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1897~1972)은 소정 변관식과 더불어 근대기 사경산수화를 대표하는 동양화가이다. 1914년 그는 최초의 근대식 미술교육기관인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에 입학하여 1918년 4월에 졸업할 때까지 안중식을 사사하였다. 당시 그는 안중식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 화려한 구성과 색채감이 강조된 궁중벽화인 (1920)를 제작하였다. 또한 스승이었던 안중식의 화숙인 경묵당(耕墨堂)에 기거하며 자연스럽게 서화협회에 참여한 그는 1921년 1회부터 1936년 15회
1987년 1월, 20대 소녀는 알베르 카뮈를 좋아했다. 카뮈는 소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 이성에 대한 믿음, 정의에 대한 신뢰, 자유에 대한 희구, 공존에 대한 당위성마저도 전복시켰는데도 소녀는 그가 주는 고차원적 고뇌에 의미부여 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하지만 시대는 소녀가 절망을 습관화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소녀는 스스로를 실존적 관념에 빠진 지적 허영 상태라 규정하고는 카뮈로부터 도망쳤고, 낙인찍힌 고뇌는 기저로 가라앉고 말았다.2023년 1월,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제자가 와우서고의 원고를 요청했다
박현기는 백남준을 이어서 한국 비디오 아트의 1세대에 속하는 작가로 평가 받는다.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박현기는, 1961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지만 이후 건축학과로 전과하여 졸업한다. 그는 회화라는 매체가 가진 평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건축을 택했다고 말한다. 그는 비디오라는 조형 매체를 토대로 소위 건축적 설치 작업을 보여주며, 회화와 분리되는 독특한 자신의 조형 세계를 구축했다. 박현기는 1970년대 초반 서울의 미술계를 떠나 대전으로 내려간 직후, 미술잡지를 통해 초창기의 비디오 아트를 접한다. 그는
앙드레 브라질리에(Andre Brasilier, 1929~)는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프랑스의 화가이다. 1940년 2차 세계대전 중 불길에 휩싸인 덩케르크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그린 것이 그의 첫 작품이다. 브라질리에는 1949년부터 프랑스 최고 예술 학교인 파리 국립 미술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고 23세에는 루이 14세가 제정한 400년 역사의 ‘프리 드 롬 예술상(Prix de Rome de Peinture)’을 수상했다. 또한 유명 화가인 드랭, 블라맹크, 샤갈 등과 예술적인 교류를 한 화
영화 평론가는 ‘눈’을 총동원해 작품을 해석하며 때로는 찬탄을 보내고 때로는 신랄한 비판을 한다. 일반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관에서 나오면 일제히 이래서 좋았다, 인물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 결말이 아쉽다 등 나름의 ‘눈’을 펼치며 토론하곤 한다. 이때 단번에 “재밌었다!” “별론데?” 왈가왈부할 수 있는 영화가 보통이지만,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가 절로 나오는 영화들도 있기 마련이다. 기자에겐 장률 감독의 가 그러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보통이 아닌 영화였다. “아저씨, 나랑 여행 갈래요?”“꺼져.”“일
최근 화젯거리인 인물, 패션, 디자인, 색깔이 궁금하다면 서점의 잡지 판매대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표지를 주목하길 바란다. 잡지의 표지 디자인은 곧 잡지의 특징이자 유행을 말해준다. 표지는 판매대에 깔린 수많은 잡지 중 독자의 눈에 띄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잡지’라 하면 떠올리는 패션 잡지인 《보그(VOGUE)》,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마리끌레르(Marie Claire)》, 《엘르(ELLE)》 외에도 세상엔 다양한 종류의 잡지가 존재한다. 국어사전에서 잡지는 신문 이외
길고 긴 인생의 여정 앞에 우리에겐 수많은 ‘처음’이 주어진다. 처음은 언제나 걱정이 앞서고, 두렵기 마련이다. 그러나 떨림의 다른 이름은 설렘이다. 입학 첫날의 두근거림을 기억하는가? 아직은 쌀쌀하고 공기마저 들뜨는 3월, 갓 성인이 된 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사회에 나가 바라본 세상은 지금껏 알고 있던 세상과는 비교 안 될 정도로 새롭다. 첫 술자리, 첫 조별 과제, 처음으로 가보는 MT와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첫사랑. 정신없이 흘러가다 어느샌가 끝나버린 새내기 시절은 힘들었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기존에 확립된 사고체계와 지식체계는 변화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없기에 우리 안에 정답으로 자리 잡은 것들의 경계 너머에 있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고 및 지식체계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대전환 시대의 사람경영』, 양혁승, p. 318 챗GPT 쇼크는 6년 전 이세돌 프로를 이긴 알파고 쇼크를 능가한다. 챗GPT와 같이 고도화된 대화형 AI는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전문적인 글과 프로그래밍 코드를 작성하며 의료, 예술, 연구 등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 것으로 전망된다. 주어진 정보를 활
당신은 무언가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가? 우린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가 잃고 만다. 그것이 아끼던 볼펜이든지, 키우던 금붕어라든지, 사랑하는 사람이라든지 말이다. 우린 무언가를 잃고 슬퍼한다. 그것을 그리워하고 추억을 되새겨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하는가? 아끼고 사랑한 무언가를 잃은 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2019), (2022), (2009)을 소개하고자 한다. 【당신 없는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여기,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 ‘박순남
프랑스 태생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는 견고한 뎃생과 거칠고 운동감 있는 선을 활용한 표현주의 화가다. 그의 나이 30살이 채 되기도 전에 화단과 평단, 대중의 주목을 고루 받으며 성공을 거두었던 뷔페는 왕성한 창작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그의 삶은 나치 치하의 파리에서의 어린시절, 어머니의 때 이른 죽음 후에 입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의 공동 창립자가 되는 베르제(Pierre Bergé)와 맺었던 긴밀한 관계 등 굴곡이 가득했다.마치 그것을
