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기자는 52기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홍대신문사의 존재를 몰랐다. ‘홍대신문’이 발간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5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존재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기자가 꿈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단 한 번도 경찰이라는 꿈 이외의 직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주변 사람들은 “넌 갑자기 기자를 왜 해?”라고 종종 묻곤 했다. 아무래도 드라마 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혹시 나도 기자가 된다면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정의롭고 멋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기자가 처음 신문사에 면접을 보러S동 211호에 왔을 때, S동의 계단이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어서 ‘왼쪽으로 가야 붙을까? 오른쪽으로 가야 붙을까?’하고 혼자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기자에게 있어 S동의 첫 만남은 ‘고난’이었다. 결정장애가 있는 기자에게 S동은 계단에서부터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결정을 하도록 만들었었다.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갈지 생각할 틈도 없이 논술과 면접시험을 위해 기자와 가장 가까운 방향의 계단을 올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올라가자마자 논술과 면접을 봤고,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났다. 시험을 보고 난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 철학자 헤겔의 말이다. 복잡하게 들릴 수 있지만 한 생물체는 그 종의 변천 과정을 필연적으로 이해하면 쉽다. 마치 어린아이가 사족보행을 하며 자라다 발로 걷게 되는 것이 그 예다. 갑작스레 과학 용어를 사용해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이는 기자 생활에도 적용된다. 년차마다 또 개인마다 다르게 행동하는 것 같지만 기자 생활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전 기자들이 겪었던 상황을 마주하고 반복하게 된다. 1년차 생활을 돌아보고, 지금 1년차 기자를 보건대, 기자로서의 1년차는 알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렇다. 꼰대다. 어느덧 기자 생활 3년 차, 신문사에서 기자는 현재 ‘꼰대’를 담당하고 있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홍대 앞 거리가 아닌 그 누구도 쉽게 발을 들이지 않는 의문의 건물 S동의 기자실로 향했으며, 누군가에게는 그저 우산의 대용품일지도 모르는 종이 한 장을 지켜내고자 일주일 내내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공강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종강은 학기의 끝보다는 지독한 방학 중 일정의 시작으로 통했다. 3년이라는 시간, 소위 짬이 차버린 기자는 현재 신문사에서 필수불
열심히 하면 항상 기회가 온다고 생각했다. 캠퍼스 벽에 붙어 있었던 홍대신문사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는 기자에게는 하나의 기회처럼 보였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수습기자에 지원했다. 수습기자로 덜컥 발탁이 되자 진짜 기회는 시작되었다. 일명 ‘아웃사이더’라고 불리는 기자는 학과 또는 학부의 모임에 절대 끼는 일이 없었고, 무관심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일들이 기자와 영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가 된 순간부터 학내의 온갖 사안들을 꿰차고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캠퍼스 이곳저곳을 맴돌며 기사로 작성할 만한 단서가
