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9.11 금 15:50
상단여백
HOME 기획 학술
건축이 자연을 대하는 자세(2) 
  • 유현준 (건축학부 교수)
  • 승인 2018.03.20 09:00
  • 댓글 0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옹벽과 동

이 같은 옹벽은 도시미관 적으로 큰 공해이다. 건축에서 벽은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의 공간이었다가 벽이 서게 되면 둘로 나누어지게 된다. 옹벽도 벽이기 때문에 지역의 단절을 의미한다. 작은 계단으로 연결이 되어있던 달동네의 공간은 넓은 지역이더라도 자연스럽게 바로 옆의 지역과 연속적으로 연결이 된다. 사람사이에 벽이 없이 오갈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커뮤니티형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 동별로 옹벽이 나누어져 있다. 이들은 전체의 커뮤니티라기보다는 동으로 나누어진 사회이다. 주소 역시 연속된 번지수가 아니라 앞에 커다란 범주인 “oo동”으로 구획된다. 아파트 단지 이름이 다르면 다른 커뮤니티가 되고, 그 안에서도 옹벽으로 또 나누어지고, 그 아래에는 동으로 나누어진다. 같은 동은 같은 평형대가 구성이 되기 때문에 집의 크기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더욱 사람간의 보이지 않는 벽이 형성이 된다. 

  경사대지와 아파트가 만나서 만들어진 옹벽은 사람들 간의 단절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땅의 모양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사람들 간의 관계도 바꾸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자연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하는 이유이다. 계단으로 연결된 달동네에 사는 것과 옹벽으로 나누어진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것은 보기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과연 편한 주차장을 얻기 위해서 잃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한다. 

 

한국의 정자

우리나라의 전통건축에서 나타는 기법을 지금 현대의 건축과 도시에 적용을 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도시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선배건축가들의 특강을 들으면 전통가옥인 “독락당”을 언급하면서 지금의 아파트위주의 주거를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거를 모두 독락당처럼 지었다가는 아마 한반도에 농사를 지을 땅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전통건축의 기법을 단순하게 찬양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건축에서 배우고 적용할 점을 찾아내는 것은 필요한 작업이다. 

  우리나라의 정자건축을 보면 자연을 대하는 성숙한 건축의 모습이 보인다. 뭐 대단히 우아한 건축인 것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정자는 선비들이 지은 수백 년 전의 클럽이다. 정자에서는 시를 짓고, 기생들과 술을 마시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룸살롱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지금의 부자들은 지하실에서 비싼 돈을 내고 술을 마시지만 옛 양반 선조들은 풍경 좋은 곳에서 마셨으니 그들의 삶이 훨씬 더 낫다고 봐야할 것 같다. 

  옛 사람들은 도를 닦았다. 도를 닦는 방식은 문화별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서 일본은 차를 마시는 것을 다도라고 부르고 좁은 방에 앉아서 뜨거운 물을 따르는 방식부터 찻잔을 몇 번을 돌려서 입에 가져가야하는지 엄청나게 복잡한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일본에게 복잡한 매뉴얼은 도를 닦는 방식이다. 일본이 지금까지도 매뉴얼 국가로 불리는 전통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얼마 전에 쓰나미로 원자력 발전소가 타격을 받았을 때에도 매뉴얼에 없어서 대처를 못했다고 하지 않던가. 이처럼 일본은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러한 문화의 장점은 찬란한 문화를 후대로 계승을 하기 쉽다는 점이다. 훌륭한 건물을 짓는 것도 이러 저러한 매뉴얼이 있어서 위대한 대목이나 장인이 세상을 떠나도 후대에도 훌륭한 건축물을 지을 수 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임기응변에 강한 국가이다. 석가래 만 보아도 일본은 정확하게 다듬어진 것만 사용하지만 우리는 나무 모양 그대로 휘어진 상태로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신사를 20년에 한 번씩 새로 짓고 예전 것은 없애는 형식을 취한다. 이때 신사의 기둥을 만들 때 사용하는 기둥은 북동쪽 기둥은 북동풍을 많이 받는 나무로 쓰고, 남서쪽 기둥은 남서풍을 많이 받은 나무를 목재로 사용해서 기둥을 만든다. 그 이유는 목재가 변형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철저한 매뉴얼이 갖추어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나무가 휜 것은 휘대로 사용한다. 재미난 것은 일본은 이 같은 자연스러움을 자신들이 하는 극도의 매뉴얼보다도 더 높은 경지로 본다는 것이다. 과거 일본 사무라이들에게 주는 하사품으로 최고의 것은 조선 도공이 만든 찌그러진 찻잔이었다. 임진왜란 때 피랍된 조선의 도공들이 만든 우리의 마을 장터에서 쓰는 듯한 막 만들어진 찻잔이 일본인의 눈에는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다. 마치 모더니즘의 끝자락에 사는 우리가 프랭크 게리의 찌그러진 건물에 열광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일본인들이 매뉴얼로 도에 이르려고 했다면 우리는 예를 통해서 도에 이르려고 했다. 서예, 시, 그림, 음악 등을 통해서 도를 닦는 수준이었다. 이런 예술을 하기 위해서 선비는 자연 속에 위치해야했다. 자연에 둘러싸여서 있음으로 해서 영감을 얻고 창작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정자건축은 이 같은 기능을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술을 마시는 룸살롱과는 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우리나라의 건축은 기둥중심의 건축이다. 나무라는 재료를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벽 보다는 기둥 중심의 구조이다. 특히나 정자는 주변의 경관을 즐기기 위한 공간이어서 더욱 개방감이 중요한 건축이다. 따라서 벽이 없고 모두 기둥으로 되어있다. 기둥으로 건축을 하게 되면 좋은 점은 땅에 접지하는 지점이 최소화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땅의 모양을 바꾸지 않고 대신 기둥의 길이를 조절한다. 나무 기둥이 땅에 닿는 곳에는 주춧돌을 놓아서 기둥뿌리가 썩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자연과 땅이 만나는 중간의 매개체 역할을 돌이 해준다. 지금처럼 기둥이 땅을 뚫고 박히는 것이 아니라 땅에 살포시 내려앉았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이처럼 정자는 그 기능부터가 자연과의 교류를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고, 건축적인 구법 역시 그에 걸맞게 자연을 존중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정자 건축은 전반적으로 도가의 무위자연에 영향을 받아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자세를 견지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필요에 의해서 자연을 정복하자는 서양식 사고방식에 근거에서 만들어진 사회이다. 그런 사회는 “우리는 불도저를 가지고 있으니 땅의 모양을 바꿀 수 있다.”는 사회이고 건축은 그것에 맞추어서 발전해왔다. 어찌 보면 둘은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대하고 있는데, 21세기에 들어서 환경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을 정복하자는 사고가 한계가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다. 물론 아직까지의 세계경제는 자연을 소비하는 방식이 기초로 받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삶의 방식으로 곧 100억 명이나 될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과연 낙관주의자들의 예상처럼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서 지금의 에너지를 마구 소비하는 형식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무위자연 같은 종류의 철학적 사조가 시대를 지배하여서 라이프 스타일을 되돌려 놓을지 어느 것이 먼저일 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할 문제이다.

유현준 (건축학부 교수)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