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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언론암흑 속 길을 잃은 언론, 이제는 횃불을 들 때

"보고 싶은 뉴스와 봐야 할 뉴스 둘 중에 고르라면 뭘 고르시겠습니까?" 이 대사는 드라마 피노키오의 한 대사이다. 이 대사는 기자 역할을 맡은 등장인물에게 주어진 질문이기도하나 역으로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을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특히 SNS의 영향력이 지대한 만큼 이전의 종이 신문과 TV 뉴스보다 손쉽게 인터넷 뉴스를 더 자주 접하고, 이를 신뢰한다. 그러다보니 조그맣지만 자극적인 거짓은 손쉽게 부풀려져 마치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이에 대한 분별력과 인터넷 뉴스 기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생기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자극적인 거짓에 쉽게 분노하고 흥분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은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대중들과, 진실만을 전해야 하는 의무감을 지닌 언 인 중 누구의 잘못일까? 넘치는 정보와 거짓 속에 파묻힌 지금,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를 돌아보자.

 

대한민국 언론의 비상사태, 가짜뉴스의 범람기

갈피를 잃은 언론과 대중

'세 모자 사건'과' 240번 버스 기사 사건'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대중을 엄청난 분노에 빠트릴 만큼 공분을 샀지만 그 분노 뒤에 가려진 진실을 언론과 대중 모두 알아채지 못하고 미성숙하게 대응했다는 점이다. 세 모자 사건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어머니와 두 아들이 유투브 방송에 출연해 지금까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시아버지와 남편으로 인해 자신들은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해 수많은 언론에서 다뤄졌다. 비슷한 맥락으로 아이가 혼자 정류장에 내린 것을 늦게 알아차린 아이 엄마가 타고 있던 240번 버스 기사에게 정차를 요청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계속 버스를 운전해 논란이 일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이를 목격한 다른 승객이 한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곧이어 언론은 이 사건을 앞다투어 내보냈다. 대중들은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 무책임한 시아버지, 남편과 버스 기사에게 수많은 돌멩이를 앞다투어 던졌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진실은 밝혀졌다. 이 사건 모두 보여지고 쓰였던 것과는 정반대의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손가락질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이후 정작 마녀사냥을 당해야만 했던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거의 없었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언론은 해마다 같은 식의 가짜 뉴스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 가짜 뉴스의 파급력이 거대해지는 만큼 사건에 대한 명확한 사실 확인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없이 기사를 작성하거나 남이 쓴 기사를 그대로 베끼는 기자를 일명 '기레기'라고 불리는 등 언론이 가졌던 그 영향력과 위상은 점차 떨어져가고 있다. 그야말로 대중과 언론 사이의 불신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나요?

영웅, 언론은 왜 추락의 길을 걷게 되었나

언론이 그 위상을 잃어가는 가운데, 언론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그렇다면 빛바랜 언론, 영웅이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 왜 그들은 진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나

사람들은 현 사회를 흔히 ‘자본주의’ 체제라고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는 언론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기업들은 이익 창출을 가장 큰 목표로 삼는데, 언론도 결국은 하나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때문에 언론기관에서는 타 언론기관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결국 비공익적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결국 이는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왜곡한다. 특히 광고, 구독자, 기사 조회 수, 재생 수 등은 언론 수익의 판단 근거로 사용되기 때문에 언론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더 많은 구독자, 조회 수 등을 얻기 위해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더욱 자극적인 컨텐츠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결과 ‘패스트 뉴스’ 기조가 나타나며 이른바 ‘인터넷 언론 홍수 시대’가 당도했다.

‘패스트 뉴스’ 기조는 말 그대로 뉴스의 정확성보다는 뉴스의 신속성에 중요성을 두는 기조를 뜻하며, 이는 뉴스를 접할 수 있는 매체의 다양화를 통해 더욱 심화되었다. 이로 인해 언론이 사실보다 ‘속도’에 초점을 맞추자 기자들이 일제히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른바 받아쓰기식 보도로, 특정 주제에 대한 보도 기사가 나오면 나머지 매체들은 이에 대한 사실 확인 없이 오로지 최초의 보도를 ‘재생산’하는 것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언론 홍수 시대’가 당도하면서 많은 언론사는 인터넷 언론의 수익원인 광고료를 중요시하였고 언론사들은 광고료를 높이기 위해 해당 기사의 조회 수를 올리는 데에 치중했다. 결국 자극적인 기사를 생산해 클릭을 유도하려는 가짜뉴스가 증가하였고, 자극적인 뉴스의 잦은 노출은 독자의 불필요한 감정 소비로 나타나며 여러 문제점을 일으키고 있다.

