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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회화94) 동문은밀하고도 강렬한 작은 거인을 만들다

이른바 ‘언캐니(uncanny)’라고 한다. 데자뷰나 도플갱어 등과 같이 낯설지만 기이하게 느껴지는 심리적 현상을 일컫는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적용될법한 이 현상은 이동욱 작가의 작품 속 어느새 반전을 일으키는 요소로써 작용한다. 사실적이고 자세한 묘사로 시선을 사로잡아 관람객에게 강렬하게 다가가는 그의 작품 크기는 사실 여느 이들의 손바닥만 하다. 평소에도 물고기와 새를 기르고 수석 등을 수집한다는 그는 우리 주변 소소하고 개인적인 것들에 은밀하고도 강렬한 힘을 불어넣는다. 작가는 굳이 뚜렷한 욕심 없이 본인만의 섬세한 취향을 한껏 담아, 원하는 대로 형상화할 뿐이라고 한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좇아왔을 뿐이라고 하지만, 2011년 뉴욕 ‘두산 레지던시 프로그램’, 아라리오 갤러리 등 여러 갤러리 및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의 작가 활동은 그의 작업 열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2003년의 <동종 번식(Inbreeding)>展, 2012년 아라리오 갤러리에서의 <Love me sweet>展 등 현재까지 이어진 수많은 전시들은 그의 작업 속 은밀함을 드러낸다. 언제나 감상자들로 하여금 세련되면서도 기이한 시각적 감흥을 선사하는, 그의 ‘취향’ 속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이동욱(회화94) 동문

Q. 본교 회화과에 입학한 계기는 무엇인가? 동문이 학교를 입학할 당시부터 졸업 직후 사회에서 작가의 꿈과 함께 작업을 이어나가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A. ‘대학 입학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학교를 재학하던 와중까지도, ‘작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또렷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순수 미술이 좋았고 당시 홍익대학교 회화과가 ‘미술대학 중 가장 좋은 과’라는 흔한 인식들에 그대로 동의해 입학하고자 했던 것이 컸다. 대학을 준비하면서도 대학의 입학과 졸업 후 미래 직업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물론 그래서인지,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연해 알 수가 없었다. 그에 따라 좀 더 시간을 가져보고자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조금은 본격적으로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염두에 두게 된 것 같다. 실질적으로 내가 작가 생활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원 때 처음 시작했던 개인전이었지만, 나의 마음을 이끌었던 본질적 계기는 타 작가들의 작품 감상이었다. 대학교 4학년 시절, 해외에서 오랫동안 갤러리들을 방문하며 전시 감상에만 집중했다. 대학교 졸업 직전이던 당시, ‘좋은 작품들은 저렇게 멋질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으며 ‘저런 멋진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싶다’ 내지는 ‘저렇게 멋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커졌던 것 같다.

Q. 작가들은 불규칙한 수입과 재료비 등의 재정적인 이유로 다른 직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본인의 수입과 관련한 노하우가 있는가?

A. 작업 외에 병행하는 일은 딱히 없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때때로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교수를 겸하는 작가들처럼 직업을 가지고 일을 나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가 작업을 하기 위해 기본적 경제 기반이 요구되는 것은 맞다. 나의 경우 이제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전시를 하면서 사비를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 생활 초기부터 갤러리 등에 소속되어 전시를 진행하게 된다면 기본적으로 갤러리 대관비 혹은 전시 진행비를 소속 갤러리로부터 지원받는다. 물론 재료비 및 작업 공간 등에 스스로의 기반이 지속적으로 필요하지만 작품 운송 및 거래와 관련해서는 갤러리를 통해 일을 수월하게 이어갈 수 있다. 나는 대학 졸업 이후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상업 갤러리와 일을 하기 시작해, 내 3번째 전시부터 10년간은 지속적으로 이와 같은 전시를 진행했다. 초기부터 갤러리의 지원을 받았던 것이 어쩌면 내가 작가로서 현재의 위치까지 작업을 이어온 하나의 방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의 노하우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학부 졸업 때의 미술계 시기적 경향은 나에게 좋은 기회를 많이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 시기 이전에는 본래 중견작가들의 전시가 주를 이루며 젊은 작가들이 큰 역량을 차지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나의 학부 졸업 시기 1년 전부터는 외국에서부터 젊은 작가들에게 시선과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운이 좋게 잘 맞아 들어간 것도 있었던 것 같다.

Q. <인어(Mermaid)>(2006), <그린 자이언트(Green Giant)>(2003) 등 비교적 작은 크기의 섬세한 인체 작품들을 다수 작업하였다. 다소 작은 작업의 크기로 인해 자세한 묘사를 진행하거나 작품을 관리하는 데에 어려움이나 고충은 없었는가?

