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무또프, 다른 개성에 대한 한 개성의 교류가 교류를 받은 자의 운명에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 알겠는가? 거기에는 완전한 삶이 있고, 우리에게 숨겨진 무수한 가지들이 싹트고 있는 걸세.”“나는 나무 옆에 지나가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뭘 보고 다니는 거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어린 아이를 바라보세요. 신이 선물한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세요. 풀잎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바라보세요. 당신을 쳐다보며 사랑하고 있는
『선사시대 고인돌의 성좌에 새겨진 한국의 고대철학』이란 제목은 다소 낯설게 들릴 것이다. 선사시대에 무슨 철학이냐고? 그러나 이런 제목이 붙기까지는 고뇌에 찬 배경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한국의 고대철학이라고 하면 고작 중국에서 들어온 유교와 불교 및 도교를 중점에 세우고, 그 주변은 토착신앙과 같은 것으로 치부한다. 과연 우리에게 중국에서 유입된 것 말고는 말할 수 있는 게 없는가?고구려의 고분벽화와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그리고 거기서 큰 문화적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오늘날 고도의 과학성이 전제되
자신이 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이유는 책을 쓰고 나서 생각하면 미진한 구석이 있고 자칫하면 누군가에겐 책 홍보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홍보의 여지를 줄이면서 객관적인 눈으로 『개념설계의 시대』를 소개한다. 간결하지만 많은, 그리고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 재미나 흥미로 읽기엔 부적합하다. 작정하고 읽지 않으면 아마도 중간에 그만둘 것이다. 이에 중단하지 않고 읽도록 도움을 주는 글을 지금부터 쓰려고 한다.흥미나 재미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책은 저자의 안목인 프레임을 먼저 이해하면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나에게 대학 학보에서 처음 들어온 원고 청탁은 상대성 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그땐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신문 및 잡지 그리고 전문 서적이 인터넷과 함께 지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과학에 관한 지식이 이해하기 쉽게 쓰인 기사는 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활자로 된 서적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의 앱(app)과 유튜브(YouTube)를 통해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교육공학 기술과 시각 효과 및 음향 효과까지 추가되며 과학에 관한 정보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희망’에 대해 낮게 소리 내어 말하는 일 중국을 대표하는 근대문학자 루쉰(魯迅, 1881~1936)은 자신의 첫 번째 소설집에 ‘함성’이라는 의미의 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동시대 중국의 ‘희망 없음’에 대해서 말하였다.“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오래지 않아서 모두 숨이 막혀 죽을 거야.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사멸되어 가고 있는 거니까 죽음의 비애 따위는 느끼지 못할 걸세. 지금 자네가 큰
‘현대인의 삶은 과연 무엇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욕망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성과 합리성을 그 기치로 내세운 계몽주의 이래 인간의 친밀성 대신 사회 체계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인권, 윤리, 초월성 대신 물질주의, 이윤추구, 세속화가 팽배해진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유혹은 ‘돈’, ‘성’, ‘권력’, 이 세 가지로 축약될 수 있다. 사실상 이들 세 가지는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보단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최근 뉴스를 접하면 누구라도 바로 알
헝가리 출신의 유명한 문예이론가 G. 루카치는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한 사람을 꼽는 질문에 즉답으로 토마스 만을 꼽았다. 한마디로 토마스 만이 20세기 전반의 가장 위대한 독일 작가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192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만의 마지막 장편소설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몇 가지 특이한 점을 지닌다. 집필 기간이 거의 50년에 가깝다는 점과 자전적인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특히 중요한 점은, 토마스 만의 다
역사학자들끼리 하는 재미없는 농담이 있다. “자신이 전공하는 시기와 자신이 사는 시기는 언제나 대전환기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시기나 격변의 시기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도 최근 ‘4차 산업혁명’이나 ‘AI’와 같은 용어를 ‘딸기’나 ‘시계’ 같은 단어보다 더 자주 듣게 되니, 지금이 바로 인류사의 대전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객관적 근거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필자 일생 안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다는 특이점에 도달하여 신세계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인간의 노동력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체해 할 일을 잃은 사람들이 극단적으
이 책은 한마디로 문학이 인간의 삶에 제공해줄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의 화두를 붙잡고 쓴 것이다. 서양문학 전공자인 필자는 30여 년간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서양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깨우침 혹은 혜택이 있다면, 그것이 지닌 ‘비극문학전통’에서 가장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서양문학은 그의 시작인 고대 희랍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부터 인간의 고통과 수난을 작품의 주요한 대상과 모티프로 삼았으며, 이는 후대 문학의 가장 중심적인 색조와 성격의 한 면을 규정하게 된다.
