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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책 읽는 수요일, 2016.

<현대문학작품읽기> 송민호 교수가 추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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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문학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

어느새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는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그것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접근성이나 연결감, 편리성 등은 지금까지 여타의 미디어들이 갖고 있던 ‘불편함’을 넘어서는 무한대의 자유를 보여준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옆 사람에게 묻는 불편함을 택하기보다는 ‘구글’에 물어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고, 어제 본 영화의 감상을 조용한 내면의 세계 속에서 곰곰이 곱씹기보다는 영화 리뷰 사이트나 카카오톡을 통해 묻는 일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또한, 요리를 할 때 사진이 충분하지 않은 말없는 요리책을 참고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보다는 ‘유튜브’를 검색하여 누가 했던 요리를 바로 보고 따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것, 악기를 처음 배우는 것 등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배워갈 때 교본이자 매뉴얼이 되어 주었던 책은 이제 점점 유튜브로 대체되어가 나중에는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유튜브에서 배웠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그 변화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그리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개인화된 모바일 미디어는 우리에게 훨씬 큰 자유와 훨씬 많은 확장성을 안겨준다. 

하지만 가끔씩 책이 주는 답답함이 그리워지는 밤이 있다. 우리가 이것 이상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과연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될까 하는 약간의 회의가 찾아올 때 특히 그렇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과정이 예전보다 힘겨워진 것을 보면 우리는 지금 정보를 과소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문학이 주는 막막함이 그리워지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소설을 읽으며 솟아오르는 감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막막하고 해결되지 않은 밤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막막함의 자리를 분명함이 채우고, 희뿌연 감정의 혼돈을 명쾌한 시각성이 채운다. 어쩌면, 이러한 질문, “그래도, 아직 문학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미디어의 편리함 이면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 말이다. 그것이 단지 과거에 대한 되찾을 수 없는 추억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문학의 막막함이 그리워지는 밤이면, 나는 내가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이라는 문학 입문서를 떠올리곤 한다. 이 책은 서구의 철학 사조를 관통하는 문학의 자리를 짚어주는 좋은 책이었지만, 내게는 쉽지 않은, 정복되지 않은 까다로운 이론서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언제나 문학의 배후에 자리 잡고 있는 막막함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최근 번역된 그의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이란 책을 소개하는 것은 미디어 시대에 처한 개인적인 소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소설이 처해 있는 여러 문제적인 지점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밝혀주고 있다. 확신에 넘치던 예전의 말투는 아니지만, 오히려 조심스럽게 서구의 고전 문학들에 대한 테리 이글턴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그의 생각을 따라 나도, 정보의 과소비로 지쳐버린 밤에는 ‘문학’을 권한다. 막막함이란 그리 나쁜 감정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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