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이 년 전 기자가 홍대신문사에 들어와 처음 맡은 기사는 일명 ‘헤드’ 기사였다. 신문의 얼굴인 1면을 장식하던 그 기사는 당연코 수습기자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어려웠지만, 적어도 ‘기자’라는 직책의 무게를 깨달은 것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취재들과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기사 마감, 언제나 무서운 선배 기자란 존재까지 쉬운 건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어느덧 여유를 되찾을 때쯤 기자는 이미 수습 기간을 거쳐 정기자가 되어있었고, 또 어느새 팀장 기자가 되어있었다.사람
기자가 홍대신문사에 들어와 처음 S동 211호를 쓴 후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인가,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전쟁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전쟁을 일상적으로 맞이하는 것인가. 이들 중 어떤 말이든 어울릴 법한 신문사 생활을 하며 보낸 1년 동안 기자는 마음속에 ‘스며들었던’ 긴장을 단 한시도 놓을 수 없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기사 마감 당시 기사를 잘 못써서 새로 작성해야 하는 상황을 두고 ‘기사가 터졌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래서 기자뿐만 아니라 홍대신문의 모든 기자들
기자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조금 더 걸리기 때문에 항상 처음이 힘들다. 그래서 기자 활동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기자 생활에 언제쯤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취재를 다니고 회의를 하며 하계기초훈련까지 거치고 나니, 어리버리했던 수습기자에서 준기자가 돼 이름 석 자가 새겨진 명함도 생겼다.기자가 신문사에 들어온 계기는 참 단순하다. 예비대학 때 선배 기자님의 홍대신문 홍보를 보고 기자가 너무 멋져 보여 기자가 되고
“제가 떨려서 말을 잘 못했는데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기자가 홍대신문 면접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기자는 입학 전 예비대학 때부터 홍대신문 기자가 되고 싶어 자기소개서를 내고 면접을 거쳐 수습기자가 됐다.기자가 처음 홍대신문에 지원했다고 말하자 많은 동기들과 선배들이 “왜 홍대신문에 지원했냐”며 “바쁜 신문사 생활과 학과 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겠냐”고 걱정했다.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교사를 희망했던 기자는 중학교 3학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언론의 왜곡과 무력함에 맞서는 언론인
동기들이 S동 211호를 쓰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언제쯤 쓰게 될까 생각했었는데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기자는 2019년 발간된 홍대신문을 정독하면서 S동 211호는 선배 기자들과 기들이 신문사에 대한 진솔한 마음을 표현하는 코너라고 느꼈다. 그래서 기자도 홍대신문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쓰고자 한다. 올해 3월 2학년으로 올라가며 대학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의도치 않게 자아성찰을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대학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던 중 홍대신문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홍대신문 기자로 활동
기자는 홍대신문 서울 캠퍼스 기자 중 유일한 이과 수습기자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기자를 한다는 것은 뭔가 낯설다. 사실 기자 역시 글을 쓰는 일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재수를 끝내고 매일 책을 읽으며 글쓰기와 시사에 흥미를 느꼈고, 자연스럽게 뉴스에도 관심이 생겼다. 또한 그 무렵 스키장 패트롤을 하면서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기자란 글을 좋아하고 평소 주변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경험들이 기자를 홍대신문으로 향하게 했다.약 2달간의 수습기자 생활동안 기자는 다양한 경험을 했
올해 3월부터 홍대신문사 기자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왜 신문사에 지원했냐”였다. 그럴 만도 한 게, 남들이 보기에는 신문사 활동은 기자의 전공인 미술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기자 본인도 한 가지 이유가 아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쌓여 지원하게 된 것이라 늘 답하기 모호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기자 본인은 ‘미술’이라는 하나의 분야로 정의되지 않는 다양한 면을 가진 사람이며,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또 기자가 전공하는 디자인에서 ‘언어’는 중요한 소통 매개체 중 하나이며 작품의 일부이기도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기자의 장래희망은 다양했다. 초등학교 때는 타임머신을 만들겠단 포부를 가지고 과학자란 꿈을 가지게 됐고, 중학교에 들어서서는 홍콩 빌딩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건축가라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처음 든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평소에도 시간이 남을 때마다 영화를 보곤 했는데, 당시 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지적 장애인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을 미국의 굵직한 사건들과 엮어 다룬다는 면에서 주인공의 삶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함께 다루는 과 같은 영
“신문이 뭐야?” 복학 후 학교는 잘 다니고 있냐는 삼촌의 걱정에 대학 신문사 기자가 되었다고 대답하니, 옆에 앉아있던 여섯 살 된 사촌동생이 물었다. 사촌동생에게 뉴스는 아냐고 묻자, 뉴스는 안다고 대답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신문은 영어로 'newspaper'이다. 말 그대로 뉴스가 적혀 있는 종이가 신문이다. 당황한 기자에게 사촌동생이 집에서 신문을 보지 않아 모를 수도 있다고 삼촌이 말씀하셨다.기자의 꿈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PD였다. 지금은 그 범위가 넓어져서 언론인이 되고 싶다 생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방송국에
“축하드립니다! 홍대신문 수습기자 추가모집에서 최종합격하셨습니다.” 친구들과 게임을 하던 도중 홍대신문에서 받은 문자의 첫문장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기자는 최근 ‘설렘’이라는 단어에 굉장히 무뎌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기대만 잔뜩 부풀어 있던 신입생 시절도 지나갔고,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군 생활도 마침내 끝이 났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성취감보다는 허탈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쓰디쓴 허탈함을 없애줄 해결책으로 기자는 홍대신문을 선택했다. 동아리에 들어가면 다시 놀기 시작할 게 뻔했
딱 1년이다. 작년 봄, 신문사 입사 후 반년이 좀 넘은 시기에 썼던 S동 211호를 다시 돌아온 올해 봄에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신문사로 인해 마주한 여러 상황들과 그에 대한 고민에 대해 썼다.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2학기 S동 기사에는 신문사 생활을 청산하는 소감이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이번 지면에서는 그 중간 지점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사실 기자는 굉장히 성취감이 높은 사람이다. 남들 눈에 ‘열심히’, 혹은 ‘성실하게’라고 비치는 기자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 ‘사실 다 욕심’이었다. 그래서 몸과 여유를 챙기지도 못한 채
사실 기자에게는 그 어떤 보도기사나 고정란 기사를 쓰는 것보다 이 ‘S동 211호’를 쓰는 것이 훨씬 더 큰 부담이다. 이 글만큼은 기자가 느낀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아야 하기 때문일까. 이번에도 한참을 미루기만 하다가 겨우 쓰게 되었다. 여러 번 망설이고 주저한 만큼 이번 S동 211호에서는 기자로 활동하며 느낀 ‘홍대신문’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을까 한다.‘홍대신문’을 떠올리면, 설레는 감정과 동시에 아쉬운 감정이 든다. 우선 설렘, 앞으로 이어질 기자의 대학 생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이 신문사 생활은 아직 기자에게 설렘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