이렇듯 언론이 ‘사실 보도’라는 본래의 역할보다 ‘수익 창출’을 우선시하게 된 현 상황은 ‘윤리적 딜레마’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언론인이 매체 생산자로서 보도의 공정성, 정확성, 사회적 파급력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차적으로 두고, 기업의 조직원으로서 소유주, 주주에 대한 의무로 수익 창출에 최선을 다하는 모순적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지 않은 언론인들이 언론인의 의무를 외면하고 경제적 이익만을 우선시해 문제시되는 상황도 일어났다. 특정 언론들이 유명 연예인의 자살에 관해 자극적으로 자살 방법을 서술하며 기사를 생산해 등을 상세히 서술하며 자극적으로 기사 생산해 고인과 그의 주변인에 대한 윤리 의식보다 수익창출을 선택해 질타를 받은 사례가 그 예시이다.

▲ 이색 언론의 등장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 속에서 길을 잃은 기성 언론들이 대중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가운데, 새로운 형태의 언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인 ‘독립언론’은 기업의 후원이 아닌 대중의 후원을 받는 언론으로 광고로 수익을 내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는 친(親)기업, 친(親)정부식의 보도를 지양하며 대규모 발행보다 소규모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의 고질적 병폐인 정파성과 상업주의 배제를 목표로 하는 ‘뉴스타파’, 20대의 소란한 공존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고함20’ 등이 그 예시다. 이들은 전통매체가 아닌 뉴미디어 기반이라는 특징 때문에 독자들과의 소통이 뛰어나다고 평가되며, 비교적 독자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다. 그리고 ‘자치언론’은 기성 기자가 아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취재와 편집, 제작비까지 직접 관여하지만, 기존 대학의 ‘학보사’와는 성격이 다른 언론이다. 학보사는 학교 당국과의 마찰이 있기도 하며 기사검열 때문에 언론의 자유에 제약이 따르기도 하지만 자치언론은 그러한 검열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퀴어플라이’, 연세대학교의 ‘조롱이’, 고려대학교의 ‘거의 격월간 몰라도 되는데’ 등이 자치언론의 예시이다. 마지막으로 ‘1인 언론’은 말 그대론 개인이 혼자 언론의 역할을 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정확한 채널이나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공적인 내용보다는 개인의 생각이나 신념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으며 콘텐츠 생산자의 명성 등에 따라 파급력이 달라지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이색언론들은 비교적 이익 관계와 탄압에서 자유롭지만 그만큼이나 취재에 있어서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언론들은 자유로운 만큼이나 언론의 책임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기성 언론과 때로는 발맞추어 가고, 때로는 그들이 실지 못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싣는 등의 시도를 함으로 인해 한국의 다양한 언론이 건강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상기, 「언론의 상업주의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언론정보학회, 2011.

 

‘진짜’ 언론은 무엇인가요?