A. 오히려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작업 초기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작업을 이어나갔고, 작품을 오랜 기간 보관, 운송하는 데에 있어 나름의 편리를 본 것 같다. 작품 규모 자체가 작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대용량의 재료나 넓은 규모의 작업실이 요구되지 않았다. 또한, 그에 따라 재료비와 작업실 비용에 대해 큰 부담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학생 때는 심지어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 거실을 차지하고 작업을 하기도 했다. 별도의 작업실을 구해 밖에서 생활하며 식비와 공간 비용을 지불하기보다 집에서 형제들과 밥도 먹고 일상적 공간도 공유하며 한자리에서 혼자 집중하며 작업했다. 또한, 나의 성향상 여럿이서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보다는 나 혼자 작고 조용하게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해 섬세한 작업을 주로 했다. 이런 점들로 내 작업의 규모는 오히려 어려움보다는 나만의 이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다만 가까이서 감상할만한 작품들이 많기에, 미술관 혹은 갤러리에서 작품 전시를 할 때는 타인의 손을 타게 될 위험성과 도난, 훼손 등의 우려로 작품 위에 케이스를 씌워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도리어 내가 원치 않더라도 갤러리나 미술관 측에서 이에 대해 요구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은 당사자인 내가 케이스를 선호함에도 호기롭게 케이스를 마다하는 갤러리도 있다. 이를 무릅쓰고 과감하고 멋있게 전시를 해보자는 취지인 것이다.

▲이동욱, <그린 자이언트(Green Giant)>, Mixed media, 2003. (출처: 헬로 아티스트!)

Q. 작가로서 작품 전시 및 매매와 관련하여 본인의 작품이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치와 본인이 유지하고픈 작품의 가치가 충돌할 경우, 어떠한 조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 여느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작업 가격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작품의 가치를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크다. 특히나 작가 활동 초창기에는 내 가치에 맞는 거래를 고집하는 편이었다. 첫 번째 개인전 때에는 판매 얘기가 전혀 없었지만, 두 번째 개인전 때에는 처음으로 한 분께서 작품을 다 구매하겠다고 하셨다. 이에 당시 나는 “내 작품은 소중하다.”라며 단 한 점도 팔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작품의 대외적 활동을 위해 시장 및 갤러리, 작가 간의 중간적 조율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그 작품들은 팔지 않았지만 이후 해당 작품들과 유사한 시리즈를 타 아트 페어에서 팔게 되었다. 오히려 이 두 번째 전시 이후로는 작품을 파는 것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사라졌다. 작가가 판매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작품 판매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신 여전히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은 누군가가 구매 의사를 밝힌다 해도 팔지 않는 편이다. 또한 갤러리 등에 소속된다면 갤러리 측이 시장 내에서 협의를 매끄럽게 진행해주는 이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환경들과는 관계없이, 본인 스스로 조율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들이 작품의 수입이나 가치에 있어 가장 잘 만족을 유지하는 것 같다.

Q. 본교 미술대학 및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한 후 조각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회화과를 졸업하면 평면 회화 작업을 할 것이라고 예상되는데, 조각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그저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평면보다는 입체가 알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단순한 조각이라기보다는 ‘입체로 보여지는 회화’라고 표현하고 싶다. 본래 조각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전문적인 조각의 기반을 잘 갖추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조각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내 작업은 비교적 굉장히 회화적이다. 나 스스로도 작업을 하면서 ‘이 작품은 조각 작품이다’라는 식으로 회화와 분리시키지 않는다. 더불어 스스로 역시 나를 정통 조각가라고 규정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 직업을 물어본다면 조각을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아직 회화 기반의 입체를 하는 사람이라는 신념을 가진다. 지금도 때때로 드로잉을 하기도 하며, 회화만의 ‘맛’을 즐긴다. 나의 입체작품에서도 그러한 표정들이 드러나길 바란다. 그리고 작품을 대하고 감상할 때에도 기술적으로든, 심적으로든 내게는 회화가 편하다. 그에 비해 오히려 조각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Q.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술가 및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가지는 본인의 철학이나 생각이 궁금하다.

A. 사실 나의 인생에 작가가 꿈이었던 적은 없었다. 이 말은 즉슨 작가를 직업으로서 장래희망과 같이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된 이유는 오직 내가 작업을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수업이 끝나면 매일 실기실에서 작업을 했고 자주 전시를 보러 다녔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실질적으로 굉장히 모범적인 작가 성장 과정을 밟았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작가가 된 것도 분명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작가’에 대한 뚜렷한 목적은 없었다. 그저 자연스레 나의 성향이 잘 맞아떨어졌던 것도 같다. 작가가 되기 위해 작업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작가가 되어있었고 또 어느 순간에는 작가가 되니 어쩔 수 없이 작업을 계속 해야 하는 부분도 생겼다. 작가가 되어보니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과 방법을 끊임없이 고찰하게 된다. ‘멋진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해선 감히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마음,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을 꾸준히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다. 다른 여러 작가들의 경우에도, 꾸준히 작업을 하는 사람이 결국 ‘작가’로 남게 된다. 조금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그를 쫓다 보면 다른 길로 빠지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작가로 남는 것’ 자체에 대단한 의미부여를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본교 회화과는 특히 수가 많아 이미 나의 선배들도 다양한 직업 방향으로 진출해 나갔다. 현재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 또한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관심사를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홍준영 기자  mgs05038@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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