탄산수 시장은 세계적으로 급성장 중이다. 지난 2021년 6월 23일(금)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가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를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탄산수 판매량은 지난 2015년 1천890만L에서 불과 5년 만에 2천430만L로 28.6% 증가했다. 더불어 2025년에는 탄산수 판매량이 2천880만L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 탄산수 시장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2016년 탄산음료 강국이라 부를 수 있는 미국의 생수 판매량이 탄산음료의 판매량을 뛰어넘으며, 일반 생수보다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강한 탄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럽에서 긴 역사·전통을 보유한 명문 가문이다. 루돌프 1세(Rudolf I, 1218~1291)가 신성 로마 제국의 왕으로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카를 1세(Karl I, 1887~1922)까지 600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통치했다. 600년 동안 합스부르크 왕가는 수많은 예술 작품을 일구어냈고, 그 결과는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등 바로크 시기 거장들의 작품은 감상자로 하여금 감탄
철학 교양서인 『#철학』은 ‘나-우리-사회-세계’가 관계 맺고 있는 방식에 대해 알아보고 그러한 관계 맺음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철학적 문제들을 살펴보려 기획되었다. 이 글의 필자들은 모두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다. 네 명의 서양 현대철학자들이 모여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학교에서 만나는 청춘들이 묻고 싶으나 묻지 못한 이야기, 답을 구했으나 답을 찾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을 통해 현실적인 사건으로 철학적 문제들을 고찰하고 사유하는 기쁨을 직접 맛볼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깊은 가을 노란 은행잎 색의 표
지인과 (2022)에 관한 대화를 한 적 있다. 지인은 이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영화라 말했고 기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자가 생각하는 완벽한 영화는 무엇이냐”는 질문엔 도리어 답하지 못했다. 갖가지 영화를 나열해봐도 모두 조금씩의 결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신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은 있다. 좋은 영화는 보고 나면 여러 감정, 즉 여운이 남는다. 이 완벽하진 않더라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Andre Paul Guillaum
기자가 박해영 작가의 (2018)를 택한 건 인생의 쓴맛을 많이 볼수록 더 많이 위로받고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행복하자” 는 뻔한 말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하루를 버틴다. 각각 다른 퍼즐 조각처럼 모두 다른 사연이 있고 버티는 방식도 다르지만 서로를 통해 ‘행복’이라는 퍼즐을 마침내 완성시킨다.에는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아저씨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 중에는 정리해고를 당하고, 여러 번 말아 먹은 장사로 아내와 별거
“이 세상은 꼭두각시의 무대. 북소리 피 리 소리에 맞추어 놀다 보면 어느새 한 바탕의 짧은 꿈” 흔히들 생각하는 복수극의 한 장면은 끔찍한 일을 당한 주인공이 두 눈에 불을 켜고 총칼을 빼 드는 섬뜩한 사연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자기 자식을 버리고, 원수의 집에서 이십 년을 지낸 남자가 있다. 연극의 주인공, ‘정영’의 이야기이다. 2015년 국내 초연된 연극 은 2019년 관객이 뽑은 ‘국립극단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으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4년여 만에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조선 여인의 향취가 가득한 민예품 및 민속품에서 미의 본질을 찾았다. … 현대적 감각으로 다룬 이 작품들은 그의 풍아(風雅)와 운치로써 이미 과거가 아니고 현재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지향 이숙자의 작품에 대하여 미술평론가 석남 이경성이 남긴 평이다. 1967년부터 1978년까지 홍익대학교 초대 박물관장이었던 이경성은 제자인 이숙자의 첫 개인전 《이숙자 한국화전》(1973)에 서문을 써주었으며, 그의 영향으로 는 박물관의 소장품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숙자는 1963년에 홍익대학교에 입학하여 천경자에
기자가 이 코너를 위해 처음 선택한 작품은 이 작품이 아니었음을 고한다. 기자는 본래 평창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다루려 했다. 그러나 3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평창에서 촬영지로 향하는 버스는 하루에 단 두 번밖에 운행하지 않았고, 택시는 잡히지도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집에 가야 했고, 계획했던 모든 일이 꼬인 그날은 정말 ‘최악의 하루’였다. 다시 평창을 가기에는 시간이 없었던 터라 급하게 새로운 작품을 선택해야 했던 기자는 서촌과 익선동을 비롯한 종로 일대와 남산에서 촬영된 이 작품을 알게 됐다. 기자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일 겁니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의 두 번째 작품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오만과 편견』(1813)의 첫 대사이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작품인 만큼 영화나 드라마 등 『오만과 편견』을 각색한 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여기, 그 무수히 많은 작품들 중 단연코 가장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연극이 하나 있다. 바로 연극 이다. 소설 『오만과 편견』은 정밀한 인물 묘사와 탄탄한 이야기 전개로, 제인 오스
책 『문화트렌드 2022』에 따르면 올해 떠오르는 문화 콘텐츠들은 대중의 내면적 감정 표출을 위해 ‘사적 응징’에 집중하고 있다. 죄를 짓고도 전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범죄자들과,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며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공권력을 향해 분노한 사람들은 어느샌가 법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적 응징의 힘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는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미디어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실에선 이루어지기 힘든 사적 응징으로 관객에게 사랑받은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