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신문사에 들어오게 된 건 순전히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새내기의 첫 학기를 무의미하게 보낸 기자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홍대신문 수습기자 추가 모집 지원 마감 1시간 전부터 급하게 지원서를 써서 수습기자에 지원했다. 사실 충동적이었다고는 하지만 홍대신문의 모집공고를 그때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기자는 대학에 입학한 3월부터 수습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고 홍대신문에 지원할지 잠깐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기자는 중학교 3학년부터 오랜 시간 ‘기자’라는 직업을 꿈꿔왔고 그에 맞춰 고등학생 때부
코로나 19라는 어려운 시국에 기자 생활을 하는 것만큼 월등히 학교 생활에 전념할만한 일은 없을 것이다. 기자는 신문사 생활을 하며 누구보다 대학 생활에 젖어 들었다고 자신한다. 대학에서 경험한 기자 생활은 대학에서 경험한 다른 어떤 일들보다 특별했고, 학교를 졸업해서도 오래 기억할만한 추억이다.기자는 글 쓰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평소 기자 혼자만 보는 블로그에 적은 일기가 수십 건이 될 정도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은 반드시 왜 이것이 생각났는지 설명이 되어야 했고, 이를 기록하고 적는 일은 자연스레 습관이 되었다. 이러한
‘빛 좋은 개살구’란 겉보기에는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띠고 있지만 맛은 없는 개살구라는 뜻으로, 겉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기자는 이 속담을 볼 때마다 기자 자신을 지칭하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빛조차도 좋지 않을 수 있기에 이는 기자의 착각일 수도 있다. 학기 중에 취재, 기사 작성, 늦은 시간까지의 마감 일정을 소화하고 방학 중에 밤낮으로 기획서를 작성하는 기자를 보며 학교 동기들과 친구들은 힘들지 않냐며 걱정해주고, 대단하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이처럼 기자의 주위 사람들에게 기
체감이 잘 되지 않는다. 작년 여름 입사한 풋풋했던 새내기 기자가 어느덧 가장 높은 기수가 되어 S동 211호를 작성하고 있다니.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따른다고 했던가. 짊어져야 할 무게는 늘어났으나, 기자는 아직도 1년 차 새내기 기자의 티를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책임감이라는 게 이렇게도 어려운 것이었던가.기자의 작은 아버지의 직업은 신문사 기자였다. 기자가 열 살도 안 되었을 무렵, 기자를 무릎 위에 앉히고 당신의 직업을 소개해주던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가 돼주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직업
기자는 제대로 된 기사를 쓴 적 없는 채로 이제 2년 차 기자가 되어 ‘S동 211호’를 작성하게 됐다. 지난 반년 동안의 기자 생활을 평하자면 기자는 기자가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정기적인 발행일자를 갖춘 홍대신문 특성상 마감 기한 준수는 생명이다. 보도 기사 배분 회의 이후 기사를 쓸 기한은 일주일이다. 기자는 일주일 중 첫째 날부터 취재와 기사 작성을 할 정도로 시작은 빠르지만, 마무리가 미숙하다. 그래서 기자가 쓴 기사는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선배나 동기의 피드백을 받고 난 후에야 겨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났다. 여러 기사를 써냈던 시간 속에서 기자는 오피니언 코너를 맡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틀과 형식을 따르는 것에 익숙한 기자에게 백지와도 같은 이 코너는 피하고 싶은 두려움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에 항상 오피니언 코너를 맡지 않기를 바라며 도망쳐왔다. 운 좋게도 이 도망은 입사한 지 두 달여가 지난 준기자 이후 지금까지도 이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해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솔직한 마음을 적어보려 한다.기자는 한 번뿐인 대학 생활을 단지 바쁘고 알차게 보내고
결국에는 이 순간이 오고 말았다. 노트북 앞에서 숱한 밤을 지새우며 제발 빨리 와달라고 빌었던 순간, 그러면서도 막상 그 순간을 생각하면 괜히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순간, 지금 이렇게 코앞까지 다가와 버린 이 ‘마지막’이라는 순간.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항상 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각별한 마음이 드니 말이다. 그래서 기자는 이렇게 어느덧 훌쩍 다가온 S동 211호에서의 마지막을 아쉽기보다는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해보려 한다.사실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2년 전, 신문사 입사 1년 차 기자로서 첫 S동 211호를 작성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20살의 패기 넘치던 새내기는 어느새 산전수전 다 겪은 3년 차 부장기자가 되어 마지막 S동 211호를 쓰고 있다. 그동안 이 S동 211호를 거쳐간 선배 기자들의 말마따나, 신문사 생활 3년은 참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후배 기자들을 통해 감정의 스펙트럼을 배웠노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신문사를 삼재(三災)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다. 기자 역시 이 표현들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기자는 기자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보단 타인의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고 전하는 일에 익숙해진 터라 ‘S동 211호’와 ‘기자프리즘’과 같이 기자의 생각을 써내야 하는 기사가 어려워졌다. 매해 마지막 ‘S동 211호’는 다음 해 편집국장이 되는 부편집국장이 쓰는 것이 관례가 돼 현재 기자는 그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됐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마지막 ‘S동 211호’를 쓰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신문사 생활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포부를 다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의 2년을 회고해 보
기자는 1998년생 호랑이띠다. 기자가 대학 입시를 준비할 적, 어머니가 속는 셈 치고 다녀오신 점집에서는 2017년부터 기자의 ‘삼재(三災)’가 시작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걱정을 늘어놓으셨지만 정작 기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 삼재는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큰 재난을 의미한다는데, 기자는 모두 미신이겠거니 하며 무시했다. 그러나 그 삼재가 끝났다는 올해의 마지막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정말 그 점괘가 맞지 않았나 싶다. 기자의 재난이 시작된다던 그 해 말인 2017년 11월, 기자는 이 S동
첫 문장을 쓰기가 이토록 어려운 기사가 지금껏 있었던가. “필자를 ‘기자’로 지칭한단 말이야?” 처음 S동 211호를 작성할 때 이 글에서는 스스로를 ‘기자’로 쓴다는 점에 대해 배우며 깜짝 놀라던 기자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마치 자기 이름을 자기가 부르는 것처럼 왠지 민망한 마음이 들어 다소 쑥스러워 했던 기억. 약 2년의 시간이 흘렀을까. 기자는 이제 스스로를 ‘이산희 기자’라고 소개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칼럼의 주어를 ‘기자가’로 하는 것도 참 능숙한 사람이 되었다. 서랍에 빼곡하게 남은 기자의 홍대신문 명함이 무색하다.
어느덧 마지막 S동을 쓰게 되었다. 기사를 쓰는 지금도 곧 퇴임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2년 전 1학년 2학기, 딱 이맘때쯤 신문사에 들어와 수습기자로서 신문사에 적응하고 있었던 기자는 ‘어떤, 바쁜 일을 하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신문사에 지원했다. 그러나 당시의 기자가 생각했던 신문사와 지금의 기자가 느끼는 신문사는 사뭇 다르다. 기자는 단지 신문사에서 만들어내는 ‘신문’, 그리고 이를 위한 업무만을 생각하며 홍대신문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기자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신문사에서의 모든 것은 결국 ‘사람’과 연결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