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홍익대학교에 다니는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대학 신문 기자로 들어와서 강연 인터뷰를 하러 간다고 한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었다. 사실 대학 신문을 학생들이 쓰는 거라고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놀라움이 가시기 전 나중에 신문이 발간되면 읽고 서평을 써 달라고 하는 과제를 내줬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받아본 신문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다른 대학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는 기회가 된 것 같다.대학도 역시 많은 사람이 같이 사는 공간이다 보니 비슷한 논란들이 생기는 것 같다. 담배 냄새에 관한 논란에서 많은 공감
바야흐로 정보의 범람 시대다.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뉴스의 양은 신문 한 부의 분량을 아득히 뛰어넘은 지 오래다. 거추장스럽게 크고 팔랑거리는 종이신문보다는 작고 편리한 휴대폰이 우리의 손에 들어왔다. 그런 이유로 종이신문을 보는 것은 퍽 생소하고 낯선 일이 됐다. 처음 홍대신문을 받았을 때의 감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 이거 오랜만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신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신문의 마지막 면까지 읽고 난 후의 감상은 “아, 이거 생각보다 괜찮네”였다.홍대신문 한 부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학교
며칠 전부터 지하철을 이용해 통학하는 그 지루하고 긴 시간에 새 친구가 생겼다. 바로 홍대신문이다. 마냥 버려지는 시간이 홍대신문을 통해 알차고 흥미 있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자투리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처음 신문을 보았을 때 자그마치 1313번째로 발간하는 신문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홍대신문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에 대해 신문사 사람들이 굳건한 책임감으로 신문을 제작함을 느낄 수 있었다.본교에서 현재 가장 큰 화두는 바로 공사 중인 건물들일 것이다. 캠퍼스 내를 둘러보면 눈에 보이는 곳마다 공
여러 이유로 종이신문을 읽지 않은 지 오래였다. 친구의 부탁으로 펼치게 된 신문지는 어색함과 함께 새로운 기분을 단번에 느낄 수 있게 했다.종이로 된 신문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첫 지면의 헤드라인이 아닐까 싶다. 『홍대신문』 1311호의 그것은 세종캠퍼스 총동아리연합회 회장단의 선출을 알리는 기사였다. 교내 동아리 활동에 전반적으로 관여하는 조직인 만큼 비중을 두고 다룬 듯했다. 당선인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선거 정황이나 당선인들을 미리 철저히 조사하고 질문을 준비한 모습이 엿보였다. 실상 2020년 이후로
‘22학번 새내기’라는 이름을 달고 대학에 입학한 필자는 빠르게 대학 생활에 적응해야만 했다. 같은 학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고등학교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였다. 나는 그 점을 간과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발등에 떨어진 불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친구가 건네준 신문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학 신문에는 대학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학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이 소개되어 있어 내가 주도해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려줬다. 또한, 취업에 관한 기사와 자료들은 대학 이후 진로에 대한 고민을 상기시켜 주었고 미래에 대한 안목을 넓힐
정확히 10년 전,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던 캠퍼스에서 학내 신문사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대학 생활의 반 이상을 학내 신문사 기자로 생활한 후, 대학교 직원으로서 『홍대신문』을 읽어보니 그때 가졌던 뜨거운 열정을 다시금 떠올린다. 편집 회의로 늦은 밤까지 동료 기자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 인터뷰를 위해 뛰어다녔던 기억들은 신문을 읽으면서 독자들의 입장은 물론, 학생기자들이 가진 열정까지도 느끼게 해주었다. 『홍대신문』의 콘텐츠는 매우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그중 지난 호 1페이지 메인에 실린 신
솔직히 말해서, 신문 한 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단 한 번도. 부끄럽지만 읽지 않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시사 상식을 얻는 것 말고는 딱히 장점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나 혼자만의 공상에 빠져 시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했고, 굳이 내가 눈길 주지 않더라도 여러 사건 사고들은 흘러가고 또 발생하니 그저 물길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대로 두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방학을 즐기던 중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동기에게 ‘홍대 신문을 읽고’ 코너에 실릴 글을 부탁받았고, 신문 한 호를
고등학교에서 언론인의 꿈을 품고 교지부 부장으로 활동했던 필자에게 『홍대신문』의 감상문을 쓸 수 있는 기회는 설렘과 기대로 다가왔다. 우수한 기사들을 꼼꼼하게 읽어보면서, 교내 학생들은 물론이며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도 귀감이 될 『홍대신문』 기사의 내용과 특징을 모색해 보았다.1면의 헤드 기사는 ‘총학생회 미구성’이라는 하나의 점, 즉 단편적 사실의 기술에서 그치지 않고 넓은 맥락으로 나아가 추천인 제도 시스템과 여론이라는 두 가지 구조적인 측면에서 문제의 원인을 분석했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다. 미시적 접근에서 거시적 접근으로 내용을
홍대신문을 읽으면서 대학생 시절 학보사의 기사를 읽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현재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읽게 된 홍대신문에서 직장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대학생들의 열정과 패기, 대학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도 느낄 수 있었다. 1면에 실린 김성현·안동권 기자의 ‘본교 세종캠퍼스 용역 노동자 쟁의행위 돌입’은 흔히 ‘을’이라 불리는 이들이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월 발생한 서울대학교 청소 용역자 사망 사건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만, 민노총의 입장만 담았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노동자 측의 요구 사항
평소 종이신문은커녕 인터넷 신문도 잘 보지 않았던 나에게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홍대신문은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홍익대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더불어 기성 신문처럼 다른 학교 학생들이 읽어도 재미있고 공감하면서 읽을 만한 기사들을 많이 실어놓았다. 홍대신문의 첫 페이지에서는 홍익대학교 내의 소식이 나오면서 ‘학교 신문인만큼 학교 내의 일을 많이 써놨구나’ 했는데 뒤로 갈수록 다른 대학생이 읽어도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기사들이 많이 있었다. 1면의 첫 번째 기사를 통해 총동아리연합회에서 일반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참여를 늘리
수많은 관중들 사이에 팔짱을 끼고 최근의 사회를 무심히 관전하는 사람들은 현재 우리나라를 혐오가 만연한 사회라고 평가한다. 권력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범죄에 온갖 핑계와 옹호를 덧붙여 논점을 흐리다가 결국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혐오의 사회’라는 단어로 뭉뚱그림으로써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사회를 망치는 난봉꾼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폭력과 부당함이 반복되면서 운명처럼 불거진 혁명과 변화의 사이에서 누군가는 피곤함을 느끼기도 하고, 틈새를 노려 그럴듯한 비논리로 제 주머니만 챙기는 얌체가 판을 치는 와중에도 세상은 어찌어
개인적으로 홍대의 미술 특성을 담은 기사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이채린 기자의 홍대 거리미술전 기사에서 ‘홍대거리는 ‘우체통’이 되고 그 안은 누군가가 보낸 작품인 ‘우편’으로 채워지게 된다’는 기사 초반내용이 인상 깊었다. 미술적 감성을 이끌어내어 거리미술전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점이 좋았다. 박찬혁 기자가 쓴 디자인 어워즈 수상 기사는 개념적인 내용을 나열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수상관련 기사인 만큼 그 수상에 들어간 노력이나 수상의 의의를 더 강조했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주제기획 면에서 메타버스에 대해 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