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제대로 된 기사를 쓴 적 없는 채로 이제 2년 차 기자가 되어 ‘S동 211호’를 작성하게 됐다. 지난 반년 동안의 기자 생활을 평하자면 기자는 기자가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정기적인 발행일자를 갖춘 홍대신문 특성상 마감 기한 준수는 생명이다. 보도 기사 배분 회의 이후 기사를 쓸 기한은 일주일이다. 기자는 일주일 중 첫째 날부터 취재와 기사 작성을 할 정도로 시작은 빠르지만, 마무리가 미숙하다. 그래서 기자가 쓴 기사는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선배나 동기의 피드백을 받고 난 후에야 겨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났다. 여러 기사를 써냈던 시간 속에서 기자는 오피니언 코너를 맡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틀과 형식을 따르는 것에 익숙한 기자에게 백지와도 같은 이 코너는 피하고 싶은 두려움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에 항상 오피니언 코너를 맡지 않기를 바라며 도망쳐왔다. 운 좋게도 이 도망은 입사한 지 두 달여가 지난 준기자 이후 지금까지도 이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해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솔직한 마음을 적어보려 한다.기자는 한 번뿐인 대학 생활을 단지 바쁘고 알차게 보내고
결국에는 이 순간이 오고 말았다. 노트북 앞에서 숱한 밤을 지새우며 제발 빨리 와달라고 빌었던 순간, 그러면서도 막상 그 순간을 생각하면 괜히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순간, 지금 이렇게 코앞까지 다가와 버린 이 ‘마지막’이라는 순간.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항상 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각별한 마음이 드니 말이다. 그래서 기자는 이렇게 어느덧 훌쩍 다가온 S동 211호에서의 마지막을 아쉽기보다는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해보려 한다.사실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2년 전, 신문사 입사 1년 차 기자로서 첫 S동 211호를 작성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20살의 패기 넘치던 새내기는 어느새 산전수전 다 겪은 3년 차 부장기자가 되어 마지막 S동 211호를 쓰고 있다. 그동안 이 S동 211호를 거쳐간 선배 기자들의 말마따나, 신문사 생활 3년은 참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후배 기자들을 통해 감정의 스펙트럼을 배웠노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신문사를 삼재(三災)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다. 기자 역시 이 표현들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기자는 기자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보단 타인의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고 전하는 일에 익숙해진 터라 ‘S동 211호’와 ‘기자프리즘’과 같이 기자의 생각을 써내야 하는 기사가 어려워졌다. 매해 마지막 ‘S동 211호’는 다음 해 편집국장이 되는 부편집국장이 쓰는 것이 관례가 돼 현재 기자는 그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됐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마지막 ‘S동 211호’를 쓰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신문사 생활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포부를 다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의 2년을 회고해 보
기자는 1998년생 호랑이띠다. 기자가 대학 입시를 준비할 적, 어머니가 속는 셈 치고 다녀오신 점집에서는 2017년부터 기자의 ‘삼재(三災)’가 시작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걱정을 늘어놓으셨지만 정작 기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 삼재는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큰 재난을 의미한다는데, 기자는 모두 미신이겠거니 하며 무시했다. 그러나 그 삼재가 끝났다는 올해의 마지막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정말 그 점괘가 맞지 않았나 싶다. 기자의 재난이 시작된다던 그 해 말인 2017년 11월, 기자는 이 S동
첫 문장을 쓰기가 이토록 어려운 기사가 지금껏 있었던가. “필자를 ‘기자’로 지칭한단 말이야?” 처음 S동 211호를 작성할 때 이 글에서는 스스로를 ‘기자’로 쓴다는 점에 대해 배우며 깜짝 놀라던 기자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마치 자기 이름을 자기가 부르는 것처럼 왠지 민망한 마음이 들어 다소 쑥스러워 했던 기억. 약 2년의 시간이 흘렀을까. 기자는 이제 스스로를 ‘이산희 기자’라고 소개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칼럼의 주어를 ‘기자가’로 하는 것도 참 능숙한 사람이 되었다. 서랍에 빼곡하게 남은 기자의 홍대신문 명함이 무색하다.
