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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다른 이의 터전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터전을 빼앗기는 것의 아픔, 『모래톱 이야기』(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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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 부산 을숙도는 부모님 차를 타고 자전거를 타러 나갔던 드넓은 낙동강 양옆으로 산책로가 길게 뻗어있던 그런 아름다운 추억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다시 찾은 을숙도는 어린 시절의 그곳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본가에서 을숙도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 위에서 기자는 ‘모래톱 이야기’가 수록된 김정한 작가의 단편집을 꺼내 들었다. 김정한 작가의 단편 소설 대표작인 ‘모래톱 이야기’는 중학교 교사인 ‘나’가 을숙도에 수많은 모래톱 중 하나인 조마이섬에 사는 제자 건우네로 갔던 가정 방문의 일화와 건우의 할아버지인 갈밭새 영감과의 대화를 통해 보고 들은 섬의 비극적인 현실을 전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제 강점기 조마이섬은 조선 토지 조사사업에 의해 긴 세월 그곳에서 생계를 이어온 농민이 아닌 일본의 소유가 되었다. 해방 후에도 이 섬은 국회의원과 하천 부지 매립 허가를 받은 유력 자 등 기득권층 에 소유권이 넘어가며 조마이 섬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었다. 갈밭새 영감과 윤춘삼 등 현실에 강하게 저항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그 러나 이후 다른 사건에 휘말려 갈밭새 영감이 체포되고, 건우도 더 이상 학교를 나오지 않으 며, 조마이섬의 주인이 군대로 바뀌었다는 소문과 함께 소설은 비극적으로 마무리된다. 모래톱은 강가에 톱날 형태로 만들어진 모래더미를 일컫는데, 소설에 나오는 조마이섬의 실제 배경 이 을숙도의 수많은 모래톱 중 하나이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각양각색의 모래톱 들은 기자에게 ‘저기 어디쯤 건우가 살았을까’, ‘조막만 한 모래톱도 예전엔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큼 컸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소설을 곱씹던 중, 아미산 전망대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나릿배 통학생?” 이쪽으로선 처음 듣는 술어였다. “명지면에서 나릿배로 댕기는 아압니더.” 지각생 아닌 다른 애가 대신 대 답했다. 명지면이라면 김해 땅이다. 낙동강 하류. 강을 건너야만 부산으로 나올 수 있는 곳이다.

소설에 나온 김해군(현재 김해시) 명지면은 1966년 소설이 출판된 이후인 1978년에 부산 직할시에 편입되면서 현재는 부산 소재 의 명지동이 되었다. 지금의 소재가 어디가 되었던, 명지동은 지금도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다. 부산에서 낙동강 하류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기자가 찾은 이곳, 아미산 전망대이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걷다 보니 아파트 단지 앞에 위치한 자그마한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 2층에 올라가 넓은 통유리로 낙동강을 바라보니 아까 읽었던 소설이 준 왠지 모를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된 기분이었다. 건우는 나룻배로 통학을 하는 반의 유일한 학생이었다. 그 때문에 지각이 잦아 교 사였던 ‘나’를 짜증나게 했었다. 실제로 낙동강에 산재한 모래톱 중 몇 곳은 나룻배나 다른 교통수단이 아니면 통행이 힘들 정도 로 뭍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룻배로 통학 하며 지각의 위험에 발을 동동 굴렀을 건우를 생각하며 괜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섬의 생김새가 길쭉한 주머니 같다 해서 조마이섬이라고 불린다는 건우의 고장에는, 보리가 거의 자랄 대로 자라 있었다. 강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푸른 물결이 제법 넘실거리곤 했다.

기자가 직접 본 겨울의 모래톱엔 보리밭은 없었지만 상록수가 군데군데 있었고, 바람 에 흩날리는 억새는 장관을 이루었다. 건우 네 집은 조마이섬 위쪽 긴 남새밭(억새밭) 한 편에 위치한 조그마한 시골집이었다. 조마이섬엔 건우네 말고도 몇 채의 가구가 더 있었다. 마을을 이루진 않았지만, 소설에 나 온 바와 같이 당시에는 모래톱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몇몇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멀지 않은 뭍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외부인들도 많이 유입되어 낙동강의 모래톱엔 더 이상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추운 겨울 강 위의 모래톱엔 철새들만 간간이 보여 그 모습이 더욱 쓸쓸해 보였다.

