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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 인류의 발자취를 품어내다시대를 거듭하며 다양한 의미를 담아낸 손놀림

 

오늘도 세상의 남성들은 매일 아침 알람과 함께 몽롱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긴 세면대에서 하루사이 까끌까끌하게 올라온 수염과 마주한다. 이른 아침, 귀찮음과 촉박한 시간의 압박을 뒤로 한 채 집어든 면도기는 언제나 그렇듯 익숙하고 조심스레 턱 주변을 누빈다. 많은 이들에게 단순히 지저분한 체모를 제거하는 번거로운 작업으로 여겨지곤 하는 면도행위의 뒤편에는 생각보다 풍부한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당신의 빽빽하고 촘촘한 수염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을 담고 있는 면도의 민낯과 마주해보자.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인류의 시작과 발걸음을 함께한 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사시대 초창기 인류의 모습을 상상할 때, 대중매체에 정형화된 형태로 묘사되곤 하는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얼굴 가득한 수염을 필연적으로 떠올리곤 한다. 보통 그 당시에는 특별한 면도 기구가 없었으리라 생각되기 마련이라 ‘선사시대’와 ‘면도’ 두 단어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과 달리 면도라는 행위 그 자체는 훨씬 더 일찍 인류의 발자취와 함께했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라 발견된 돌로 만들어진 고대 원시인들의 면도용 도구는 면도가 약 2만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짐작케 한다. 이와 더불어 날카로운 조개껍데기나 석영 등의 광물 역시 수염과 머리를 깎는데 이용되었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도구들은 현대의 정교한 면도 기구에 비할 바가 아니라 말끔하게 털을 제거하는 수준은 어려웠을 것이며, 털을 약간 짧게 다듬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역사 속의 면도
이렇게 초기 인류의 걸음마와 발을 맞춰온 면도는 이후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나름의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선사시대에는 청결 유지 차원에서 면도가 이루어졌으며, 고대에는 주로 신에 대한 신앙심과 복종의 표현으로 수염을 자르는 행위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출토되는 유물들은 당시 면도가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졌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 이집트와 옛 아시리아 지방에서는 각각 청동제 도끼 모양의 면도칼과 몽둥이 모양의 평평한 면도칼이 발견되었다. 이와 함께 고대 그리스 지방에서도 초승달 모양의 면도칼이 출토되어 고대시대부터 면도기구와 함께 본격적인 면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이르러 면도는 그 행위 자체로 일종의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당시 로마는 면도에 필요한 정교한 거울과 예리한 칼날을 쉽게 구할 수 없었기에 털이 없는 깔끔한 얼굴은 상류계급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에 따라 로마 사회는 수염을 기르는 하층민이나 이민족을 차별하는 풍조가 만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면도 과정에서 생기는 상처를 방지하기 위한 변변한 면도 크림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라 면도를 하는 도중 얼굴 곳곳에 발생하는 상처는 피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필연적인 고통이 수반되었던 당시의 면도는 마치 수면 위에서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지만, 그 아래에서는 발버둥 치고 있는 백조의 모습에 비견될 만한 행위였다. 면도로 인한 고통 때문에 로마 황제 네로는 면도를 포기하고 수염을 기르기도 했다. 이 영향으로 이후의 황제들도 면도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결국 로마 사회는 면도를 포기하고 수염을 기르는 모습이 굳어졌다. 이처럼 수염을 기르는 모습이 한 시대의 풍경으로 굳어지기도 했지만, 중세시대에 접어들어 면도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깔끔한 콧수염의 유지를 위해 볼 주변의 털을 제거하는 수준의 면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면도기 또한 발전하였지만, 그 수준이 정교하지는 못했던 탓에 면도로 인한 얼굴의 상처는 여전히 당연시되곤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18세기 후반, 안전면도기의 구성요소중 하나인 보호막이 개발되면서 변화하기에 이른다. 이후 1901년 킹 질레트(King Camp Gillette, 1855~1932)에 의해 면도기에 일회용 칼날이 적용되면서 면도기는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는 무뎌진 칼날의 면도기에서 칼날만 새것으로 갈아 끼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일회용 칼날의 면도기 적용을 고안하였다. 이후 1965년, 영국의 월킨슨 소드사(社)가 면도기에 스테인리스 칼날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일상적인 면도기의 모습이 등장하게 되었다.

출처 :Flickr zzclef

감정 표현의 매개체, 면도
얼굴에 직접적으로 날카로운 칼날을 대야 하는 까닭에 면도는 태생적으로 단순한 제모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담아왔다. 과거 정교하지 못했던 면도 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면도는 대부분 누운 채로 타인의 손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는 곧 무방비 상태로 칼날을 손에 쥔 타인에게 목을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것이었기에, 면도는 곧 상호간의 신뢰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면도기의 비약적 발전으로 스스로도 충분히 깔끔한 면도가 가능해진 현대에 들어서도, 이 같은 의미는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대중매체에서 자주 이용되곤 한다. 갈등 관계에 놓여 있는 인물 사이에서 서로 간의 면도 행위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묘사함으로써, 극 중 긴장감을 높이는 기법이 하나의 예이다. 또한 면도는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얼굴의 체모를 제거함으로써 당사자의 심경 변화를 나타내는 매개체로 이용되기도 한다. 지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수염을 없애 말끔한 인상으로 거듭나 새롭게 이미지를 쇄신하거나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아낸 것이다. 이와 더불어 면도는 과거와의 단절, 변화의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하면서 당사자의 향후 행보를 주목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출처 : 연합뉴스

면도, 세상을 향한 메시지로 거듭나다.
얼굴의 털을 제거하는 행위 그 자체로 당사자의 심경 표현 수단으로 기능한 면도가 근대에 들어서서 그 이상의 의미를 품어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면도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진화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언론매체에 종종 비춰지곤 하는 사회·정치적 투쟁 현장에서 자신들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면도를 거부한 채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면도를 하지 않은 풍성한 수염 속에 자신의 정치적 투쟁 의지를 함축해냈던 인물로는 쿠바의 집권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1926~2016)가 대표적이다. 그는 면도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면도를 하지 않아 남는 시간을 혁명을 구상하는 데 쓴다.”라고 답했다. 그의 혁명 동지였던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 역시 면도를 하지 않아 풍성한 수염으로 중남미를 누비면서 그의 혁명사상을 전파했다. 이들의 수염은 이처럼 자신들의 정치적 의지를 나타내는 저항 수단으로 기능하여, 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청결 유지라는 단순한 목적으로 인류의 곁에 머무르기 시작했던 면도는 어느새 수염을 깎는다는 본연의 목적을 넘어서서 인류의 발걸음과 그 보폭을 맞추고 있다. 오늘도 애써 졸린 눈을 비비며 삐죽 튀어나온 털 가닥 하나 하나를 정리해나가는 당신의 손놀림은 또 하나의 역사를 담아내는 과정인 것이다. 오늘 하루, 당신의 턱을 누비고 있는 그 조심스런 손놀림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

 

<참고문헌>
『사물의 민낯』, 김지룡, 갈릴레오 SNC

 

김정운 기자  (rhra011@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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