광장에서 거리 예술가가 공연을 시작하면, 구경꾼들은 원을 그리고 서서 거리 예술가의 공연을 구경한다. 사실 꼭 원 모양으로 서서 구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강의실에서처럼 거리 예술가를 정면에 둔 채 여러 줄을 만들어 구경하는 일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개는 자연스럽게 원 구조가 생겨나는데, 이때 주목할 만한 것은 구경꾼들 중 어느 누구도 원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워 행동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경꾼 개개인은 ‘가능한 한 공연이 잘 보이도록 서있으면서도 자신을 특별히 노출시키지 않도록 선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의
우리의 일상에서 읽고 쓰는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토록 큰 적이 있었을까? 잠에서 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밥을 먹으면서, 화장실에 머물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읽고 쓴다. 심지어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도 문자를 주고받으며 소통한다. 읽고 쓰는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우리는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읽고 쓰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하면 빨리 읽고, 어떻게 쓰면 ‘좋아요’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지만이 우리의 관심사이다. 이러한 맹목적인 읽기와 쓰기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그저 문자를 실어 나르는 기계가 되어 가고 있
우리 소설 한 권을 추천하라면 나는 박경리의 대하 장편 『토지』를 들겠다. 무엇보다도 국어 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지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국어 능력이 비약하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600명 가까운 인물이 등장하는 이 대작은 인간 공부의 뛰어난 교과서이다. 『토지』를 통해 인간을 깊고 넓고 섬세하게 이해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 나아가, 우리가 잘 모르는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으니 이 땅의 젊은이라면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큰 작품이니만큼 전체를 다룰 수는 없는 것, 여기서는 그
‘인싸가 선택한 00’, ‘인싸 되는 00’…. 최근 대중매체에서 많이 보이는 표현이다. 사방에서 ‘인싸’가 되라고 압박하는 것 같다. 인싸는 인사이더(insider)의 줄임말로 집단에 잘 어울리는 사람을 이른다. 이들은 각종 모임과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주목의 대상이 된다. 한편 이들의 반대 축에는 아웃사이더(outsider)의 줄임말인 ‘아싸’가 있다. 집단과 어울리지 않는, 혹은 어울리지 못하는 아싸는 대개 놀림의 대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싸가 되는 것까지는 포기하더라도 아싸는 피하고 싶어 한다. 단체 활
『열두 발자국』은 KAIST 바이오 및 뇌 공학과 정재승 교수가 지난 10년 동안 해온 강연 중 가장 흥미로운 12편을 묶어 만든 책이다. 이 책은 다양한 과학적 연구 데이터와 실험 결과를 인용하면서 1부는 인간을 이해하고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내용, 2부는 급변하는 미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정재승 교수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뇌 과학 지식을 인간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누구나 궁금해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제안하고 있어, 과학자가 쓴 책이지만 편안하게 읽을 수 있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평론가를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 없이 앙드레 바쟁(Andre Bazin, 1918~1958)을 꼽을 것이다. “현재 가장 위대한 평론가...”. 바쟁의 사후 작성된 에릭 로메르(Eric Rohmer)의 추도문( 1959년 1월호)에 적힌 이 구절의 타당성을 의심하는 이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의 창립자들 중 한 명이자 이 영화 잡지의 정신적 지주로서 누벨 바그(Nouvelle Vague) 세대의 아버지 노릇을 했던 바쟁만큼 거대한 족적을
20세기에 이르러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기술과 인간 폭력성의 결합은, 대포와 기관총 및 독가스 등 효율적인 대량 살상 무기의 본격적인 사용을 초래하였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900만 명 이상의 군인 전사자와 2200만 명에 달하는 군인 부상자, 1900만 명을 넘는 민간인 사망자가 나오게 되었는데, 이는 한국전쟁 당시 군인 사상자가 217만 명, 민간인 사상자가 99만 명이라는 사실과 비교해보았을 때 엄청난 수치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유명 그래픽 노블 작가인 자크 타르디(Jacques Tardi, 194
시각예술 비평가이자 소설가, 문화사회학자로 알려진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는 예술과 인문, 사회에 대한 고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의 의미에 관련한 물음을 던져왔다.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언인지 안다.” 『본다는 것의 의미』의 위와 같은 첫 문장을 통해 버거는 시각의 언어에 대한 우위가 아니라, 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밝힌다. 현실을 인지하기 위한 기초 데이터를 제공하는 시각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게 해주
10대 후반에서 20대에 걸쳐있는 나이를 우리 사회는 청춘이라고 한다.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봄날을 보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뒤돌아 본 자들은 청춘의 시기를 아름답다고 추억하지만 정작 그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자들에게 청춘은 아름답기만 한가? 봄철이라는 계절은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 많은 단계의 변성과 변태를 감당해 내어야 하는 치열한 계절이다. 그래서 스콧 핏츠 제럴드는 ‘The Great Gatsby’에서 이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Vulnerable(상처받기 쉬운)한 시기라고 칭하기도 한다. 어른의 몸이 되어
프랑스 ‘파리’하면 어떤 풍경을 떠올리는지? 고대 로마 시대까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 도시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중세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파리는 프랑스 제2제정 시기 파리 개조 사업을 주도한 오스만(Haussman) 남작에 의해 근대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상하수도 정비를 비롯해서 좁은 골목을 따라 만들어진 건물을 허물고 ‘불르바르(boulevard)’와 ‘아브뉴(avenue)’로 불리는 대로를 만들어 도시를 대대적으로 정비한 것이다. 포석으로 잘
『지하생활자의 수기(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 ья)』는 도스토옙스키(Ф. М. Достоевски й, 1821~1881)의 문학 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모순된 이항 대립적 요소와 선과 악, 우월감과 열등감, 그리고 신성과 잔인성 사이의 대립과 투쟁을 묘사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본인의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주는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세계적 수준의 고전(古典) 작가로 만들어준 작품은 1866년에 나온 『죄와 벌(Prestuplenie i n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