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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를 헤쳐 갔던 양심 청년, 그리고 우리
  • 김영진(광고홍보2) 학우
  • 승인 2017.11.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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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를 거쳐 80년대까지만 해도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던 청년들은 독재에 맞서며 그들의 권리를 부르짖었다. 그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짱돌을 들었다. 스마트폰은 물론 삐삐조차 없었던 시절, 우리네 청년들은 그렇게 사람의 말과 행동, 감정들로 찬란한 시대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시대에 걸맞게 청년들 사이에서도 많은 삶의 가치들이 존재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 청년, 농사일에 뛰어든 농촌 청년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대학 졸업장이 미래를 보장하던 시대였지만 수많은 청년은 그 안락함을 내팽개치고 은밀히 ‘노동행’ 열차를 택했다. 이때 그들을 이끌었던 삶의 가치이자 원동력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었다. 당장 내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주저앉을 것만 같았고 훗날 우리의 자식들까지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처럼 순수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살던 시절은 아주 먼 이야기 같지만 당장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다. 우울했지만 유쾌했고, 꽉 막혀있지만 정은 있었던 그때 그 시절.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무엇이 청년들을 무한 경쟁 괴물로 만든 것일까. ‘5포 세대’는 ‘N포 세대’가 되었고 ‘취준생’이 대학생 이후의 하나의 학년이 되어버렸다. 청년, 좁게는 대학생이 사회의 원동력이 되기는커녕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했다. 청년들은 취직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세상을 보기보다 책 보기를 선택했다.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회 구조적으로 보면 현재 중소기업에서는 인력난이 여전하다. 왜냐하면, 여전히 청년들은 대기업, 공기업, 금융기관을 선호하고 있고 더불어 복리후생도 누릴 수 있는 기업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청년층이 받는 월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70.9%밖에 못 미친다고 한다. 이렇게 실질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에서도 현저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어려울뿐더러, 인건비도 오르면서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덜 하고 기존 및 경력 채용을 활용하는 이유도 한몫한다. ‘청년실업’을 키워드로 이용해 연관어 트렌드 분석을 하면 상위권에 오르는 연관어가 눈에 띈다. ‘취업난’, ‘양극화’, ‘빈익빈 부익부’ 등의 단어였다. 위와 같은 이유 등으로 대기업의 문턱에 오르려는, 오랫동안 자발적 실업자로 살아가는 현시대 청년들의 출몰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청년 일자리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기술을 접목한 산업을 일자리 창출의 방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기술 진보에 대한 기대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과연 기술의 진보가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에 혁신적인 결과를 가져다줄까. 더욱 큰 문제는 기술의 진보보다도 무한 경쟁 사회 속 ‘양심’의 문제이다. 양심이 기술에 압도되는 순간 지금보다도 더 불공정하고 추악한 사회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청년들에게는 순수한 양심이 필요하다. 사회의 부조리에서 탈피하려 몸부림치던 80, 90년대 청년들은 순수한 양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궈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사회적 고립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팽배한 우리의 경쟁, ‘헬조선’ 사회 속에서 양심 이외에 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느 시장조사 전문 기업에 따르면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공동체 의식’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한국 사회의 갈등 양상이 심각하다고 바라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갑을 관계’의 갈등 유형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단순히 갑을 문제가 계층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청년 전체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내외적 인식이 지속되어 공동체 의식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보다 더 벌어가려는 사회를 꿈꾸게 된 것이다. 눈앞의 먹고 사는 문제가 당면 과제로 떠오르며 남의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물론 정부나 기업의 도움 없이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현 2017년을 사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들고일어나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설사 느린 걸음으로 갈지라도 내가 걸어갈 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경치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하고 양심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초석엔 건강한 의식을 가진 청년들이 있어야 한다. 조금은 진부하지만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Boys be ambitious! 여기서 야망은 단순히 내가 어느 위치에 올라가기 위한 야망이 아니라 내가 이 사회에 어떤 좋은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꿈과 목표일 것이다.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어떠한 청년으로 살아갈 것인가. 

 

김영진(광고홍보2)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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