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와 모텔이 많은 이유선사시대 사람들은 동굴에서 살았다. 동굴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사람들은 그 주변으로 모여앉아 움직이는 불을 바라보며 그 위에 밥도 지어 먹었을 것이다. 최초의 집인 동굴에서 집의 중심은 모닥불이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 현대인에게 집의 중심은 TV다. 가족들은 모두 거실에 모여앉아 움직이는 불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TV 화면을 바라본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과거 남자들은 밖에서 목숨을 걸고 사냥을 했고, 집에 돌아오면 멍하니 불을 쳐다보며 외부로부터 받은 긴장감을 해소했다고 한다. 불을 쳐다보는 시간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프라이빗한 공간을 얻는 다른 방식은 익명성을 통하는 것이다. 대도시화되며 공간의 부족으로 침해받는 사생활의 자유는 한편으로는 대도시가 지닌 익명성이라는 장치를 통해 비로소 회복된다. 나를 모르는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 있게 되면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더 자유로워질수록 그 공간에서 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사적으로 행동한 만큼 그 공간을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완벽한 익명성이 주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 멀리 해외여행을 간다. 그런데 마음먹고 아주 먼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시 부문최우수빨래 김소안오랜 장롱 깊숙이얼룩지고 곰팡이 슨 것들을 이젠아낌없이 비눗물에 담갔으니주물주물 주무르고철벅철벅 헹구어서햇볕 드는 난간에 널었습니다. 인제마르는 것은 빨래의 몫입니다 보송히 마르려면마음을 전부 드러내고 있어야 합니다. 우수오늘은 가게 문을 닫습니다 위경미오늘은 가게 문을 닫습니다매일 열려있던 그 가게는계절에 맞는 옷과 저렴한 신발을 팔았습니다어떤 이는 한눈 팔며 지나가고 또 어떤 이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지나갑니다그러면 주인은 입구로 나와 말없이 서있곤 했지요오늘은 가게 문을 닫습니다손을 대면 베일 것 같은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반면 동양에서는 나무기둥으로 된 네모진 모듈러로 건축물을 만들었다. 서양처럼 높은 벽을 따라 창문을 키우려면 큰 나무가 필요한데, 그런 큰 나무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실내공간이 많이 필요한 경우, 방의 폭은 유지하면서 한 방향으로 길게 늘여 창문과 접한 실내공간을 선형으로 늘려나가는 간편한 방식을 택하였다. 99칸 전통 한옥은 이렇게 해서 지어진 것이다. 99칸은 단위 모듈러의 개수를 말한다. 경복궁의 경우 경회루처럼 특별히 가로 세로 모두 큰 실내공간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앞부분에서는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자유를 가지는 것이고, 자유는 곧 권력이라고 했다. 이처럼 보는 것과 권력은 밀접한 관련을 지니는데, 시각적 관계에 의한 권력구조는 사무실의 부장님 책상 배치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금은 창조적인 사무공간을 형성하기 위해 책상 배치가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70~80년대에 회사생활을 하신 분들은 책상 배치에 따른 권력의 차등을 체험하셨을 것이다. 언제 한번 구청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을 방문해보라. 부장님은 창가에 창문을 등지고 앉아계신 것이 일반적인 광경이다. 그 앞 좌우 양측으로는 직원들 책상이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소돔과 고모라국가의 부가가치가 대부분 농사를 통해 창출되던 시절, 다른 것으로 돈을 벌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상업이다. 피렌체와 베니스인을 그 대표로 들 수 있다. 베니스는 특히 동양과 서양 간 중계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조선술 또한 탁월하여 직접 만든 배를 가지고 동서양 무역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이처럼 상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농업 기반 도시보다 더욱 밀도 높은 도시를 형성하면서 살았다. 이들 시대보다 더 과거인, 고대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하는 구약 성경에는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가
