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일상이라는 현실이 양심(良心)이라는 우리의 매우 특별한 기능에 틈을 주지 않기도 하지만, 막상 그런 호사(豪奢)가 허락돼도 우리의 판단이 의존하는 근거가 너무 허술하다는 것을 발견하며 오히려 당황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선(善)과 악(惡)에 대한 고민을 한 쪽에 제쳐 둘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불편한 시름이 그저 필수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은 삶의 다양한 요소(要素) 중 하나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하라는 대로, 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열심히’ 살다보면 아무것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불과 10년 전과는 다른 커다란 변화이다. 지금 세상은 인공지능 ‘봄’에 접어들고 있다. 인터넷 뉴스, 신문이나 잡지, 텔레비전에서도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면 책을 끝까지 읽어 주었으면 한다. 포인트는 50년 만에 방문한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새 기술 “딥러닝(Deep Learning)”의 의의를 어떻게 포착할지에도 달려 있다. 딥러닝은 향후 우
첨단 과학기술의 성과가 그야말로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다. 인공지능이나 유전자 변형 생명체처럼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문명의 이기들이 일상을 파고든다. 이러한 흐름 속 필자는 한편으로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여러 자료를 부지런히 탐독하기도 한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멈추고 삶을 찬찬히 돌아보며 성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이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 가운데 하나가 『월든』이다. 사실 『월든』을 처음 만난 시기는 오래 전인 20대 후반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개인적으로 삶에 대한 고민이 새롭게 시작되던 때였다.
“바흐무또프, 다른 개성에 대한 한 개성의 교류가 교류를 받은 자의 운명에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 알겠는가? 거기에는 완전한 삶이 있고, 우리에게 숨겨진 무수한 가지들이 싹트고 있는 걸세.”“나는 나무 옆에 지나가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뭘 보고 다니는 거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어린 아이를 바라보세요. 신이 선물한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세요. 풀잎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바라보세요. 당신을 쳐다보며 사랑하고 있는
『선사시대 고인돌의 성좌에 새겨진 한국의 고대철학』이란 제목은 다소 낯설게 들릴 것이다. 선사시대에 무슨 철학이냐고? 그러나 이런 제목이 붙기까지는 고뇌에 찬 배경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한국의 고대철학이라고 하면 고작 중국에서 들어온 유교와 불교 및 도교를 중점에 세우고, 그 주변은 토착신앙과 같은 것으로 치부한다. 과연 우리에게 중국에서 유입된 것 말고는 말할 수 있는 게 없는가?고구려의 고분벽화와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그리고 거기서 큰 문화적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오늘날 고도의 과학성이 전제되
자신이 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이유는 책을 쓰고 나서 생각하면 미진한 구석이 있고 자칫하면 누군가에겐 책 홍보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홍보의 여지를 줄이면서 객관적인 눈으로 『개념설계의 시대』를 소개한다. 간결하지만 많은, 그리고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 재미나 흥미로 읽기엔 부적합하다. 작정하고 읽지 않으면 아마도 중간에 그만둘 것이다. 이에 중단하지 않고 읽도록 도움을 주는 글을 지금부터 쓰려고 한다.흥미나 재미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책은 저자의 안목인 프레임을 먼저 이해하면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나에게 대학 학보에서 처음 들어온 원고 청탁은 상대성 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그땐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신문 및 잡지 그리고 전문 서적이 인터넷과 함께 지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과학에 관한 지식이 이해하기 쉽게 쓰인 기사는 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활자로 된 서적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의 앱(app)과 유튜브(YouTube)를 통해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교육공학 기술과 시각 효과 및 음향 효과까지 추가되며 과학에 관한 정보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희망’에 대해 낮게 소리 내어 말하는 일 중국을 대표하는 근대문학자 루쉰(魯迅, 1881~1936)은 자신의 첫 번째 소설집에 ‘함성’이라는 의미의 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동시대 중국의 ‘희망 없음’에 대해서 말하였다.“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오래지 않아서 모두 숨이 막혀 죽을 거야.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사멸되어 가고 있는 거니까 죽음의 비애 따위는 느끼지 못할 걸세. 지금 자네가 큰
‘현대인의 삶은 과연 무엇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욕망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성과 합리성을 그 기치로 내세운 계몽주의 이래 인간의 친밀성 대신 사회 체계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인권, 윤리, 초월성 대신 물질주의, 이윤추구, 세속화가 팽배해진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유혹은 ‘돈’, ‘성’, ‘권력’, 이 세 가지로 축약될 수 있다. 사실상 이들 세 가지는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보단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최근 뉴스를 접하면 누구라도 바로 알
헝가리 출신의 유명한 문예이론가 G. 루카치는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한 사람을 꼽는 질문에 즉답으로 토마스 만을 꼽았다. 한마디로 토마스 만이 20세기 전반의 가장 위대한 독일 작가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192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만의 마지막 장편소설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몇 가지 특이한 점을 지닌다. 집필 기간이 거의 50년에 가깝다는 점과 자전적인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특히 중요한 점은, 토마스 만의 다
역사학자들끼리 하는 재미없는 농담이 있다. “자신이 전공하는 시기와 자신이 사는 시기는 언제나 대전환기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시기나 격변의 시기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도 최근 ‘4차 산업혁명’이나 ‘AI’와 같은 용어를 ‘딸기’나 ‘시계’ 같은 단어보다 더 자주 듣게 되니, 지금이 바로 인류사의 대전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객관적 근거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필자 일생 안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다는 특이점에 도달하여 신세계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인간의 노동력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체해 할 일을 잃은 사람들이 극단적으
이 책은 한마디로 문학이 인간의 삶에 제공해줄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의 화두를 붙잡고 쓴 것이다. 서양문학 전공자인 필자는 30여 년간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서양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깨우침 혹은 혜택이 있다면, 그것이 지닌 ‘비극문학전통’에서 가장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서양문학은 그의 시작인 고대 희랍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부터 인간의 고통과 수난을 작품의 주요한 대상과 모티프로 삼았으며, 이는 후대 문학의 가장 중심적인 색조와 성격의 한 면을 규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