어느덧 마지막 S동을 쓰게 되었다. 기사를 쓰는 지금도 곧 퇴임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2년 전 1학년 2학기, 딱 이맘때쯤 신문사에 들어와 수습기자로서 신문사에 적응하고 있었던 기자는 ‘어떤, 바쁜 일을 하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신문사에 지원했다. 그러나 당시의 기자가 생각했던 신문사와 지금의 기자가 느끼는 신문사는 사뭇 다르다. 기자는 단지 신문사에서 만들어내는 ‘신문’, 그리고 이를 위한 업무만을 생각하며 홍대신문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기자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신문사에서의 모든 것은 결국 ‘사람’과 연결된
지금으로부터 약 이 년 전 기자가 홍대신문사에 들어와 처음 맡은 기사는 일명 ‘헤드’ 기사였다. 신문의 얼굴인 1면을 장식하던 그 기사는 당연코 수습기자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어려웠지만, 적어도 ‘기자’라는 직책의 무게를 깨달은 것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취재들과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기사 마감, 언제나 무서운 선배 기자란 존재까지 쉬운 건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어느덧 여유를 되찾을 때쯤 기자는 이미 수습 기간을 거쳐 정기자가 되어있었고, 또 어느새 팀장 기자가 되어있었다.사람
기자가 홍대신문사에 들어와 처음 S동 211호를 쓴 후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인가,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전쟁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전쟁을 일상적으로 맞이하는 것인가. 이들 중 어떤 말이든 어울릴 법한 신문사 생활을 하며 보낸 1년 동안 기자는 마음속에 ‘스며들었던’ 긴장을 단 한시도 놓을 수 없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기사 마감 당시 기사를 잘 못써서 새로 작성해야 하는 상황을 두고 ‘기사가 터졌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래서 기자뿐만 아니라 홍대신문의 모든 기자들
기자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조금 더 걸리기 때문에 항상 처음이 힘들다. 그래서 기자 활동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기자 생활에 언제쯤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취재를 다니고 회의를 하며 하계기초훈련까지 거치고 나니, 어리버리했던 수습기자에서 준기자가 돼 이름 석 자가 새겨진 명함도 생겼다.기자가 신문사에 들어온 계기는 참 단순하다. 예비대학 때 선배 기자님의 홍대신문 홍보를 보고 기자가 너무 멋져 보여 기자가 되고
“제가 떨려서 말을 잘 못했는데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기자가 홍대신문 면접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기자는 입학 전 예비대학 때부터 홍대신문 기자가 되고 싶어 자기소개서를 내고 면접을 거쳐 수습기자가 됐다.기자가 처음 홍대신문에 지원했다고 말하자 많은 동기들과 선배들이 “왜 홍대신문에 지원했냐”며 “바쁜 신문사 생활과 학과 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겠냐”고 걱정했다.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교사를 희망했던 기자는 중학교 3학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언론의 왜곡과 무력함에 맞서는 언론인
동기들이 S동 211호를 쓰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언제쯤 쓰게 될까 생각했었는데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기자는 2019년 발간된 홍대신문을 정독하면서 S동 211호는 선배 기자들과 기들이 신문사에 대한 진솔한 마음을 표현하는 코너라고 느꼈다. 그래서 기자도 홍대신문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쓰고자 한다. 올해 3월 2학년으로 올라가며 대학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의도치 않게 자아성찰을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대학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던 중 홍대신문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홍대신문 기자로 활동
기자는 홍대신문 서울 캠퍼스 기자 중 유일한 이과 수습기자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기자를 한다는 것은 뭔가 낯설다. 사실 기자 역시 글을 쓰는 일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재수를 끝내고 매일 책을 읽으며 글쓰기와 시사에 흥미를 느꼈고, 자연스럽게 뉴스에도 관심이 생겼다. 또한 그 무렵 스키장 패트롤을 하면서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기자란 글을 좋아하고 평소 주변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경험들이 기자를 홍대신문으로 향하게 했다.약 2달간의 수습기자 생활동안 기자는 다양한 경험을 했