근로 공간의 탄생과 비밀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상상의 전기」라는 시를 살펴보자. “처음에 아이는 한계도 모르고, 포기도 모르고, 목표도 없이,그토록 생각 없이 즐거워한다. 그러다가 돌연 교실이라는 경계와 감금과 공포에 맞닥트리고유혹과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필자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무섭고 슬퍼진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감옥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어렸을 적에는 빈 땅이 많았다. 그곳에서 물방개도 잡고, 잠자리도 잡고, 땅에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신과의 관계와 건축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중세, 르네상스, 근대를 거치면서 교회의 평면도도 미세하게 변화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재미난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교회의 평면도에 나타난 변화다. 과거 르네상스 시절까지만 해도 하나님과 사제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제단 쪽이 멀어보이게 디자인을 하였다. 유럽의 성당에서는 세로로 긴 평면도의 좁은 쪽에 사제가 서 있게 된다.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제단이 까마득하게 멀리 보였을 것이다. 이러
최초의 성전건축 지난 연재에서 유대교의 예배 공간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소수의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리기에 대규모로 집회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과거 모세의 성막이다. 이렇던 것이 이스라엘이 정착한 후 사울 왕을 시작으로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왕정체제가 3대째 지속되면서 세 번째 왕인 솔로몬이 비로소 돌로 성전을 짓게 된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전에는 이동 가능한 천막으로 성전을 지었다면, 이제는 움직이지 못하는 돌로 성전을 지은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사회와 경제구조가 유목사회
(이전 호에서 이어집니다) 모든 건축은 그 건물을 사용하는 기능에 따라 디자인이 결정된다. 종교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장에서는 예배 내용에 따라 건축 공간 변화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교회 건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교회 건축도 시대에 따라 많이 변화해 왔는데 이는 예배의 행위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기독교는 구약시대 유대교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주요 행위는 예배, 곧 제사였다. 그리고 그 제사는 제사장이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초기 예배 형식의 대부분은 구약시대 모세라는 인물이 정립하였다. 구
불편한 교회, 편안한 절얼마 전에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불자가 아닌 자기도 절은 들어가기에 무리가 없고 편한 반면에 교회에는 부담스러워 들어가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건축적으로 살펴보자. 절과 교회 건축의 공평한 비교를 위해서 서울의 봉은사와 충현교회를 비교해볼까 한다. 둘 다 강남에 위치하고 규모도 대형 종교시설로서 비슷하다. 우선 절은 교회의 주일 예배와는 달리 정해진 시간에 한꺼번에 모이는 집회 중심이 아니다.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혼자 찾아가서 개인적으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복합적 삶, 유일한 땅, 지혜로운 해결책우리의 삶은 각 개인만 살펴보아도 복잡하고 파악하기 힘들다. 그런데 건축은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서 이룬 더 복잡하고 심오한 사회를 담아내는 장치이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 행동들을 적절히 조절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또한 어떠한 건물을 짓던 그 건축물이 들어서는 땅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곳이다. 모든 땅은 위도가 같으면 경도가 다르고, 경도가 같으면 위도가 다르다. 그 땅의 주변 상황들을 살펴보면 하나도 같은 조건인 땅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 제대로
층층이 퇴적된 삶의 역사팰럼시스트(Palimpsest)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원래 양피지위에 글자가 여러 겹 겹쳐서 보이는 것을 말한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 양피지에 글을 쓰던 시절에는 귀한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해서 이미 써진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글자를 써서 이전에 써진 글자들 위로 새로이 쓴 글자가 중첩되어 보이는 일이 흔했다. 이런 뜻의 단어가 건축에서는 오래된 역사적 흔적이 현재의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은유적으로 설명할 때 사용되고 있다. 가장 손쉬운 예로 강북의 복잡한 도로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거실과 골목길도로와 거리는 어떻게 다른가? 얼핏 보면 도로와 거리는 둘 다 ‘길’이라는 큰 개념으로 뭉뚱그려질 것도 같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은 다른 뉘앙스를 가진다. 보통 도로라고 하면 이동의 목적이 주가 되는 자동차 중심의 길을 말한다. ‘고속도로’ ‘강남대로’같은 길이 떠오른다. 한자로 쓰면 ‘길 로(路)’자로 표현될 것이다. 반면, 거리라고 하면 길 위에서 여러 가지 이벤트가 일어날 수 있는 사람중심의 길을 말하는 것 같다. 홍대 앞의 ‘피카소 거리’나 ‘가로수 길’이 그
