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입체주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뛰어난 데생화가이자 판화가, 조각가이기도 했다. 은 회화, 조각, 판화, 도자기 등 피카소 예술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회고전이다. 해당 전시에서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품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총 110여 점의 작품이 연대기적 테마로 구성돼 관람객들은 작가의 일생을 따라가며 작품을 볼 수 있다.첫 번째 섹션 ‘바르셀로나에서 파리, 혁명의 시대’에서는 피카소의 초기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명언이라고 알고 있는 글귀이다. 하지만 이 글귀는 실제로 앤디 워홀이 한 말이 아니라고 한다. 앤디 워홀은 ‘상업 미술’로 역대 가장 많은 돈을 번 미술가 중 한 명이자 미술의 인식을 바꾼 팝 아트의 거장이다. 팝 아트란 대중예술을 의미하는 ‘파퓰러 아트(Popular Art)’ 의 줄임말로 간단한 구성과 색채를 사용해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표현한 미술 장르다. 앤디 워홀은
웃음을 지으며 행복하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 입가에도 행복한 웃음이 번진다. 반면 슬픈 상황에서 애써 웃음을 짓는 사람을 보면 같은 웃음이라도 가슴이 저릿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웃음의 의미는 맥락에 따라 다양하다. 중국 현대미술의 대표적 작가 유에민쥔(岳敏君, 1962~)은 웃음의 특성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입을 크게 벌리며 과장된 웃음을 짓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짓는 웃음은 행복한 웃음보다는 자조적인 웃음, 세상을 향한 절망의 웃음처럼 보인다. 展은 웃음을 그리
1988 서울 올림픽은 한국이 보여준 급격한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또한 서방 진영과 공산 진영의 대립으로 1980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 LA 올림픽이 반쪽짜리 올림픽이 되며 그 의미를 잃어가던 무렵, 1988 서울 올림픽에 서방 진영과 공산 진영의 국가들이 함께 참가해 냉전 시대의 끝을 알리기도 했다. 이처럼 1988 서울 올림픽은 국내외 모두 큰 의미를 가진 올림픽이었다. 展은 1988 서울 올림픽 전후에 놓인 한국 현대 건축과 디자인 실천들을 다층적으로 바라보는 발판을 마련한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출신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는 (1496), (1501~1504) 등 조각뿐만 아니라 (1534~1541) 등 회화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펼친 예술가였다. 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미켈란젤로의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첫 번째 섹션은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기교가 아닌 그의 생애와 생각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해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도 이제 상투적 단어가 된 지 오래다. 그 배경에는 우리 선조들의 노력이 있었다. 한국인은 이러한 뛰어난 성장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이러한 자부심은 자칫 객관성이 결여된 감상에만 머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성과를 제삼자인 외국인에게 평가받고자 한다. 손흥민, 방탄소년단 등 우리나라 유명인들에 대한 해외반응을 궁금해하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展은 1906년부터 약 100년 동안 세계적인 사진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찍은 우리나라의 모습과 함께
유례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상에 많은 제약이 생기고 이동의 자유가 제한됐다.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이 답답한 기분을 느꼈을 테지만, 그중에서도 ‘여행’에 대한 갈증이 많이 생겼을 것이다. 이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마련된 전시회가 바로 展이다. 총 14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展은 여행지에 관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여행 가는 기분을 들게 해줄 뿐만 아니라, 관광지의 환경오염 문제도 다뤄 이에 대한 경각심을 전해준다.
냉전(冷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극 체제 하에서 소련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진영 간의 정치·외교·이념상 갈등이나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권력투쟁을 이르는 말이다. 옛날 옛적에나 존재했던 일 같지만, 현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년 전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과 얼마 전 우리나라를 향한 미국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 압박을 기억할 것이다. 바야흐로 ‘신(新)냉전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국제적 관계뿐만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도 성별, 종교, 세대별로 뭉쳐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등 분열과 반목(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 작가로 알려진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cha, 1860~1939). 알폰스 무하라 하면 나무줄기, 조개 모양 등에서 따온 아름다운 곡선을 이용하여 테두리를 장식하고, 그 속에 화려한 장신구를 한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을 섬세한 선으로 표현한 아르누보 양식의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그는 이러한 이국적인 아르누보 형식을 활용해 각종 포스터나 책의 삽화를 디자인하는 등 예술을 우리의 일상생활로 들여왔다. 展은 그의 첫 실용미술 작품인 극장 포스터
해방 직후 시작된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는 지난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산업화와 민주화, 군부정권 등 혼란의 격변기를 보낸 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예술가들은 독창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창작 활동을 전개했다. 이렇게 발전해온 한국 현대미술의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 1995년 국립현대미술관은 매년 展을 열었고 이는 2012년에 명칭이 바뀌어 展으로 이어졌다. 이번 展에서는 홍영인, 박혜수, 이주요, 김아영 작가가 현대사회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을 선보
20세기, 한반도는 격랑의 한복판에 있었다. 국운은 빠르게 쇠해 외세의 침투를 허용했고, 일제는 끝내 이 땅의 주권을 탈취했다. 이때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반면 일제와 길을 같이하며 자신만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던 사람들도 존재했다. 애국과 이기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시대가 민중의 고통 속에 36년 동안 이어졌다. 그러다 1945년, 한반도의 주민들은 ‘잃어버린 빛을 되찾았다’라는 의미의 광복을 맞았다. 하지만 빛과 함께 어둠이 순식간에 국토를 뒤덮었다. 조선 민족이 주체가 되어 찾은 독립이 아
오늘날 사진과 텍스트의 과감한 결합은 자연스러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법의 시작이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1945~)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바바라 크루거에게 텍스트는 그의 메시지를 전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작품의 일부이다. 그는 대중적인 명언, 정치 문구 등으로부터 유래된 풍자적인 글을 사진에 덧붙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그는 사진을 직접 찍기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기존의 광고물, 신문, 잡지에 사용된 것을 차용해 그 의미를 재구성한다. 즉,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에서 접하는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