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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권력과 억압이 사라진 대학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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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안팎에서 들려오는 충격적인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변화로 이행하는 한 복판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 우리는 지금 민족이나 계급이나 계층이 문제시되던 시대를 지나 젠더가 가장 중요한 담론으로 떠오르는 시대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학이 학문이나 지식전달을 매개로 한 공동체라는 사실만큼은 시대가 변해간다고 하더라도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의 학문이 사회가 구성한 담론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을 감안한다면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는 대학의, 대학의 구성원들이 새롭게 구성해야할 관계의 윤리학이 정립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조선이래로 내려온 유교적인 전통에 기반한 가부장제의 가족 제도를 지금껏 유지해왔다. 지금에야 경멸의 뉘앙스밖에 남지 않은 ‘가부장제’는 사실 가족의 보호나 재정적인 뒷받침을 가부장에게 일임하는, 주로 물리적인 노동력에 기반한 농경사회에서 선택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가족 제도였다. 가족의 보호자라는 가부장의 위치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가 그 권위를 구성해왔고 이는 때로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귀결하거나, 때로는 ‘가정 내의 상징적인 폭력의 용인’이라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다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가부장에게 가족의 보호나 온전한 재정의 지원을 의탁하기 힘든 사회로 사회의 구조가 점차 변모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리적 노동력 중심의 사회 구조가 재편되면서 가족 구성원의 사회 활동이 증가하고, 예전에는 밖에서 돈을 버는 남편에 대한 ‘뒷바라지’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던 가사 노동이 선택의 대상이 되면서 가부장 1인에게 가족을 보호할 의무와 권위를 부여했던 과거의 가족 모델은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지금까지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와 목소리가 사회에서 동등하게 퍼져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가부장제의 붕괴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특히 대학 내에서 사회의 각 부분에서 억압받고 상처받은 목소리들이 울려 나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대학은 앞으로의 사회 변화를 예민하게 인지하고 예측하는 학문의 매개이지, 낡은 권력 관계를 재현하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아직 우리가 가부장제의 몰락에서 비롯된 시대의 변동으로부터 새로운 관계의 윤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지금 이 문제가 남녀 간의 권력 다툼처럼 간주되는 것은 아직 우리가 새로운 젠더의 윤리를 정립할 만한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못했다는 의미와 같다. 물론 그러한 새로운 윤리가 과거의 다른 윤리와 마찬가지로 확정적인 형태로 정립될 것인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식과 학문을 매개로한 자유로운 학술의 공동체인 대학이 이 문제에 가장 예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인간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사회 내에 존재하는 관계 속에서의 미소한 폭력과 억압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속한 집단의 우월함을 다투기보다 올바른 성 평등 혹은 관계의 윤리에 대한 논의를 공론 영역 속에 끌어오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학은 바로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서 논의의 시작 지점이 될 수 있고 혹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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