가짜 언론에 맞서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다

▲ 저널리즘, 새로운 패러다임의 바람이 불다

가짜뉴스의 홍수 시대에서 언론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에 앞서 언론은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문부터 시작했다. 언론, 흔히 말하는 ‘저널리즘(Journalism)’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관한 팩트(Fact)를 전해 주는 단체라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언론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특성에 더하여 다양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전체 상황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인식을 주는 방향으로 전이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저널리즘이 쇠퇴하는 이유는 사실에 집착한 나머지 전망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제기되어 왔다. 따라서 기사에도 ‘맥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 때 나타난 것이 바로 ‘맥락 저널리즘’이다. 맥락 저널리즘은 특정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역사적 의미, 파장, 이면을 고찰하고 설명하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기사이다. 최근 SNS 등을 통해 실시간 보도가 확대되면서 기자의 사실 보도가 갖는 매력이 감소하고 있다. 보도 자체가 ‘오픈 소스화’ 되어 있기 때문에 맥락을 짚어주는 언론이 중요해진 것이다. 단순히 피상적 정보를 던져주기 보다 심층적 맥락을 독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맥락 저널리즘의 핵심이다.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는 ‘한국 언론사에서 유일무이한 캐릭터’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저널리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 국면에서 정의로운 저널리즘에 대한 국민의 갈증을 해소시켰다. 모든 것들은 연결돼 있다는 생각과 함께 ‘심층 취재’, ‘앵커브리핑’, ‘팩트체크’, ‘비하인드 뉴스’와 같은 보도 방식을 통해 타 방송사가 잘 다루지 않는 이슈들을 파고들었다. 또한, 저널리즘의 이론과 현실을 절묘하게 조합해 진화를 이루어냈고 대중적 인기까지 거머쥐었다. 이제는 국민에게 의제를 씌우는 ‘아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 시대에서 소비되고 사라지는 이슈 가운데 끝까지 붙들고 갈 이슈를 추적하는 ‘아젠다 키핑(Agenda Keeping)’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에 발맞춰 ‘협업 저널리즘’도 등장했다. 협업 저널리즘은 뉴스 조직의 기능을 더욱 더 제한하고 시민 참여의 문을 더 열어놓는 방식을 일컫는다. 즉, 언론이 시민뿐만 아닌 다양한 분야의 파트너가 협업하여 팩트체킹(fact-checking)을 하는 것이다. 특히, SNS의 이용이 대중화되면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경향이 협업 저널리즘의 확산을 크게 도왔다. 일례로, 지난 2017년 프랑스에서 이슬람 무장 세력의 테러, 청년 실업률의 상승, 이민자에 대한 반감 등 사회·경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음모론이 많이 발생했던 적이 있다. 여기에 극우사이트들이 온라인에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프랑스어권 웹사이트에서는 거짓 정보가 난무했다. 이 때 협업 저널리즘의 일환인 ‘크로스체크(cross-check)’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총 37개의 언론사, 대학, 비영리기구, IT 분야 등 다양한 파트너가 합심하여 기사에 대한 진위를 판별했다. 이를 통해 미디어와 독자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고 보다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 윤리를 지키는 언론사

언론은 윤리에 대해서도 고찰했다. 언론인들은 언론윤리강령을 만들어 사회적 기능과 역할, 그리고 의무로서의 약속을 지켜왔다. 윤리적 선택과 결정을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론인 개개인의 양심과 상식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무엇이 윤리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인지에 대한 경계가 분명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언론의 보도 방식이 자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들은 알 권리를 빙자한 사생활 침해가 이루어지고 불확실한 정보에 대한 정정보도 미흡 등이 자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자살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윤리 의식이 한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자살보도에 대한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다. 자살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자살보도가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한국자살예방협회는 2004년 7월 29일(목)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정립했다. 현재 180여 개의 언론사가 자살보도에 대한 경각심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를 실천하고 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에는 크게 중요한 인물과 같은 공공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 아닌 경우에는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과 자살자의 이름, 사진, 장소 등 자살에 이르는 경위를 묘사하는 보도는 할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한 언론은 자살 현상에 대해 보도할 때 확실한 자료와 출처를 인용해야 하며 충분한 근거 없이 일반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처럼 윤리적 측면에서 언론의 역할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기자가 지식인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정의로웠고, 세상이 어두웠던 만큼 진실을 보도하려 애썼다. 이들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고 대중 역시 이에 대한 신의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이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세상엔 여전히 언론인으로서 양심과 사명을 위해 목숨마저 내걸며 진실을 쫓는 언론인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은 단지 때 묻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다. 종이 신문이 성행했던 과거부터, 인터넷 뉴스로 오기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진실’을 향한 움직임이다. 언론은 누군가의 편견을 바꿀 수도, 누군가에게 평생의 오명을 씌울 수도 있는 거대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그들의 한 글자, 한 마디는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한 사건을 취재함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더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접하는 대중은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며 때로는 날카로운 시선을, 또 열렬한 응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진실보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는 지금, 언론인 당신은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김나은 기자(smiles3124@mail.hongik.ac.kr)

김승혁 기자(adprkims45@mail.hongik.ac.kr)

조수연 기자(suyeon98@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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