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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 이어폰에서 DNA까지, 매듭의 크고 작은 여행

매듭이 맺은 역사와 인연, 일상을 향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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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매듭짓다’라는 문장은 ‘확실히 끝내다’라는 문장보다 인상적인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매듭’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단단한 느낌에서 찾을 수 있을 것 이다. 매듭은 일상 속에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눈에 띈다. 주머니 속 꼬여버린 이어폰 줄, 매듭져 옷에 단단히 고정된 단추.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각이 가진‘매듭’은 꽁꽁 묶인 채로 형태를 견고히 갖추고 있다. 이렇듯 매듭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어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지만, 사실 매듭지어져 있는 상태와 그것을 푸는 의식 속에는 무구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침묵하고 있지만 조용히 진리를 품고 있는 매듭,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구멍 속에 끈을 끼워 사용한 신석기 시대 반달 돌칼
▲구멍 속에 끈을 끼워 사용한 신석기 시대 반달 돌칼

인류 역사와 매듭 

매듭은 선사시대부터 활용된 것으로 알려 졌다. 그 증거는 돌도끼를 나무토막에 묶어 사용한 흔적, 토기의 문양을 낼 때 노끈을 사용한 흔적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흔적을 통해 매듭은 이전부터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주거 형태가 나뭇잎으로 묶고 엮은 움막이었다는 점도 매듭이 상용화 되어있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매듭의 사용은 현재도 텐트 형식의 주거지에서 거주하는 일부 유목민들에게 남아 생활 필수 요건으로 매듭의 입지를 공 고히 한다.

  이처럼 일상에서 사용되는 매듭 이외에도 매듭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진화해왔다. 인류는 문자가 생겨나기 전부터 의사 전달과 기록을 위해 여러 방법을 고안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폭넓게 발견되는 사례가 바로 매듭을 이용한 표현 방법이다. 여러 가지 천이나 양털로 만든 끈으로 적당한 간격마다 일정한 매듭을 지어 뜻을 전 달한 결승문자(結繩文字)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결승문자’는 끈의 매듭, 길이, 빛깔로서 서로의 언약이나 사실을 기록해 두던 원시적인 기억 보조 수단이다. 결승(結繩)의 방법은 고대 중국에서 사용되었으며, 10세 기경 잉카 제국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들은 이를 키푸(quipu)라고 불렀는데, 페루어로 ‘매듭’이라는 뜻이다. 암호문 같은 이 결승 문자는 지금도 페루나 멕시코의 원주민들에게 흔적이 남아있다.

  물건과 물건을 연결하는 도구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매듭은 오늘날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런데 ‘결승문자’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매듭이 연결하는 것은 물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연을 맺다’ 또는 ‘인연을 끊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러한 문장에서도 매듭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다. 또한 혼례 절차에는 신부의 집으로 신랑의 생년, 월, 일, 시의 네 간지를 적어 보내는 간지(簡紙)가 포함되어 있는데, 간지가 적힌 종이를 실로 묶는 방법과 함 싸는 방식 등에서도 매듭의 의미는 재발견 된다. 이를 통해 매듭은 오랜 인연을 묶어주는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익숙한 일상부터 비가시적인 것들 까지 매듭은, 다른 두 대상을 하나로 연결 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하였는데, 발전 양상에서 우리나라와 서양과의 차이가 나타난다. 매듭과 함께 우리나라와 서양의 역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대한민국 역사 속의 매듭.

우리나라에서 매듭이 유물로 남아 있는 경우는 신석기 시대에 사용되던 돌도끼나 돌칼의 구멍에 끈을 꿰어 사용하였던 흔적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흙으로 빚은 가락바퀴는 실을 꼬는 기구로, 실을 고정하는 과정에서 매듭이 사용되었다. 목걸이의 장식으로 사용되었던 관옥은 앞과 뒤에 실을 꿸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장식품 곡옥에 도 실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는 점 에서 매듭은 당시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는 매듭이 생활 전반에 걸쳐 사 용된 시기로, 매듭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던 시대이다. 고구려 유물에서는 끈을 꼬아 실내장식용으로 사용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국시대부터 비단 주머니를 사용했는데, 주머니에는 끈목과 매듭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허리에 달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비단 주머니 등과 함께 ‘매듭’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매듭으로 이루어진 ‘술 장식’이 유행하였는데, 목걸이, 허리띠뿐만 아니라 구슬을 실에 연결한 ‘가슴치레걸이’ 등의 장신구에서 크게 발달하였다. 그 밖에도 부처와 보살의 위덕과 무량한 공덕을 적은 천을 실로 묶어 벽에 장식하는 ‘번(幡)’,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는 장엄용 불구 가운데 하나인 ‘당(幢)', 가마의 장식 등에 쓰인 유소, 복식에 쓰였던 것 등이 전해진다.

▲서양 역사 속의 매듭 

서양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매듭의 역사가 짧은 편이나 발전 양상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미국 해병들이 밧줄을 묶는 것에서 시작하여 잠수함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 해 다양하게 끈을 엮으며 즐기던 것에서 발전한 ‘매듭 문화’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방향으로 입지를 넓혔다.

  우리의 전통 매듭과 서양 매듭의 가장 큰 차이는 매듭을 꼬는 방법이다. 한국의 매듭은 일직선상에 연속 구성이 되나, 서양 의 매듭은 평면조직으로 여러 개의 잘린 끈 을 서로 엮어 만든다. 또한 한국 매듭은 비단실을 사용하여 색감이나 조형미에서 특이한 예술성을 나타내어 매듭을 이용한 장신구나 실내 장식품 문화가 발전하였고, 서양 매듭은 주로 면사를 사용하여 투박하면 서 점잖은 조형미를 나타낸다.