우리가 TV를 많이 보는 이유얼마 전 친구가 마당이 있는 아주 작은 집인데 무척 크게 느껴졌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렇다. 30평짜리 주택이 100평짜리 주상복합보다도 더 넓게 느껴지기도 한다. 보통 100평짜리 주상복합은 주차장 같은 공용면적을 제외하더라도 작은 주택보다는 실내면적이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당 있는 주택이 넓은 평수의 아파트보다 더 넓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마당은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주상복합에서 아무리 넓은 거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거실의 인테리어가 매일 매일 시시각각 바뀌지는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옹벽과 동이 같은 옹벽은 도시미관 적으로 큰 공해이다. 건축에서 벽은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의 공간이었다가 벽이 서게 되면 둘로 나누어지게 된다. 옹벽도 벽이기 때문에 지역의 단절을 의미한다. 작은 계단으로 연결이 되어있던 달동네의 공간은 넓은 지역이더라도 자연스럽게 바로 옆의 지역과 연속적으로 연결이 된다. 사람사이에 벽이 없이 오갈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커뮤니티형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 동별로 옹벽이 나누어져 있다. 이들은 전체의 커뮤니티라기보다는 동으로 나누어진 사회이다. 주소 역
성 베네딕트 채플-자연과 대화하는 건물스위스 작은 마을에 경사진 산기슭에 피터 줌터(Peter Zumthor)라는 건축가가 디자인한 ‘성 베네딕트 채플’이 있다. 이 교회는 경사대지위에 나무로 마루를 만들어서 평평한 타원형에 가까운 평면을 가지고 있다. 줌터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교회 역시 건축 재료와 구법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훌륭한 작품이다. 규모면에서는 아주 작지만 이 작은 교회는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은 주로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인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성공적인 공원의 조건결론적으로 성공적인 공원이 되려면 주거지와 많은 면이 접하고 있어야하고 경사가 없는 평지이어야 한다. 평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적과 행위에 적합하고 주변의 주거지는 야간에도 공원을 안전하게 만들어서 시간대에 상관없이 사용가능하게 해준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켜주는 공원이 우리 주변에 있는데 그것이 서울의 고수부지이다. 고수부지는 이면에 대단위 강변아파트 단지가 포진해 있고, 밤낮으로 달리는 강변도로와 올림픽대로의 자동차 불빛이 방범을 서고 있다. 게다가 물가에 위치해 있어서 경관도 훌
센트럴 파크서울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하이드 파크나 뉴욕의 센트럴 파크 같은 도심공원이 없다. 가까운 일본의 동경에 비해서도 도심 내 녹지비율이 많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상상하면 아름드리나무가 있고, 햇볕이 잘 드는 잔디밭에서는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고, 원반을 던지면 개가 물고 오는 그런 행복한 휴식의 일상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더 행복해지고 싶은 우리는 대형 도심공원을 꿈꿔온 듯하다. 그러던 중 용산의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기회가 와서 서울도 센트럴 파크를 가지게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시각적 관계에 의한 권력구조는 사무실에서 부장님 책상의 가구배치에서도 극명하게 들어난다. 지금은 창조적인 사무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책상배치가 많이 랜덤 해졌지만 70~80년에 회사생활을 하신 분들은 책상배치에 의한 권력의 분배를 체험하셨을 것이다. 언제 한번 구청직원들이 있는 사무실을 방문해보라. 일반적으로 공무원 사무실에 가면 부장님은 창가에 창문을 등지고 앉아계신다. 그리고 그 앞으로 좌우 양측으로 직원들이 줄지어서 책상들이 마주보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복도 쪽에는 말단이 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