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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마시면서 배우는’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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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22년간 대체로 무난한 삶을 살아 왔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도 평탄하게 했고, 종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 것 외에는 학교생활도 그저 무난했다. 그런 기자는 대학에 와서 술을 마시고 술게임 을 하며 그야말로 문화충격을 받았다. 술게임을 하다 박자를 놓친 기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가차 없는 소주 세례와 ‘마시면서 배우는 술게임’이라는 외침이었다. 술을 마시면서 배우는 술게임이라니, 조금의 자비도 없는 술자리 분위기는 무난하고 평온했던 기자의 삶에 마치 작은 돌멩이를 던진듯한 충격이었다. 

  혼나면서 배우는 건 술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과연 신문사는 혼나면서 배운 다는 표현이 딱 맞는 공간이다. 기자는 2017년 겨울 홍대신문사에 수습기자로 들어왔다. 홍대신문의 지면을 빌린 김에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입학 정원이 3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과에서 굳이 무리가 만들어지며 서로 대립관계가 되는 분위기가 싫었다. 그렇게 과에 갇혀 과내 인연에만 얽매이기 싫어 선택한 곳이 신문사였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현장 사진을 촬영하고 인터뷰를 하는 기자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신비하고 고상한 신문사의 모습을 기대했다. 글 쓰는 것은 자신이 있었으니 신문사도 지금까지 그랬듯, 무난하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S동 211호를 썼던 다른 동기 기자들의 증언처럼, 신문사는 지금까지 기자의 삶처럼 무난한 곳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매주 금요일 토요일을 요란스럽게 보내야 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또한 수습기간이 짧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오직 기자의 불찰로 인한 실수도 많이 저질렀고, 혼도 많이 났다. 하나의 탄탄한 시스템이 기자 한 사람의 실수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많이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평생 글 쓰는 것만을 자부심으로 삼고 살아왔던 기자의 원고가 반 이상이 빨간 줄로 그어져 돌아올 때면 마음에 빨간 생채기가 그어진 것처럼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한창 신문사에 적응하던 시기에는 사소한 피드백 하나에도 전전긍긍하며 ‘나는 글 쓰는 일에 소질이 없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며 기나긴 밤을 보내곤 했었다.

  겨울방학 중 훈련기간을 거쳐 준기자가 된 지금, 기자는 막 입학한 신입생부터 졸업 후 취업한 선배까지 만나고 아주 사소한 사건부터 크고 무거운 사건들까지 다루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자의 마음은 많이 성장했으며 겸손해졌음을 느낀다. 기자의 첫 보도 기사의 사수를 맡았던 선배는 지면에 ‘이산희 기자’라고 찍힌 것을 보여주며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그때는 끝없는 피드백에 지쳐 드디어 최종본이 나왔구나, 하며 안도감만 느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각종 단과대학의 회장님들과 학교 주요 인사 분 들을 만나며 ‘이산희 기자님’으로 불리는 지금, ‘기자’라는 이름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며 그 책임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과 동기들이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산희 기자, 이거 기사로 좀 써 줘.”라고 말할 때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지면으로 전달해주는 신문은 학교와 학생의 징검다리 같은 존재임을 새삼 깨닫는다.

  수업 중간의 공강 시간마다 인터뷰를 하러 다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한 끼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신문사는 시련을 마시면서 배우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성장통이 없었다면 기자는 아직도 우물 안에 갇혀 한 치 앞밖에 내다 볼 수 없는 개구리로 살았을 것이다. 시련을 마시면서 배우는 신문사, 소주처럼 쓰고 독하지만 신문사는 훗날 기자 삶의 전환점으로, S동 211호는 기자를 성장하게 하고 기자의 인생을 빛나게 한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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