“우리 조마이섬 사람들은 지 땅이 없는 사람들이오. 와 처음부터 없기사 없었겠소마 는 죄다 뺏기고 말았지요. 옛적부터 이 고 장 사람들이 젖줄같이 믿어 오는 낙동강 물이 맨들어 준 우리 조마이섬은…….”

기자는 아미산 전망대를 떠나 근처의 낙동강하구 에코센터로 향했다. 어릴 적 부모님 과 함께 철새 도래지라며 이곳을 찾아 체험 학습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에코센터에 도착했다. 연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오후 세 시, 모호한 시간대의 방문객은 기자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전시관을 둘러보다 백로들이 무리 지어 있는 절경을 보았다. 조금 더 가까이서 이를 느끼고 싶어 직원께 도움을 요청 했다. 직원은 기자를 친절히 탐방 체험장까지 데려다주셨다. 무리 지어 노는 백로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 보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십 년 전 이맘때 쯤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하굿둑 펄 위로 끝 도 없이 철새들이 자리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숫자가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그때의 웅장함이 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는 의문 이 들었다. 의문을 품은 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채비를 할 참이었다. 아까 그 직원이 지하철역까지 간다면 태워다 주신다고 하셨다. 에코센터가 역과 한참 떨어져 막막하던 찰나에 다행이다 싶어 감사하다며 차에 올라탔다.

“쥑일 놈들.” 그의 꺽꺽한 목소리에는, 건우가 지각을 하고 꾸중을 듣던 날 ‘나릿배 통학생임더.’ 하던 때의, 그 무엇인가를 저주하는 듯한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땅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컸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역까지 가는 길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곳을 다시 찾은 계기, 취재하고 있는 내용 등 에 대해 대화하다 탐방 체험장에서 품었던 질문을 했다. 직원은 어두워진 낯빛으로 낙동강 철새 도래지의 현주소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난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매립지도 늘어나고, 부산시 자체에서도 철새 도래지와 염생 식물 군락지 주변의 토지를 지속해서 개발하며 철새와 염생식물의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철새들 이 겨울에 이곳에서 먹이도 먹고, 충분한 휴 식을 취한 후 다시 몽골 등으로 가 번식을 해야 하는데 개발로 인한 터전 위협으로 이곳을 찾는 철새들의 개체가 많이 줄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지금 철새들의 처지가 소설 속 조마이섬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옛날부터 그 땅에 자리 잡고 살았던 조마이섬 사람들에게서 각 시 대의 기득권층이 그 소유권을 빼앗았던 것 과 같은 생물에 불과한 인간이 권력적 우위를 이용해 철새들의 터전을 빼앗은 것이 다 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제야 아까 체험장에서 느꼈던 왠지 모를 괴리감이 모여 있던 철새들 뒤로 보이는 빽빽한 아파트 단지 때문 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과연 철새들의 터전을 빼앗을 권리가 있을지…”라며 말을 줄이시는 직원의 목소리에서 갈밭새 영감의 꺽꺽한 목소리의 답답함이 느껴졌다.

법과 유력자의 배짱과 선량한 다수의 목숨……. 나는 이방인처럼 윤춘삼 씨의 컁컁한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나’는 갈밭새 영감이 맞이한 비극적 사건과 윤춘삼의 눈물 젖은 호소, 더 이상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제자 건우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방인으로 그들을 안타깝게 지켜볼 뿐이었다. 작가는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을 통해 권력에 억압받는 우리 사회 민중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불합리한 현실을 마주했음에도 권력 앞에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는,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왜 우리는 권력 앞에 이토록 작아지는 가. 불합리함에 맞서는 저항 의지가 어떻게 이렇게 쉽게 꺾일 수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기자는 입안이 까끌까끌할 정도의 씁쓸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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