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5월 초였다. 보따리 취재를 위해 기자실에 취재 수첩, 카메라를 가지러 가는 길이었다. 기자의 자취방에서 학교로 가려면 홍대 ‘걷고 싶은 거리’를 경유해야 한다. 당시 걷고 싶은 거리에서는 시위대가 일렬로 서서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다. 기자는 잠깐 서서 시위대를 바라봤다. 사진 찍을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음이 한스러웠다. 돌아올 때 카메라로 찍으리라 다짐했지만, 돌아왔을 때는 이미 시위대가 돌아간 후였다.다음 날, 영화 (2017)의 막을 연 남영동 대공분실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다. 어제 목격한
요즘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며 여유를 만끽하거나, 그 운치를 즐겨보는 것은 까마득하게 먼 일로 느껴진다. 기자가 이태준의 단편소설 『달밤』(1933)에 눈길이 간 이유는 달밤의 서정을 느낀 지 꽤 오래됐기 때문이다. 밤의 분위기가 그리워서였을까. 기자는 달밤을 소재로 한 이 짧은 소설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태준은 순박하면서도 어수룩한 ‘황수건’을 소설 전면에 내세워 사라져가는 순수함을 다룬다.『달밤』은 성북동으로 이사 온 지 대엿새 된 ‘나’의 집에 늦은 밤 황수건이 신문 배달을 오며 시작된다. 황수건은 순박하고 붙임성 좋은 인물
누구나 한 번쯤 지금 이 순간을 봄이라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연인이 생겼을 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봄이 오기까지 수많은 시련과 고난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조근현 감독의 (2014)은 베트남 파병으로 남편을 잃은 ‘민경’과 병으로 인해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준구’, 그리고 그런 준구를 바라보는 ‘정숙’ 등 시련과 고난을 겪는 인물들을 내세운다. 그리고 이들이 ‘조각’이라는 예술 활동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는 과
홍대신문 기자들은 방학 중에 고정란 기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 문외한인 기자에게 ‘보따리’ 기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기자가 지난 방학에 선택한 『영란』은 선배 기자가 남겨놓은 보따리 기획서의 작품이었다. 기자가 다루고 싶은 작품이라기보다는 빨리 기획서를 통과시키기 위해 선택한 작품이라는 뜻이다. 별 감정 없이 기사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던 중, 연인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는다. 공선옥(1963~) 작가의 『영란』(2010)은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여읜 엄마이자 아내인 ‘나’가 목포에서 삶의 의미를 찾
3월 1일은 학생들에겐 개학과 개강 하루 전날 또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날, 직장인들에겐 하루 쉴 수 있는 ‘꿀’같은 공휴일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약 100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선 태극기가 흩날리며 사람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조민호(1967~) 감독의 (2019)는 3·1절 100주년을 맞아 개봉됐다. 영화의 이야기는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서대문 형무소의 3평 남짓한 여옥사 제8호실에서 진행된다. 온갖 고문과 핍박이 존재했던 그곳에서도 만세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과연 무엇이 그
야구 팬들에게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독특한 팀을 꼽으라고 한다면 십중팔구는 ‘삼미 슈퍼스타즈’를 꼽곤 한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겨우 3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삼미 슈퍼스타즈는 특유의 슈퍼맨 마스코트와 B급 감성 넘치는 팀 이름, 그리고 좀 다른 의미로 ‘전설적’이었던 성적 덕에 연고지였던 인천의 야구 팬들에게는 일종의 애증에 가까운 존재로 추억되고 있다.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또 어떤 때에는 프로야구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던 삼미 슈퍼스타즈에게는 어딘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박민규(1968~) 작가의
‘시한부 인생’과 ‘사랑’, 이 둘은 그야말로 상극의 만남이다.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진호(1963~) 감독의 (1998)는 이 두 요소를 절묘하게 배치시켜 죽음을 앞둔 이의 사랑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초원사진관」이라는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원’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지만, 아무런 티를 내지 않고 평소처럼 일상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구청의 주차단속 요원 ‘다림’과 우연히 만나게
따뜻했던 지난 겨울이었지만 기자의 여정을 시샘이라도 하듯 유난히도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던 2월의 어느 날, 기자는 수원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를 타기에는 짧은 서울부터 수원. 하지만 여행의 설렘을 느끼고자 기자는 기차에 올랐다. 기자는 지난 겨울 동안 삶에 대한 고민 탓에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 『용두각을 찾아서』(1992)의 주인공인 ‘나’ 역시 일상의 권태감 속에서 기자와 같이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는 상황이다. ‘나’의 곁을 갑작스레 떠난 어머니는 ‘나’의 안식처였지만 뛰어넘어야 할 거대한 장애물과도 같은
누구에게나 그리운 그 시절과 그리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어떻게 남아있든,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물상자처럼 아름다웠던 그때의 그 추억을 꺼내어 보며 행복해하곤 한다. 올해 가슴 따뜻한 사랑 이야기로 우리들의 마음을 적신 의 주인공 ‘미수’도 그러하다. 미수는 가수 ‘유열’이 처음 라디오 방송 을 시작하던 때부터 시간이 흘러 그 라디오가 처음으로 ‘보이는 라디오’를 선보이게 된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1994년 「미수제과?뮈【?쌓은 따뜻했던 추억을 잊은 적이 없다. 비록 기자
흔히 현실감 없는 사건이나 이야기를 ‘소설 같다’고 말한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 끝에 아름다운 해피엔딩 또는 절절한 새드엔딩, 혹은 진한 여운을 남기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 ‘소설’은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일말의 결론을 독자에게 미리 일러주는 문학 갈래다.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기자는 현대소설 관련 과목을 수강할 때마다 소설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배우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생각보다 소설의 많은 부분이 현실과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등 주요 사회적 사건과 주제 및 발표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적용되는 대상은 다양하다. 그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장소가 될 수도 있으며,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문학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그리움의 대상이라고 한다면 역시 ‘고향’일 것이다. 수도 없이 많은 작품이 고향의 그리움을 노래하거나 표현해왔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정서 속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가 임철우(1954~)의 『눈이 오면』(1995)도 이러한 작품 중 하나이다. 주인공 ‘찬우’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내려가지만 이미 예전
우리나라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소설가 심훈(1901~1936)의 『상록수』(1935)에 대해 한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상록수』는 일제 강점기 시대 ‘청석골’이라는 시골에서 일어난 농촌계몽 운동을 다룬 소설로, 교훈적인 내용도 충실히 드러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동혁’과 ‘영신’의 로맨스를 적절히 결합해 문학적 완성도 또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이들 중 ‘영신’은 안산 샘골(現 상록구 본오동) 지역에서 농촌 계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 최용신(1909~1935) 선생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사실 ‘동혁’의 이야기와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