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년이다. 작년 봄, 신문사 입사 후 반년이 좀 넘은 시기에 썼던 S동 211호를 다시 돌아온 올해 봄에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신문사로 인해 마주한 여러 상황들과 그에 대한 고민에 대해 썼다.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2학기 S동 기사에는 신문사 생활을 청산하는 소감이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이번 지면에서는 그 중간 지점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사실 기자는 굉장히 성취감이 높은 사람이다. 남들 눈에 ‘열심히’, 혹은 ‘성실하게’라고 비치는 기자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 ‘사실 다 욕심’이었다. 그래서 몸과 여유를 챙기지도 못한 채
사실 기자에게는 그 어떤 보도기사나 고정란 기사를 쓰는 것보다 이 ‘S동 211호’를 쓰는 것이 훨씬 더 큰 부담이다. 이 글만큼은 기자가 느낀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아야 하기 때문일까. 이번에도 한참을 미루기만 하다가 겨우 쓰게 되었다. 여러 번 망설이고 주저한 만큼 이번 S동 211호에서는 기자로 활동하며 느낀 ‘홍대신문’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을까 한다.‘홍대신문’을 떠올리면, 설레는 감정과 동시에 아쉬운 감정이 든다. 우선 설렘, 앞으로 이어질 기자의 대학 생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이 신문사 생활은 아직 기자에게 설렘으
기자에게 S동 211호는 부담감 그 자체였다. 동기·선배 기자들이 S동 211호 기사글에 자신들의 감정을 멋진 문장으로 잘 표현해 부담은 커졌다. 또한, 기자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게 꽤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글을 써본다. 기자는 길을 잃어버린 채 있었다. 친구들이 합격한 A 대학에 당연히 기자도 합류할 것이라 확신했지만 끝내 불합격이었다. 잘못된 역에서 내린 것처럼 당황스러웠다. 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전공(경영학)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사학과 사회학 등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기자에게 경영학은 맞지 않는 옷이었다. 한
사실 기자는 신문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겨울을 떠올려보면 기자의 새내기 1년은 흐지부지 지나가고 있었다. 도무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기자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학창 시절 장래희망을 적는 칸 속에 ‘기자’라는 단어는 한 번도 쓰인 적 없었기 때문에 근 반년이 넘도록 고민했다. 어쩌면 결정을 피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문사 입사는 여태껏 다들 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고 흐르는 대로 살아왔던 기자에게 처음으
"이번 주 S동 쓸 사람?" 회의 때 이 목소리가 들려오면 기자는 항상 숨죽이며 '나만 아니길'이라고 속삭였다. 신문사 생활이 많지 않은 1학년 때 'S동 211호'를 쓰면 기자의 내면을 보여줄 소중한 기회를 버리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우습게도 신문사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 이 순간을 벼르고 있었다. 어떤 거대한 담론을 펼쳐내기 위해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기자의 적은 경험으로 작성한 S동 211호는 너무 볼품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일 년, 이 S동 211호에서 지금
제한된 시간. 아니, 사실은 붙들려 버린 시간이다. 기획서 마감을 위해 달리는 하루, 기사 마감을 위해 달리는 일주일, 그리고 이곳 S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는 3년. 우리는 이 한정된 시간을 붙잡기 위해, 아니 벗어나기 위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이곳에서 울고 웃어왔다. 기자가 이곳 기자실에서 근 2년간 한 짓이라고는 지금과도 같이 이 건조한 노트북을 쉴 새 없이 두들겨 팬 것밖에는 없는데, 왜 기자의 뇌리에 떠도는 것은 손가락의 굳은살이 아닌 감정과 추억이란 말인가.대학생활 4년 중 3년. 이 길고도 짧은 기간을 맞이하고자
기자는 항상 마무리가 약했다. 기자가 벌이는 모든 일은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이 미약했다. 12년간의 정규시간과 1년의 추가시간 역시 마무리가 아쉬웠고, 기자는 내키지 않는 곳에서의 새로운 시즌을 시작했다. 무기력한 몸과 정신으론 시작조차 창대할 수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를 이어갈 뿐이었다. 어느 날 밤, 휴대전화의 불빛이 반짝였다. 신문사에 관심이 없냐며, 들어오면 예뻐해주겠다는 학과 선배의 문자에 아무런 생각 없이 노트북 앞으로 가 지원서를 작성했다. 어렸을 적 만화에서 선택받은 아이들이 모니터 화면을 통해 디지털 월드로 들어
