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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에는 자로, 우리 사회와 정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부르짖음, 인면수심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좀도둑에겐 한없이 엄격하지만, 사회 유력자들에겐 한없이 자혜로운 법. 우리 사회에선 꾸준히, 이런 탄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곤 한다. 이런 와중에 셰익스피어의 극 <자에는 자로>라는 작품과 몇몇 대사가, 나에게 법이, 그리고 법의 적용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 사회의 법이 사람에 따라 곧았다가 굽었다가 하지 않은가? 나는 <자에는 자로>라는 작품의 대사를 소개하며, 지금까지의 법의 적용됨이 문제가 있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법과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식을 귀여워하는 아비가 위협하기 위해 쓸 회초리를 마련해 놓고도 그저 겁만 주려고 자식들에게 내보이기만 할 뿐 사용하지 않으면, 머잖아 그 회초리를 무서워하지 않고 우습게 여기게 되듯이, 그 나라의 법령도 집행력을 갖지 못하면,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어, 방탕한 자들이 정의를 비웃게 될 것이오. 어린것이 유모를 두들겨 패고, 예의범절도 뒤죽박죽이 될 것이오.” 법의 엄격한 적용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남이가!’처럼 인정(人情)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와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형벌의 남용만큼 무서운 것이 용서와 관용의 남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비리와 특혜가 바로 그러한 것들의 축적물이 아닐까. 법이 불법에 대하여 회초리를 들지 않는다면, 법을 지키는 것이 바보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하기 두렵다.

  “자비롭게만 보이는 자비는 참다운 자비가 아닌 경우가 흔히 있고, 용서는 항상 제2의 화근을 기르는 온상이 되는 법이지요.” 엄격한 적용과 함께 필요한 것이 적절한 자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이 과연 참다운 자비를 베풀고 있는가? 혹여 나쁜 마음을 먹는 것을 독려하고 있지는 않은가?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얼마 전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36억의 뇌물공여 사실을 인정하였고 2년 6월의 징역형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권고형의 범위는 2년에서 5년 2월이라고 판시하고 있지만, 법원은 36억 원의 뇌물공여자에게 자비를 베풀어 감옥 밖 자유를 선물했다고 할 수 있다.

  누구는 평생 일해도 모을 수 없는 돈을,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경영자가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로 금품을 제공하고 권력과 결탁하는 위법을 저질렀는데, 법은 내릴 수 있는 형 중 가장 가벼운 축의 형을 내렸다. 많은 국민이 이 판결이 정의로웠다고 생각하였을까? 법은 감정적이어선 안된다. 그러나 법이 감정의 세상과 유리되어 국민의 법감정과는 괴리된 재판이 이어지면 곤란하다. 판결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었는가? 법이 국민에게 ‘정직하게 살아 굶어 죽기보단 비리를 저질러 배불리 먹고사는 것이 나아. 걸리지만 않는다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걸!’ 이란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권력을 가진 분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잘못을 저질러도, 그 악행을 교묘히 덮을 치료약 같은 걸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부러진 화살>, <변호인> 등 법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드러나는 법의 많은 모습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이 아닌가. 과연 이것이 정의로운가? 맡은 책임과 권력이 클수록 더 엄격해야 하는 것이 법이다. 4백 년 전 소설 속이나 21세기 현실이나 비슷한 부르짖음이 바뀌지 않고 이어진다. 권력과 결탁한 부정은 선으로 둔갑하고, 힘없는 선은 한순간 부정함으로 돌변하는 것, 그것이 바뀌지 않고 수백 년간 우리 사회의 정의와 신뢰를 흔들고 있다.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큰 자비를 베푸는 것이오. 그런 죄를 용서하면, 훗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게 될 것인즉, 한 사람의 죄를 엄히 다스림으로써, 또 다른 사람이 그 같은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려던 것이오.” 따듯한 사람 간의 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는 다소 비교되고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대사이다. 하지만, 그 따스한 정(情)이 정의(定義)보다 우선하는 순간, 그 따뜻함은 우리 사회에 서서히 화상을 입힌다. 이미 화상 입은 사회에 약간의 차가움이 필요한 때인 것은 아닐까. “제 식구 감싸기다, 모 기업 법무팀에 들어가기 위한 판사의 아부다.” 이런 자조 섞인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죄에 대해서는 응당한 대가를 치르는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 선하게 살면 바보 되는 것이 아닌 사회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정의감 실천이 이런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400년 전의 희곡 <자에는 자로>가 다시 우리에게 외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바꿀 수 있다고.

 

허준영(법학2)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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