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영화 <일 포스티노(The Postman)>(1984) 를 보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직접 겪지 않은 세대에도 공감을 통해 향수를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이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라고 으레 조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런 점에서 참 만족스러운 매체로 가장 여러 감각에 자극을 주며 나를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가곤 한다. 이렇듯 영화 속 사람들을 두어 시간 엿보고 나오면 현실의 다양한 사람도 이해해 볼 수 있게 되고 평소와는 다르게 소통을 시도하게끔 자신의 마음을 고쳐 먹어 볼 수도 있게 된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전반적으로 1950년대의 정치적 상황과 이탈리아 시골 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맞물린 정치적 혼란이라는 당시 세계의 모순을 비문학 책이라는 비교적 정제되고 딱딱한 정보로 다가가지 않고 아름다운 디저트에 녹여진 설탕과 버터처럼 접하니 기분이 좋아 슬쩍 이상해졌다. 다만 ‘많은 이의 찬사를 받는 고전’이라는 틀을 이미 가지고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컸지만, 영화는 내 식대로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특히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시공간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기에 인물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았다.

서툰 공감에도 확실히 아름다운 영화였다. 공간이 그러했다. 나는 한 영화를 처음 감상할 때 줄거리 정보를 먼저 파악하고 이후 그보다 강한 감각으로 박히는 이미지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영화 내내 줄거리 파악을 위한 대사를 놓치면서까지 공간을 눈에 오래 담고 싶어 했다. 해변, 암석 절벽, 고기잡이의 모습, 집의 모습과 색, 실내의 재질, 길이 나있는 모습, 그곳의 땅과 물과 식물과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살기에 보이게 되는 모습이 너무 흥미로웠다.

시나 은유에 대한 영화의 메시지는 오히려 나에겐 부차적인 것이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막 올라갔을 때는 이 영화가 시를 논리적 과정을 갖추지 못한 감정과 감수성의 영역으로만 보는 듯해서 불만스러웠다. ‘언어를 현실에서 유리된 특정인들만이 누리는 아름다운 무엇으로 보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상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의 직위가 너무 부풀어 올라 도리어 구름이 된 것인가. 이 생각을 검증하려 되새김질을 하다 “시는 쓴 사람이 아닌 필요한 사람에게 더 가치를 가진다.”는 네루다의 대사와 마리오가 마음을 표현하려 쓴 소리의 시, 세상에 말하려 군중 앞으로 들고나간 시에서 내 생각의 오류를 찾아냈다. 이탈리아어를 알았다면 그래서 여과 없이 시를 들을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자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쓰는 방식은 나쁜 의미로 아쉬웠다. 아름다운 사랑이라 보여주지만 베아트리체가 인물로서 존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인 마리오와 네루다와의 관계, 그들이 주고받은 영향은 섬세하게 표현했던 것에 비해 베아트리체는 마리오에게 중요한 인물임에도 ‘그가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사람’, ‘시로써의 구애에 마리오를 사랑하게 된다’ 정도의 설명만 있을 뿐 베아트리체의 감정과 행동에 맥락을 부여하지 못했다. 마리오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이자 후반부에 네루다에게 마리오의 죽음을 설명해줄 캐릭터 정도의 무게인 듯싶었다. 아쉬웠지만 시대를 고려해용서해 주기로 했다.

마리오의 캐릭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마리오는 어눌하지만 어쩔 도리 없이 미소가 나오게 되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시인 네루다와 만나 은유의 세계를 알게 됨으로써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게 성장한다. 다만 나는 마리오가 그 이상으로 성장하리라 기대했다. 물이 나오지 않는 섬의 상황, 이 상황에서 우물 사업을 선거 표몰이로 이용하는 인기 정치인과 마을의 갈등, 주변인인 신부와 우체국 점장이 추구하는 상반된 가치 등 이러한 갈등을 유기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태도를 행동해주길 원했다. 소식이 없는 네루다에게 섬의 소리를 녹음하여 존경과 애정을 표현했던 것은 큰 성장이었으나 이 사건 하나로는 부족했다. 다른 달라진 모습들로 내 기대에는 자꾸 아쉬움이 남았다. 전당대회에서 시를 낭송하는 것은 영화 중 가장 큰 행동이었으나 허망했다. 해결된 문제없이 영화가 짧게 끝나버렸다고 느껴졌다. 아주 박한 영화 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영화 시작부의 마리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나 무력하고 무지했는지. 나는 결실만을 가치로 인정하고 있었던가? 그것의 유무로 마리오의 의지와 행동을 평가할 수 있을까. 똑똑하지 못한 그의 순수함이 내 바보 같음을 드러내 보였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