오늘 정말로 의도치 않은 산행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 도보 20분 정도 떨어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좀 색다른 나만의 길을 찾아보겠다며 아파트단지와 공원을 가로질러 다다른 곳은 어느 산길의 입구였다. 이 산을 가로지르는 터널을 통해 오고가며 이 너머가 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니와, 집 근처에서 그리 높은 산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발을 디뎠다. 가파르지 않은 길일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눈앞에는 오르막길이 계속해서 펼쳐졌고, 이게 아니다 싶을 때는 너무 멀리 와버렸으며 집은 산 아래로 보이는데 도저히 이 산에서
되돌아보자면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3년 동안 기자는 고무줄 같은 사람이었다. 마감 날은 물론이거니와 마감이 아닌 날에도 원고를 붙들고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헤드를 맡은 주에는 1면이니까, 보도를 맡은 주에는 제때 취재를 나가야 하니까, 인터뷰를 맡은 주에는 인터뷰이의 의도를 해치면 안 되니까. 그리고 이번처럼 S동 211호를 맡은 주에는 후회 없는 글을 써야 하니까. 더불어 이번 주 기사를 쓰면서도 다음 주 기사를 위한 학내 이슈에 온 신경을 곤두서고 있어야 하니까. (하여튼) 이유는 많았다. 취재처에서 기자
드디어 이 제목을 쓰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 몰랐는데, 시간의 흐름은 이와 관련된 수많은 관용구를 모두 꺼내 말해보아도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무서운 것이다. 마지막 S동 211호 기사의 제목을 왜 이렇게 짓고 싶어 했는지조차 이전의 기억을 끄집어내야 할 만큼 마지막을 바랐던 시점과 실제로 마지막이 다가온 시점의 간극은 너무나도 멀었다. 결국 마지막 수기를 쓰는 날이 온 지금 이 순간에도 ‘퇴임’이라는 단어는 기자에게 멀게만 느껴진다. S동 211호 기사를 작성하면 기사에 실을 일러스트를 신청할 때 일러스트
어느덧 마지막이다.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왔던 1년은 기억이란 이름 앞에 다가와 추억이 되었다. 이제 기자는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신문사를 떠난다. 돌이켜보면 무모했고, 무지했을 뿐이었다. 불나방이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뜨거운 불에 뛰어들어 열정적으로 사랑하듯이, 현장에 나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뛰었고, 뜨겁게 순간을 사랑했다. 하지만 딱 그만큼. 힘든 일정에 지쳐 점점 열정을 잃어가는 기자의 모습을 볼 때면 딱 그 열정만큼 아쉬웠고, 딱 그 열정만큼 내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한마디로 기자에게 있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옷깃을 스친다. 무더웠던 지난날의 기억을 뒤로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라는 신호다. 언젠가부터 기자는 코끝에 느껴지는 서늘한 내음으로 가을의 도착을 체감하곤 했다. 익숙한 공기 주변을 겉도는 낯선 계절의 냄새. 이 어색한 조화는 올해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하고 있음을 알리는 방증이다. 더불어 이미 이름 석 자에 깊게 스며버린, ‘홍대신문 기자’로서 내게 남은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음을 상기시키는 알람이기도 하다. 서늘한 가을 내음이 가득한 S동 211호에 앉아 있다 보면, 이제는 멀지 않은 끝을 바라보며 자
금요일 오후 5시 즈음, 기자의 신문사 첫 출근이었다. 면접 이후 신문사 기자실에 처음 들어와 동기라는 사람들 옆에 앉게 되었다. 다들 눈앞에 화면 하나씩은 달고 있었는데, 당시 노트북 하나조차 가져오지 못한 기자는 멀뚱멀뚱 ‘이곳’의 분위기를 살폈다. 뭔가 분주하고 바빠 보이는 풍경 속에 예민한 분위기가 풍겨왔고 비교적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과 심각한 표정을 한 사람들의 모습이 섞여 보였다. 무엇을 하느라 저렇게 바쁜 것인지, 저 노트북과 컴퓨터 화면 너머로 뭘 보고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헤드’라니 ‘주제기획’
‘기자’는 진실을 전하는 사람일까? 영화 에서는 이런 대사가 있다. “Our job is to report the news, not fabricate it. That's the governments job.” 왜곡은 정부의 일이며 언론은 그저 정보전달자와 대중을 연결하는 중계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본 기자는 오랜 시간 동안 기자 외의 다른 직업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기자라는 꿈과 신념을 향해 한눈팔지 않고 달려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나는 진실을 전하는 사람일까?”
