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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은 극복으로, 한강의 『여수의 사랑』(1995)여수는 아픔이자, 외로움이고, 그리움이다

떠나는 길이 익숙하지 않았다. 모처럼만에 서울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 노곤하게 느껴졌다. 따뜻해진 3월이었지만 새벽바람은 여전히 날 서 있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오전 6시 30분, 이른 새벽시간에도 용산 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등산복을 입은 이들은 여행 생각에 상기된 모습이었으나, 정장을 입은 이들은 왠지 모르게 초조한 모습이었다. 기자는 그 누구에도 속하지 않은 채, 여수행 열차에 올랐다. “여수 엑스포역으로 가는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승객 여러분은 …”

정선도 그랬다. 여수로 내려가는 것은 일종의 정리였다. 오래된 기억의 정리. 자취방에 함께 있던 자흔이 떠나고 난 후에 그녀가 키우던 금붕어는 죽었고, 정선은 죽은 금붕어들을 비닐봉지에 쌓아 쓰레기통에 던져놓았다. 자흔을 만나기 전 자취방을 함께 쓰던 이들은 정선의 결벽증을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처음 만난 자흔은 호감을 느꼈다. 자흔은 어린아이처럼 행동했다. 정선은 조심성이라곤 없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방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흔은 그런 정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행동에 개의치 않았다.

여수 엑스포 역정선도 이제 서울을 떠나, 여수에 도착한다. "여수, 마침내 그곳의 승강장에 내려서자 바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쳤다." 정선은 역에 내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어요.”

 

무엇 때문이었을까, 자흔은 문득 정선에게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자흔에게 여수란 그리움의 장소이다. 어린 시절부터 양어머니를 따라 이사를 반복하던 그녀는 여수가 고향이라고 했다. 반면, 정선에게 여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 그런 정선에게 자흔은 여수에 대해 묻는다. 그러했던 정선이 갑작스레 여수행 티켓을 끊고, 여수로 내려갈 때 그녀는 열차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오래 전 여수에서의 삶과 현재 서울에서 겪는 고단한 삶을 떠올렸다.

 

“바로 거기가 내 고향이었던 거예요. 그때까지 나한테는 모든 곳이 낯선 곳이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가깝고 먼 모든 산과 바다가 내 고향하고 살을 맞대고 있는 거예요.”

“여수항의 밤 불빛을 봤어요? 오동도에 가봤어요?(중략…)”

“여수, 그 앞 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 안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손목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열차가 종착역인 여수에 닿으려면 앞으로도 세 시간 가까이 더 가야 했다. 이른 시간 열차에 오른 탓인지, 기자의 눈꺼풀은 무거워졌으나 머리에 가득 찬 생각들로 잠들기 어려웠다. 트라우마라고 한다. 어떤 일 또는 사건을 겪은 뒤 그와 관련된 단어나 행동을 볼 때, 이전과 같은 반응 상태를 보이는 것을.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일종의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그런 트라우마가 머리에 가득 차있었다. 정선도 그러했을까. 그렇다면 왜 그녀는 여수로 가기로 한 것이었을까.

 

“열차는 삼 분간 정차했던 구례구(求禮區) 역을 떠나고 있었다. 섬진강의 드넓고 짙푸른 물살은 검은 빗발을 타고 올라가 검푸른 하늘에ᄁᆞ지 아득하게 잇닿아 있었다.”

 

여름이었다. 정선은 사물의 썩어가는 냄새를 맡았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악취는 그녀의 결벽증을 더욱 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흔에게서 여수항의 짠 바다 냄새까지 맡은 그녀는 토를 멈추지 못한다. 그날 이후 정선은 자흔을 피한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정선의 결벽증은 점차 나아졌지만, 자흔을 떠올릴 때면 여수가 생각나 괴로워했다. 자흔의 마음속 멍울은 더욱 옹골차게 맺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선은 아버지를 떠올린다. 술에 젖은 아버지는 그녀의 동생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정선마저 물살 속으로 던져버렸을 때, 바다의 짠물은 그녀의 눈과 코, 입에 정신없이 들이닥쳤다. 트라우마였다. 오래전 떠난 여수를 다시 찾지 않은 이유는 여수가 그녀에게는 잔인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정선은 자흔의 눈과 부딪힌다.

 

“……당신 때문이야……”

“뭐가 그렇게 두려워요?” “나, 내일 떠날 거예요.”

“…어째서?”

“염소 울음소리, 새소리, 바람, 두엄 냄새, 일하는 아낙네들…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낯익은 것이 없었는데도 마치 내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품속에 돌아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자흔은 정선이 깊이 잠든 사이 자취방을 떠났다. 정선도 이제 서울을 떠나, 여수에 도착한다.

 

“여수, 마침내 그곳의 승강장에 내려서자 바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쳤다. 무겁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은 눈부신 얼음 조각 같은 빗발들을 내 악문 입술을 향해 내리꽂았다. 키득키득, 한옥식 역사의 검푸른 기와지붕 위로 자흔의 아련한 웃음소리가 폭우와 함께 넘쳐흐르고 있었다.”

 

기자는 이제 하차를 준비해야 했다. 출발한 지 5시간 만이었다. 작품 속 여수가 비바람치는 곳으로 묘사된 것과 달리 3월의 여수는 따뜻했다. 울렁이는 감정과 달리 바다는 잠잠했다. 사라들은 용산 역처럼 북적거렸지만, 모습은 한껏 평화로워 보였다. 문득 ‘그곳에 가 내 외로운 운명이 찬란하게 끝날 것’이라는 자흔의 말이 떠올랐다. 열차에서 생각했던 것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작품에서 여수는 구체적으로 묘사되기보다 정선과 자흔 두 사람에게 기억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한 명에게는 자신을 안아 준 고향이었지만, 다른 한 명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향이었다. 기자는 그들이 느꼈을 여수를 생각하며 정처 없이 거닐었다.

소설은 정선이 여수에 내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여수 역에서 내리는 정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가는 작품을 쓰고 난 뒤 말했다. “일렁이는 하늘, 우짖는 새, 멀리 기차 바퀴 소리, 정수리 위로 춤추는 젖은 수초들을.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어머니인 인간 세상에서 갚기 힘든 빚이 있다.” 그것이 작가가 작품의 제목을 여수의 사랑으로 지은 까닭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사랑은 누군가에게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갚기 힘든 빚이었을 테니깐 말이다.

그렇게 여수항과 오동도를 돌아다닌 후, 저녁이 돼서야 기자는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 정선도 다시 서울로 올라갔을 테다. 그녀가 여수로 내려갔던 것은 트라우마에 대한 극복이자, 자흔을 그리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둑해지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기자는 소설 속 한 문장을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어디로 가든, 난 그곳으로 가는 거예요.”

 

김민우 기자  kimsioa@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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