 아니라 좋은 점, 개인적으로 성대신문이 벤치마킹하고 싶은 점들이 보였다.전체적으로 홍대신문의 기사는 트렌드에 맞춰나간다는 점이
역사가인 카(E. 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다. 그는 ‘우리의 미래는 과거에 대한 인식에서 만들어진다’는 견해에 근거하여 회의와 절망의 시대일수록 현재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검토하여 제시하는 것이 역사가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하였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우리 민족이 암흑 같은 식민통치에 절망하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외침을 한 지가 100년이 되었다. 그 당시 1700만 명에 대한 인구비율에 비추어 볼 때 3・1운
20대의 보수화와 내부 갈등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겨레사회경제연구원과 글로벌리서치의 2018년 1월 조사’에 따르면, 청년세대는 성 소수자와 개인의 인권에 대해 기성세대보다 진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 대북인식,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여성친화적 정책 도입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더욱이 청년세대 내부의 갈등도 빈부격차에 따라 심해졌다. 한겨레사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패자 부활 가능성이 있는 사회냐’는 물음에 20대 중상층 이상은 50%가, 하층은 19.6%가 ‘있다’고 답했다. 사회경제적 격차
드디어 3월이 시작된다. 지난주 학교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으로 꽤나 분주했고 기자들 역시 취재로 분주했다.‘새 학기, 새 학년’. 본지의 기사들은 1학기의 개강을 알리며 2019년의 시작과 그 신선함을 담으려 하지만, 사실 이를 작성하던 기자들에게 설레고 수줍어할 여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매년 3월, 편집국은 여느 때보다 능숙하고도 처절하다. 수습기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기자실에 새로운 구성원이 없다는 뜻이며 그만큼 모든 기자들이 숙련된 상태라는 것. 동시에, 인원이 가장 박한 시기인 것이다. 처절하지만 그 나름대로 자
"이번 주 S동 쓸 사람?" 회의 때 이 목소리가 들려오면 기자는 항상 숨죽이며 '나만 아니길'이라고 속삭였다. 신문사 생활이 많지 않은 1학년 때 'S동 211호'를 쓰면 기자의 내면을 보여줄 소중한 기회를 버리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우습게도 신문사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 이 순간을 벼르고 있었다. 어떤 거대한 담론을 펼쳐내기 위해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기자의 적은 경험으로 작성한 S동 211호는 너무 볼품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일 년, 이 S동 211호에서 지금
얼마 전 방영된 (2019)이란 한 드라마의 대사는 평소 시를 좋아하던 기자의 심금을 울렸다.“우리 출판사 시집 정말 안 낼 거냐? 다 죽는다. 어려워서 안되고 안 팔려서 안되고 안 팔릴 것 같으니까 안되고, 그러다가 시가 죽어. 시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출판 업계를 다룬 이 드라마에선 문학전문 출판사가 아닌 이상, 적자가 나는 시집은 간행할 수 없는 상황을 비춘다. 한편, 기자의 마음을 또 한 번 세게 두드린 드라마 속 장면은 한 젊은 무명 시인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의 시가 사람들에게 각광받지 못하고, 잊
마무리를 잘 짓는다는 건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는 한 주였다. 새삼 처음과 달라진 기자를 마주할 때 드는 그 미묘한 감정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햇수로 2년 7개월을 홍대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신문사 활동을 하며 배운 사실 하나가 있다. 2017년 8월 22일(화)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당시 기자는 졸업식 취재차 체육관 정문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체육관 앞에는 청소·경비 노동자분이 대거 모여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신문사로 돌아가려는 길에도 노동자분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제한된 시간. 아니, 사실은 붙들려 버린 시간이다. 기획서 마감을 위해 달리는 하루, 기사 마감을 위해 달리는 일주일, 그리고 이곳 S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는 3년. 우리는 이 한정된 시간을 붙잡기 위해, 아니 벗어나기 위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이곳에서 울고 웃어왔다. 기자가 이곳 기자실에서 근 2년간 한 짓이라고는 지금과도 같이 이 건조한 노트북을 쉴 새 없이 두들겨 팬 것밖에는 없는데, 왜 기자의 뇌리에 떠도는 것은 손가락의 굳은살이 아닌 감정과 추억이란 말인가.대학생활 4년 중 3년. 이 길고도 짧은 기간을 맞이하고자
‘나만 이런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바라보기만 하다 포기할 수는 없겠죠. 근데도 이렇게 아픈 마음만 가지고 사는 건 도무지 불공평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최근 기자는 미쳐버릴 것만 같은 분노, 슬픔, 외로움 등이 뒤섞인,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종종 느끼곤 했다. 당연히 이러한 감정을 아무에게나 표출할 수 없는 일인데다 가까운 사람에게 사춘기 소녀처럼 칭얼거리며 기대고 싶지 않았다. 결국 아무에게도 기자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히고 있을 때쯤, 우연히 들은 대중가요 가사가 기자의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김승혁 기자가 쓴 “세종캠퍼스 통학버스 운영 실태 논란” 기사는 통학버스 운영 실태와 학우들의 불만을 보도했다. 학보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다른 대학들과 비교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산희, 김주영, 우시윤 기자 명의의 “선본, 대동제 강조·소통부문은 연속성 가져” 기사는 후보들의 공약과 세종캠퍼스 선거법 관련 부분을 연계 분석하고 캠퍼스 간 소통과 연대에 대한 부분을 강조해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기사작성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하였다”는 “했다”로 써야 했다. 기사
한 학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교정에서 만나는 만추의 정취가 그윽하다. 올 한 해 맺은 열매를 뒤로 하고 또 다른 새로운 한 해의 열매를 맺기 위해 수목들은 자기를 비우는 지난한 과정이 한창이다. 교정의 낙엽은 그렇게 우리에게 깊고 아름답게, 그러나 신산하게 다가온다. 문득 영국의 시인 예이츠가 읊은 “우리가 어떻게 춤추는 사람과 춤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라는 성찰적 시구를 떠올리게 된다. 깊어가는 가을 교정에 고고하게 서있는 나무들은 잎인가, 줄기인가, 꽃인가, 아니면 나무 자체인가? 수목의 존재를 존재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