올해 3월부터 홍대신문사 기자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왜 신문사에 지원했냐”였다. 그럴 만도 한 게, 남들이 보기에는 신문사 활동은 기자의 전공인 미술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기자 본인도 한 가지 이유가 아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쌓여 지원하게 된 것이라 늘 답하기 모호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기자 본인은 ‘미술’이라는 하나의 분야로 정의되지 않는 다양한 면을 가진 사람이며,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또 기자가 전공하는 디자인에서 ‘언어’는 중요한 소통 매개체 중 하나이며 작품의 일부이기도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기자의 장래희망은 다양했다. 초등학교 때는 타임머신을 만들겠단 포부를 가지고 과학자란 꿈을 가지게 됐고, 중학교에 들어서서는 홍콩 빌딩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건축가라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처음 든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평소에도 시간이 남을 때마다 영화를 보곤 했는데, 당시 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지적 장애인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을 미국의 굵직한 사건들과 엮어 다룬다는 면에서 주인공의 삶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함께 다루는 과 같은 영
“신문이 뭐야?” 복학 후 학교는 잘 다니고 있냐는 삼촌의 걱정에 대학 신문사 기자가 되었다고 대답하니, 옆에 앉아있던 여섯 살 된 사촌동생이 물었다. 사촌동생에게 뉴스는 아냐고 묻자, 뉴스는 안다고 대답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신문은 영어로 'newspaper'이다. 말 그대로 뉴스가 적혀 있는 종이가 신문이다. 당황한 기자에게 사촌동생이 집에서 신문을 보지 않아 모를 수도 있다고 삼촌이 말씀하셨다.기자의 꿈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PD였다. 지금은 그 범위가 넓어져서 언론인이 되고 싶다 생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방송국에
“축하드립니다! 홍대신문 수습기자 추가모집에서 최종합격하셨습니다.” 친구들과 게임을 하던 도중 홍대신문에서 받은 문자의 첫문장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기자는 최근 ‘설렘’이라는 단어에 굉장히 무뎌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기대만 잔뜩 부풀어 있던 신입생 시절도 지나갔고,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군 생활도 마침내 끝이 났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성취감보다는 허탈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쓰디쓴 허탈함을 없애줄 해결책으로 기자는 홍대신문을 선택했다. 동아리에 들어가면 다시 놀기 시작할 게 뻔했
딱 1년이다. 작년 봄, 신문사 입사 후 반년이 좀 넘은 시기에 썼던 S동 211호를 다시 돌아온 올해 봄에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신문사로 인해 마주한 여러 상황들과 그에 대한 고민에 대해 썼다.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2학기 S동 기사에는 신문사 생활을 청산하는 소감이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이번 지면에서는 그 중간 지점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사실 기자는 굉장히 성취감이 높은 사람이다. 남들 눈에 ‘열심히’, 혹은 ‘성실하게’라고 비치는 기자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 ‘사실 다 욕심’이었다. 그래서 몸과 여유를 챙기지도 못한 채
사실 기자에게는 그 어떤 보도기사나 고정란 기사를 쓰는 것보다 이 ‘S동 211호’를 쓰는 것이 훨씬 더 큰 부담이다. 이 글만큼은 기자가 느낀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아야 하기 때문일까. 이번에도 한참을 미루기만 하다가 겨우 쓰게 되었다. 여러 번 망설이고 주저한 만큼 이번 S동 211호에서는 기자로 활동하며 느낀 ‘홍대신문’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을까 한다.‘홍대신문’을 떠올리면, 설레는 감정과 동시에 아쉬운 감정이 든다. 우선 설렘, 앞으로 이어질 기자의 대학 생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이 신문사 생활은 아직 기자에게 설렘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