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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선(교육88) 동문영화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다

사랑하는 연인과 시간을 보낼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할 때, 혹은 무료한 주말 오후, 우리는 영화관을 찾곤 한다.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대중매체다. 탄생한지 갓 한 세기를 넘긴 영화는 전 세계의 수많은 대중들에게 정신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예술수단이자, 우리의 일상으로서 발전했다. 하얀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오색찬란한 빛의 향연은 우리에게 때로는 꿈과 희망, 낭만과 사랑, 시련과 아픔을 선사하며 우리의 내면세계와 조우한다. 누군가는 영화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영화는 예술 또는 산업으로서의 의미를 뛰어넘어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았다. 오미선 동문은 영화 수입/배급사 ‘마노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어 퍼펙트 데이>(2016), <올 더 뷰티(All the Beauty)>(2016), <와와의 학교 가는날>(2015) 등 다수의 영화를 배급하였다. 카피라이터에서, 부천·전주 영화제 홍보팀장, 영화 배급사의 대표까지 영화계 전반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오미선 동문을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빗자루 금붕어 되다(A broom becomes a goldfish)>(2008), <스파이 파파(Spy Papa)>(2011), <키스(Kisses)>(2013) 등 다양한 작품의 배급을 담당했다. 배급할 작품을 선정하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영화’라는 분야는 사업상 위험부담이 굉장히 크다. 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배급을 담당한 회사도 함께 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급할 영화를 선정할 때는 상업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한국은 상대적으로 영화 시장이 좁고, 관객들이 선호하는 영화의 특징이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많은 영화 배급사들이 관객 들이 선호하는 특정 영화만을 수입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영화 배급사들이 모두 수입하려는 영화에 주목하기 보다는 적절한 상업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배급사들이 수입하려고 하지 않는 영화에 주목한다. 한국의 영화시장이 상대적으로 좁다보니, 한국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영화의 극히 일부가 상영된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에 근거해 작품을 선정하고 있다.   

Q.  마노는 이태리어와 스페인어로 손을 뜻하고,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보석 이름으로 불린다고 알고 있다. 회사 이름을 ‘마노’라고 짓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신뢰는 한 번 잃으면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가치이다. 따라서 업무에 있어 정직과 신뢰를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마노’라는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약속’과 ‘신뢰’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신뢰를 소중히 여기는 회사, 사람의 정성과 재주를 바탕으로 발전하는 회사의 이미지라는 의미를 담아 마노라는 이름을 지었다. 또한, 마노는 ‘시작’과 ‘거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말하는 단어가 ‘Ma'라고 한다. 이곳에서 ’시작‘이라는 의미가 파생되었고,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을 극복해 당당히 ’NO'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합쳐져 ’MANO'가 되었다. 마노라는 이름을 정한 후에는 한 번도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단어의 의미가 쌓여 나에게 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다.

Q.  대학 시절 교육학을 전공했고, 홍대신문의 기자로 활동했다고 알고 있다. 영화 배급사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교육은 인간의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다’라는 말에 매료되어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여느 20대처럼 구체적인 꿈을 가지지 못한 채 방황하곤 했다. 하지만 항상 ‘남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았다. 그러던 중 대학 졸업 후 우연한 기회에 영화사에 공채로 뽑혀 영화계에 몸담게 된 후 영화 카피라이터, 홍보, 기획, 프로듀싱,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경험했다. 이후 우연히 미국 헐리우드에 있는 작은 프로덕션에서 보조 프로듀서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다. 사회 생활을 10년 정도 한 사람으로서 미국으로의 이직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그 후 미국에서의 경험과 극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처음 영화계에 몸담았을 때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대학교 시절 바쁜 일정에 쫓겨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덜컥 영화 배급사에 취직을 하니 일을 하는데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고, 심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영화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고, 관련 학과를 전공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지로 인한 열등감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 길이 과연 나에게 맞는 길인가?’하는 의구심도 많이 들었다. 때문에 한 달에 천 편 가까운 영화를 보며 내가 가진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하나 둘, 영화가 쌓여가고 영화 분야의 다양한 일을 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스크린 앞에 있는 순간이 내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일이 나에게 가장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배급하는 일이 너무나도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타성에 젖지 않는 일이라는 것. 긴장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일이라는 것. 끊임없이 시장 트렌드의 변화와 관객들의 취향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같다. 

Q. 꿈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A.
인생에 정해진 길이란 없다. 각자 다른 인생을 살고, 사람마다 어려움을 겪는 지점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조언이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동일시하거나 단정 짓는 ‘자기최면’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색깔 중에 빨간색이 가장 좋은 색깔이라고 가정했을 때, ‘빨간색이 가장 좋은 색이니까 나는 빨간색을 좋아해야지!’라는 생각은 적절하지 못한 생각이다. 모든 사람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좋아지는 색이 생길 수 있을 것이고, 바로 그 색이 바로 자신에게 맞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나는 앞으로 이런 일을 하겠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진정으로 맞는 길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내가 계획을 한다고 그 계획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인생 전반에 있어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저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20대는 구체적인 꿈을 정하기보다는 많은 일을 접해보고, 경험을 쌓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훌륭한 영화기획자가 되겠어!’, ‘나는 멋진 선생님이 되겠어!’와 같이 뚜렷한 목표를 잡는 것 보단 자신에게 맞는 ‘나는 남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와 같은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에는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수많은 직업들이 생긴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좁은 범위의 직업군 속에서 자신의 꿈을 한정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최대한 많은 일들을 경험해보고, 기회가 되는대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보면서 인생의 방향을 잡길 바란다.   

 

조재형 기자  cjhpmk001@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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