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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완규 <소품>(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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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임완규는 1918년 서울태생으로 1943년도 일본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67-84년도 까지 홍익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1943년 ‘일본 독립미술 협회전’을 시작으로, 1952년 ‘신사실파’전시, 1959년 ‘모던아트 회원전’, 1967년 ‘2ㆍ9동인전‘등의 한국 모더니즘 형성에 일익을 담당한 주요 전시에 참여하였다. 한국의 모던아트는 일제강점기에 극소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해방 후에는 유학생들이 돌아오고 이 땅에 미술대학이 생기면서 나타났는데, 이 때 비로소 신흥미술이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출 수 있었다. 그 본격적인 움직임은 한국의 추상회화 혹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로 구성된 ’모던아트협회’로 발전된 ‘신사실파’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1957년 우리나라 현대미술 제 1세대들로 구성된 재야단체였던 ‘모던아트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1960년대에는 이대원, 권옥연 등과 함께 '2ㆍ9동인'을 결성하면서 독자적인 추상화를 그렸다.

추상미술은 ‘비대상 미술‘ 또는 ’비구상 미술‘이라고도 하는데, 자연의 구체적 대상을 거의 재현하지 않고 색, 선, 형 등 추상적 형식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미술을 지칭하는 것으로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주류의 하나를 이룬다. 그의 활동 당시 자연대상물에서 출발하여 이를 단순화 하거나 추상화하는 ‘자연추상’의 작품이 주류였던데 반해, 화가 임완규는 자유로운 내적 연상에 기반한 ‘자유추상’의 차별화된 추상작품을 제작하였다.

본교소장품인 <소품>에는 그의 주요 모티프인 원을 표현하였다. 그는 생애에 걸쳐 원과 원의 변주를 다룬 작품을 주로 제작하는데, 그의 원은 자연의 외관이 아닌 자신의 심의(心意)를 표출하기 위한, 즉 ‘자아론적 등가물’로서의 형태로서 존재한다.

가로와 세로가 각 38cm인 작은 정사각형 캔버스에 원을 꽉 차게 그리고, 그 원의 내부를 ‘잉크 페인팅’기법으로 표현하였는데, 커다란 원형 여러 개를 수직행렬로 복수화하면서 ‘올-오버‘한 화면을 구성하였다. 또한, 자세히 보면 형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형상을 ‘비형상화’하는 자유추상의 실험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원의 내부에 표현된 우연적인 형상들은 현미경을 통해 본 자연의 한 단면 같기도 하고, 생명을 잉태한 에너지를 느끼게도 한다.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는 기하학적인 틀을 없애고 보다 자유롭게 화면을 풀어내는 형식으로 이어진다.

해방이후 전쟁에 대한 상처와 실존의 저항이 담긴 ‘앵포르멜 회화’는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가 강한 반면, 그의 유기적인 형체와 섬세한 색채는 서정적이다. 게다가 자연스런 물감의 흐름사이로 드러난 선명한 색면들은 유기적인 형상과 어우러져 시적인 울림마저 준다. 더구나 우연적 인듯 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성 덕분에, 그의 작품은 크기가 작지만 캔버스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마치 소우주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방법적인 면에서 원형은 그에게 우주와 같은 상징체 였을지도 모른다.

1970년대 한국화단은 ‘모노톤 회화‘가 휩쓸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흐름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타고난 조형감각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절제된 화면을 구축해 나갔다. 이러한 작가의 독자적인 조형언어는 우리 현대미술의 또 다른 신선한 일면을 드러내어 준다.

돌아오는 11월 23일 본교 박물관에서 개최되는 ‘박물관 상설전‘에서 추상미술의 선구세대인 화가 임완규가 ’자아론적’열정‘으로 제작한 <소품>을 감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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