드디어, 기자에게도 마지막 S동 211호를 쓰는 날이 오게 되었다. 아주 먼 일처럼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이날을 기자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1학년 말 어느 가을날, 대학에 와서 한 것이라곤 흥청망청 놀러 다닌게 전부였던 철부지는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일을 해보자는 심정으로 S동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만 해도 이 안에서 펼쳐질 힘들고 고난한 날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마냥 설레고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겁 없던 새내기의 패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기자’라는 무게는 생각보다 너
대학생이 된 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신입생의 설렘은 눈 깜빡할 사이에 취업을 앞둔 고학년의 부담으로 바뀌었다. 요즘 주변 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엊그제 신문사에 들어간 것 같은데 너의 신문사 생활도 드디어 끝이 나는구나.”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시간은 정말 폭풍같이 몰아쳐 지나갔지만, 그 와중에도 신문사 생활은 결코 빠르게 지나가지 않았다. 아무리 돌이켜보아도 정말 오랜 시간이었다.기자는 의미 있는 대학 생활을 하고자 S동 211호에 발을 내디뎠다. 어쩌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
단 한 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치열해서, 어려워서, 괴로워서, 고마워서 또 그랬다. 그러나 당시에는 죽을 만큼 아팠고 또 힘들었다. 기억은 반드시 미화되기 마련이어도 기억 속의 상처와 그 응어리는 여전하다. 웃으며 그 일을 기억할 수는 있어도, 마음을 늘 흩트려 놓는 것이 상처다. 기자는 신문사에서 수없이 상처를 얻었다.혹자는 신문사는 말 그대로 ‘글을 쓰는 곳’인데 상처를 받아봤자 그곳에서 얼마나 받았겠냐고 되물을 것이다. 신문사의 재미있는 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분명 글을 쓰러 왔는데 글보다는 인간관계가 기자들을
아마도 그 남자의 마지막 이야기를 전하게 될 것 같다.공교롭게도, 그는 한 때 다섯 여자를 열렬히 사랑했다. 사교성이 많아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그녀, 항상 다른 관점으로 자신을 더 좋은 길로 인도해주려는 그녀, 수줍음이 많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주는 그녀, 조용한 듯 하지만 세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녀, 그리고 묵묵히 길을 걸으며 기댈 수 있는 그늘을 마련해주던 그녀까지. 이러한 그녀들의 마음을 얻고자 그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 서로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밤새 함께
기자가 S동 211호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참 특이하다. 그날은 5월에 있었던 대동제의 마지막 날 밤이었기 때문에 같은 과 동기들끼리 술자리를 가졌다. 기자는 1학기 중간고사를 망치고 난 이후부터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술자리에 항상 참석했고,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때마침 신문사 업무를 마친 같은 과 동기들도 합류해 한껏 시끄러워진 술자리였다. 기자는 한 시간도 채 안되어 술에 취했다. 그러다 신문사 활동을 하고 있던 누나가 한 말에 술이 확 깨고 말았다. “너 계속 그렇게 술 마시면서 놀고만 다닐 거야? 1학년이라고 아무것
기자는 중학교 때부터 언론인을 꿈꾸기 시작했다. 평소에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뉴스를 보면서 저렇게 취재를 나가서 무엇을 하는지 막연하게나마 궁금해하기도 했었다. 때문에 기성 언론들의 기사를 보며 나만의 기사를 써 보기도 했고, 학교에 언론인이 특강을 오면 항상 참석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그랬기 때문에 기자의 눈에 ‘홍대신문 수습기자 모집’이라고 적힌 포스터가 포착된 것은, 지구가 돈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했을지도 모른다.처음으로 신문사에 출근한 날, 당시의 신문사는 어색함 그 자체였다. 선배 기자들은 엄청난 속보가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학기를 맞이하며 쓰는 이 S동 211호는 기자에게 지난 학기를 되돌아보며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나 신문사에 지원해보려고!’라는 기자의 말에 학과 주변 동기들과 선배들은 힘들지 않겠냐, 듣기로는 일이 정말 많다더라며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기자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던 기자라는 꿈이 있었다. 그렇기에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홍대신문에 망설임 없이 지원하였다. 논술 시험과 총 두 번의 면접을 정신없이 치르고 난 후
