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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물감을 들고 기차에 올라 순간을 잡아내다세 가지 과학의 스펙트럼이 합쳐진 화파
▲끌로드 모네, <인상:해돋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회, 수많은 인간관계. 현대인들을 가장 지치게 하는 요소들이다. 그렇게 일상에 쫓겨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 현실에서 훌쩍 벗어나고 싶을 때가 왕왕(往往) 있다. 그럴 때 먼 곳으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더 간편한 방법이 있다. 바로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림 속에는 화가가 작품을 그릴 당시 품었던 생각, 문화적 배경, 장소적 특징, 붓질의 세기, 색감의 미묘한 차이 등 다양한 요소들이 가득 담겨 있다. 때문에 작품을 가만히 뜯어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화가와 함께 그 작품의 세계를 구경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이 화가가 살았던 곳은 어떤 곳이며, 이 작품의 화풍은 무엇이며 어떤 영향을 사람들에게 주었을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인상주의를 예로 들어보자. 인상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모네의 <인상:해돋이>를 떠올려보면 작품 속 물감의 톤 자체가 차분한 파스텔 톤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감이 몇 번이고 덧칠되어 있고 그 속에는 다양한 색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작품의 외적인 요소 말고 내적인 요소로 들어가 보자. 작품 속에는 어떤 시대적 배경과 문화가 반영되었을까?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마법은 무엇일까? 미술계를 전복시킬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지만 그 속에는 따뜻함이 담긴 인상주의. 우리 한 번, 인상주의의 마법 속으로 빠져보자.

 

▲끌로드 모네

미술계의 혁명, 인상주의

인상주의가 등장한 당시는 자유로움과 개성이 중시되었다. 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 이후 유럽 전반에 이와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로 인해 미술계 역시 큰 영향을 받았는데, 굉장히 다양한 화파들이 등장했다. 그 중 누구보다도 혁명적이고 당시 사람들의 경악과 감탄을 이끌어냈던 화파는 다름 아닌 인상주의였다. 인상주의는 프랑스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러한 태동은 여러 시대적 배경으로부터 기인했다. 우선 이전 시대까지 화가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미를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 수백 년 동안 고전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었다. 때문에 화가들은 사물이나 인물을 그릴 때에 누가 보아도 그 물건과 사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똑같이 그리는 것을 가장 중시하였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파의 화가들은 달랐다. 가장 대표적인 화가 끌로드 모네(1840-1926),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등은 사물 그대로 그리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이보다는 사물의 느낌, 그리고 순간적인 인상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지금껏 전통처럼 내려왔던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선(線)보다는 색채 그대로에 관심을 가졌다. 더불어 고전주의 그림 속에 담겨있던 도덕, 역사, 종교에서 벗어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의 인상에 주목했다. 물론 현재 불리는 인상주의는 이러한 뜻에서 명명(命名) 된 것이 아니다. 사실 이는 그들의 그림을 본 한 미술 평론가가 “참으로 인상적이네!”라며 비꼰 덕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후 시간이 지나고 대중들과 전문가에 의해 인정을 받은 인상주의는 지금까지도 관람자들의 눈에 가장 큰 인상과 감동을 남기는 화파 중 하나이다.

 

▲인상주의의 형형색색을 빛추는 물감

기차, 물감, 카메라. 3종 발명품과 인상주의

인상주의는 여러 시대적 배경으로 태동하기도 했지만, 조금 더 자세히 인상주의 작품 속을 산책하다보면 3가지의 발명품이 인상주의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기차, 물감, 카메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기차와 물감은 인상주의의 태동을 이끌어냈으며, 카메라는 인상주의의 시점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지금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던 3종의 발명품을 인상주의와 함께 살펴보자.

 

▲인상주의의 시작과 끝, 기차와 물감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시대에 살던 예술가들을 완연한 자유로움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증기 기관차’였다. 1850년 산업혁명으로 인한 증기 기관차의 출현으로 도시 출신 사람들은 마침내 자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예술가들은 매연 속 어두침침한 도시에서 벗어나 목가적인 일상을 찾아 교외로 떠나게 되었다. 인상주의 이전에는 사실주의의 영향이 거대해 화가들은 대부분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곤 했다. 따라서 당시 작품 속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도시 노동자의 사실적인 삶을 묘사한 인물 소묘였다. 그러나 수십, 수백 년 동안 사물을 놓고 똑같이 그리는 것에 지겨움을 느끼던 화가들은 때마침 나타난 기차로 인해 다양한 곳을 갔고 다양한 사물과 풍경을 보게 되었다.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에 관심을 가졌고, 이로 인해 여러 어두웠던 작품의 전반적인 색채는 밝고 화사하게 바뀌었다.