기사를 쓰기 전, 기자는 우선 다른 기자들이 쓴 S동 211호를 읽어보았다. 다들 참 맛깔나고 재미있게 신문사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기자 또한 얄팍한 어휘지식을 총동원해 그럴듯하게 신문사를 칭찬해보려 하였지만 아무리 잘 써보려고 해도 글은 도통 마음에 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지난 1년간 기자가 겪은 신문사는 말 그대로 ‘이 죽일 놈의 신문사’였기 때문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기자는 이참에 탁 털어놓고 솔직하게 신문사 욕이나 해볼까 한다. 설마하니 신문사 욕 좀 했다고 죽이기야 하겠는가. 신문사를 욕하기에 앞서,
흔히 기자들 사이에서 S동 211호(이하 S동)은 가장 부담이 없고 일기장처럼 편하게 쓸 수 있는 고정란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다른 기사들보다도 이 코너를 훨씬 더 선호한다. 그러나 지금 기자는 이 S동을 맡기까지 약 2년하고도 1개월이 걸렸다. 사실 빨리 쓰려면 충분히 빨리 쓸 수도 있는 이 코너를 왜 2년이 넘도록 미뤘을까? 이 마음가짐은 바야흐로 2년 전 기자가 이 신문사에 들어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2015년 3월 12일에 생겨났다. 중학교 때부터 독서 토론부를 필두로 고등학교 때 신문부까지 기자는 나름 ‘문과인’의 엘리트 코
기자의 생각을 온전히 글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몇 번의 고민 끝에 기자의 심경을 잘 투영하고 있는 ‘초’라는 한 단어를 꼽아 제목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S동 211호는 여러 말들이 쏟아지는 코너다. 그 쏟아지는 말들을 각각 다른 의미의 ‘초’를 통해 글로 담아냈다. 쉽게 쓴 글이 아니기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쑥스럽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 글은 기자의 진심을 담은 글이다. 초(秒): 분초. 신문사에서 시간 엄수는 중요한 덕목이다. 기사 마감을 제시간에 하지 못하면 모두가 곤란해진다. 이전까지 기자는 10분 정도는 봐주는 일명
벌써 3월은 막바지에 접어들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 것 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자로 활동하면서 매주 시간이 훌쩍 떠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난해 가을, 처음으로 홍대신문사에 들어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던 기자는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일정상의 문제로 예정되었던 날보다 늦게 면접을 보았던 기자는, 먼저 들어온 동기들과 함께 홍대신문사 활동을 하기에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논술지를 받아들고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기에 과연
‘불확실성’.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가 기자라는 이름과 함께 쌓아올린 여러 기억들을 거름종이에 거르다보면,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이 단어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당장 어떤 기사를 맡아 어떤 취재를 나가게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기자들의 일상. 이제는 내게도 자연스레 스며든 저 단어는, 그러나 기자생활 이전의 내게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반갑지 않은 것이었다.교복이 몸에 겨우 익숙해질 무렵부터 나는 우리 사회에서 소위 정도(正道)라 불리는 길을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제 나이에 맞게 대학에
방학 중 한산했던 캠퍼스가 봄의 시작을 외치는 듯 활기를 띤다. 캠퍼스 안은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형형색색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평소처럼 정문을 지나, 방울방울 떠오르는 추억을 담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지나오면 저 멀리 S동 건물이 보인다. S동 211호.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한때는 죽을 만큼 싫었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기자실에 홀로 앉아 기사를 쓰고 있으니 조용히 공허하다. 어느덧 기자는 이 S동 211호에서 길다면 길고, 어찌 보면 짧았던 1년을 마무리하고 새내기와 선배라는 책임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시간이란 참
개강 준비로 분주한 오늘도 기자는 어김없이 기사를 쓰기 위해 책상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켰다. 어느덧 기자는 2학년이 되었다. 홍대신문사의 정기자가 된 것이다. 책상 한 곳에는 기자의 기사가 실린 10부의 홍대신문이 순서대로 놓여있다. 신문이 발행되는 매주 화요일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동에 배치되어 있는 신문을 한 부씩 집어 괜히 사람들 많은 곳에서 한 번씩 펼쳐보기도 하였다. 그것들이 한 부 한 부 쌓여 벌써 10개가 되었다니 감회가 새롭다. 곧 홍대신문사의 신입 기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강의동마다 붙여야 한다. 기자
1년간 기자 생활을 거치며 새로운 마음으로 S동 211호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창 바빴던 동계기초훈련이 끝난 기자실은 익숙함과 동시에 낯섦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에 본 기자가 느꼈던 익숙함과 낯섦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작년에 수습기자 합격 문자를 받고 처음 기사를 작성했을 때, 기획기사로 인터뷰이를 섭외할 때, 첨삭 과정에서 빨간 도화지가 된 기사를 볼 때 기자에게 ‘기자’라는 단어는 과분한 것이 아닌가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가 떠올랐다. 낯섦에 대한 두려움은 도화지에 그대로 드러난다.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