수습기자 2차 모집에 합격하고 신문사에 들어온 지 약 1달이 되었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의 기자 생활을 회고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이번 ‘S동211’ 호는 신입 기자이기에 쓸 수 있는 앞으로의 다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는 이따금 부정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이를 위해 죽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기자를 비추어 보았을 당시 기자는 대학 입학 후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이 때문에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확고히 무엇인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특정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겪는 고난을 견뎌내야 한다는 뜻이다. 기자는 방송국 기자라는 왕관을 쓰고자 한다. 방송국 기자가 가장 큰 왕관은 아니지만 최후의 왕관을 쓰기 위해 거치는 일종의 작은 왕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은 왕관을 쓰기 위한 과정에 있어 현재 기자가 몸담고 있는 홍대신문은 기자가 필연적으로 겪어내야만 하는 고난 중 하나이다. 선배들이 홍대신문 기자로 생활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거라 했지만 기자의 생각은 달랐다. 기자는 방송국 기자로 가는 길에 있는 고난들은 그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참 우습게도 기자의 인생은 오롯이 ‘주위 사람들’의 입김으로 가득 채워진 삶이었다. 주체가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의 입김에 기자의 줏대는 정처 없이 표류하고 흔들렸다. 어머니가 강요하신 초등학교 2학년 그날의 반장선거, 아버지가 혹 독하게 가르쳐주셨던 축구, 무조건 경영학과로 진학해야 한다던 담임 선생님의 충고 등 그야말로 지난날의 기자는 온전한 자신을 찾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잘 될 것만 같았고, 실제로 운 좋게 보답을 받는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줄에 매달린 꼭두
봇물(洑-), 보(洑)에 괸 물 혹은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의미한다. 흔히 ‘봇물 터지다’라는 관용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보에 모아 두었던 물이 터져버려 주변 농가를 휩쓸어 망가뜨린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어구이다. 같은 맥락에서, 기자는 봇물을 열심히 쌓아두는 경향이 있다. 웬만한 무게는 견뎌내며, 흐르는 물도 어기적어기적 모아 담아 터지지 않도록 수습하고 안간힘을 쓴다. 그랬던 기자에게 신문사는 365일 폭우가 내리치는 강둑이었다. 이 글을 쓰며 지난해 5월 발간된 기자의 첫 기사를 회상해보았다. 여기저기 망한
지난 3월 30일(금) 저녁, 어김없이 S동 211호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기자들이 중간고사 전 기사 마감을 열심히 하고 있을 무렵, 기자는 기사 마감을 빠르게 끝낸 후 설레는 마음으로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두 시간 후에 독도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독도라는 상징적 공간에 간다는 떨림,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신남 등의 감정이 어우러져 기자는 한껏 들떠있었다. 오후 11시 30분, 마감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독도아카데미 집결 장소인 광화문에 도착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독도 아카데미 독도수호 국제 연대 집행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기자가 신문사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간(間)학문적 태도가 필요하다’라는 뻔하고 교과서적인 말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신문사와 기자의 장래희망은 연관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기자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동아리 활동과 같은 학생 활동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저 삶이 흘러가는 방향대로 가만히 있었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뒤 삶이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더욱 열심히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