더불어 물감, 특히 주석 튜브의 발명은 인상주의의 시발점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 물감은 현재 우리에게 친숙한 물감과는 다르게 분말, 고무 덩어리 혹은 풀의 형태로 판매 되었다. 때문에 각종 재료를 빻고 안료를 기름에 개서 써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즉 짜자마자 쓸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은 모델을 작업실로 불러 그림을 그리거나, 풍경을 감상한 후 머릿속에 담아 작업실로 돌아온 후 그렸었다. 그러나 주석 튜브의 발명으로 물감의 휴대가 가능해진 화가들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물감을 손에 쥐고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시골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한 손에는 기차표를, 한 손에는 물감 도구를 들었던 인상주의들은 팔레트에 물감을 짜고 이젤에 캔버스를 놓은 후 풍경을 만끽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던 한계를 뛰어넘어 이제 그들은 햇빛이 주는 축복 같은 자연광을 느끼고 관찰하며 캔버스에 담아냈다.

 

▲끌로드 모네, <흰색 수련 연못>

▲카메라, 인상주의의 시점을 이끌다

사람들은 언제 카메라를 사용할까?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찍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사물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싶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즉 카메라는 실물과 똑같은 허상을 찍어낸다. 따라서 카메라의 발명은, 지금껏 누구보다도 묘사와 복사의 기능을 완벽히 해냈던 화가들의 삶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무조건적으로 선현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데생하는 것에 가장 큰 목표를 두었던 화가들은 자신보다도 무섭게 세상을 재현해내는 카메라에 직업의 종말을 예감했다. 카메라의 발명 전까지는 특히 초상화가들의 인기가 절대적이었는데 이는 인물의 모습을 영구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카메라는 화가들에게 이러한 절대적인 능력을 빼앗았다. 1888년,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 1854-1932)은 소비자들에게 코닥으로 친숙한 롤 필름을 이용한 최초의 카메라를 소개했다. 다름 아닌 박스 모양의 최초의 카메라였다.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작은 박스는 마술을 부려 어떤 그림보다도 완벽히 사람과 사물을 재현해냈다. 즉 더 이상 누가, 얼마나 더 똑같이 그리냐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화가들은 이제 ‘색다른’ 기법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미술의 역사는 감히 시대를 셀 수 없을 만큼 견고하고 길게 묘사에 충실해왔다. 어디서 갑자기 카메라를 이길만한 다른 기법을 찾는단 말인가? 그 때 몇몇 화가들은 그 답을 카메라에서 찾았다. 카메라는 빛과 대기를 이용해 한 순간을 포착해낸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해.” 이는 모네의 말이자 인상주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즉 인상주의자들은 눈앞의 대상을 이전과 같이 관찰하고 그리더라도 그림을 그리는 순간을 포착했다. 시간과 빛, 그리고 대기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색을 포착한 그들은 물감을 찍고 캔버스에 묻히는 그 찰나의 순간을 기억해냈다. 즉 그 기억 속 잔상, 무의식, 추억 등을 같이 그려냈던 것이다. 따라서 인상주의의 작품 전반은 정확한 사물과 인물 묘사가 없다. 다만 그 붓 터치 한 번 한 번에 화가의 생각, 추억, 느낌 그리고 그림을 그릴 때의 날씨, 빛의 양, 시간에 따른 모든 변화가 담겨 있는 것이다.

 

지금껏 캔버스는 완벽한 사실만을 담아냈다. 그러나 인상주의를 기점으로 유럽 사람들의 시점과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캔버스에는 사실뿐만 아니라 화가의 생각과 느낌이 중요해졌다. 사진의 스냅과 같은 인상이 아닌, 감정이 녹아든 순간을 포착하며 그리는 사람의 감정이 인상을 좌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커다란 변환점에는 초석이 있기 마련이다. 세 가지의 발명품은 단순히 사람들의 편의뿐만 아니라 미술계의 위대한 발전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어땠을까? 인상주의는 아마 조금 더 늦은 시기에 등장했거나 혹은 미술계에 인상주의라는 화파가 영원히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흔히 보고 전혀 연관성이 없어보였던 이 세 가지의 발명품의 연합, 어떤가? 예술을 잘 몰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던 친숙한 그림과 이렇게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만약 지금 이 글을 읽고 알게 되었다면 지금이라도 인상주의 작품 속으로 새롭게 발걸음을 향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자유로우면서도 치열한 사회 분위기 속 이 모든 것을 초월해 미술계의 한 획을 그었던 인상주의들은 비슷한 삶을 사는 우리 현대인들의 마음을 알 듯 따뜻한 색채와 대기로 우리를 맞이해 줄 것이다.

 

<참고문헌>

『소년의 철학』, 장현정, 호밀밭, 2009.

『미술의 유혹』, 줄리언 프리먼, 예담, 2003.

 

김나은 기자  (smiles3124@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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