  서양의 남자들이 격식을 갖춘 옷을 입을 때 턱시도와 함께 착용하는 것이 바로 ‘나비 넥타이’이다. 나비넥타이를 맬 때 사용되는 것이 ‘나비매듭’으로,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양복에 포인트를 줄 수 있어 서양 각지에서 유행하였다. 서양에서 파티와 같은 모임을 가질 때 턱시도와 나비넥타이를 매는 것은 최상급 예복인 연미복을 간소화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는데, 나비넥타이는 턱시도와 함께 서양에서 어떤 격식의 모임에도 무난한, 남자들의 대표적인 예복으로 자리 잡았다. 나비매듭에서 비롯된 나비넥타이가 수많은 남자들의 양복 위에 올라앉아 매듭의 역사를 풍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진도 씻김굿의 고풀이, 출처: 전남일보
▲1980년대 진도 씻김굿의 고풀이, 출처: 전남일보

매듭, 풀고 풀리며 다양하게 변신하다 

동·서양의 역사 속 매듭에서 알 수 있듯 과거의 매듭은 일반적으로 물건과 물건을 엮 거나 장식품으로 만드는 형태였으나 시간이 흐르며 매듭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끈끈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국의 굿판에는 천지만물의 조화를 의미하는 다양한 상징적 물건들이 등장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중 하나가 ‘고’이다. ‘고’는 한 필 정도 길이의 베를 7매듭 또는 9매듭으로 둥글게 매듭지어 만든다. ‘고풀이’는 무녀가 망자의 맺힌 고를 풀며 우환 없이 저승으로 갈 수 있기를 기원하는 의식 이다. 무녀는 고 끝을 쥐고 무가를 부르며 풀어 나가는데, 둥근 매듭은 이승에서 풀 지 못한 한을 뜻한다. 한이 맺혀 있으면 이승을 떠나 저승에 갈 수 없기 때문에 굿에 서는 그것을 하나하나 풀며 원혼을 달랜다. 고풀이를 보는 사람들은 맺힌 고가 하나씩 풀리는 것을 보며 망자가 이승의 결박에서 풀려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 매듭이 맺어지고 풀리는 과정을 한생애와 연관 지어 표현한 고풀이는 이승과 저승의 연결을 형상화한, 절제된 한풀이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매듭은 다양한 곳에서 많은 의미로 변모해가며 나타난다. 최근에는 매듭 의 원리가 패션과 결합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스카프’이다. 스카프 는 어깨나 목 등에 걸쳐 장식과 실용을 더 하는 목도리인데, 스카프의 원리는 매듭을 짓는 과정과 유사하다. 스카프 매듭을 짓는 방법에 따라 스타일이 변하기도 하고 어떤 집단에서 유대감을 표하기 위해 스카프로 매듭짓는 방법을 다르게 하기도 한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며 망자를 위로하고 저승까지 배웅하던 ‘매듭’이 오늘날에 와 그 모습을 달리하여 사람들의 패션을 더욱 빛내는 존재가 되어있는 것이다. 매듭의 다양한 변신은 과연 인류와 발자취를 함께 하며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매듭론의 창시자 켈빈 경
▲매듭론의 창시자 켈빈 경

복잡한 세상을 풀다, 매듭론 

이렇듯 매듭은 점차 자신의 역할을 확장하며 현대에 와서는 일상의 다양한 부분에 나 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주머니 속에서 제멋 대로 꼬여버린 ‘이어폰 줄’을 다시 푸는 것 은 쉽지 않다. 이어폰 줄이 엉킨 것과 유사한 ‘엉킨 실타래’는 복잡하게 꼬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곤 한다. 엉킨 실타래의 조화는 수학 이론 발전에 도움을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매듭론’이다. ‘매듭론’은 양 끝이 이어진 매듭을 분 류하고 이들의 특성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이다. 일상적인 의미의 매듭은 대체로 긴 줄을 꼬아 묶은 것을 말하는데, 매듭론 에서 매듭이란 이 줄의 양쪽 끝을 붙인 것 이다. 매듭을 학문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 는 켈빈(Kelvin)의 볼텍스(vortex) 이론에서 기인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는 '분자의 화학적 성질은 이를 구성하는 원자들이 어떻게 꼬여서 매듭을 이루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매듭은 학문에 개입하여 꼬이고 풀리는 여러 과정을 거치 며 수학적 깨달음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치 를 시사한다. 이러한 매듭의 변신은 오늘날 DNA의 구조 분석, 바이러스의 행동 방식 연구에 이어 어린이의 지적 발달을 돕는 도구로 쓰이며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고 있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타인과의 상호작용, 복잡한 인간관계 등과 같이 매듭은 우리 인생의 형태와 가장 닮아있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어도 결국 끝과 끝이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매듭은 끈질긴 인연과 소중한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 다. 복잡하게 엉켜 있는 매듭을 보면 그것을 풀 생각에 막막하기도 하지만 조심스럽게 매듭을 푸는 과정은 매듭 이 가진 기나긴 역사와 인류애를 손으로 느끼는 것이며, 살아있는 매듭의 존 재를 몸소 체험하는 것이다. 꼬인 이어폰 줄에서부터 시작된 매듭과 매듭이 말하는 우리네 인생 이야기, 꼬인 매듭을 풀며 매듭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 수많은 인연과 만물의 조화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매듭의 여왕 묶음의 달인』 조흥식 외, 2010.

『KISTI의 과학향기』,『물리학수학』 김택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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