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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혐오의 시대가 도래하다우린 언제까지 혐오발언에 둔감할 것인가, 혐오사회를 바꾸는 ‘예민함’의 힘

 

바야흐로 '혐오사회'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각종 혐오표현들로 인해 병들어 있다. 이러한 혐오표현은 정보가 빠르게 퍼져나가는 SNS를 통해 더욱 심화되었으며 익명의 힘을 빌린 커뮤니티 등을 통해 여과 없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혐오표현들은 특정 개인을 넘어서 불특정 다수에게 상처를 남겼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오늘도 '혐오'에 점점 무뎌져가고 있다. 때로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때로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그리고 전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우리 사회 곳곳에 감추어져 있던 '혐오'가 공공연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상 속에 퍼진 '혐오'

'혐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대상을 '매우 싫어하고 미워한다'이다. 의미만 보아도 섬뜩한 이 단어는 어느새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정치 공간, 온라인 공간, 종교적 공간 등에서 혐오선동을 주도하는 일부 집단만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2011년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가 등장하면서 그 사용자들이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내 충격을 안겼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을 비롯해 특정 지역출신을 비하하고 가부장적 남성성 지위의 붕괴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는 혐오표현들이 커뮤니티를 근거로 퍼져나갔다. 그 후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이 '혐오범죄의 형태'라는 분석으로 드러나면서 혐오는 점차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었다. 최근에는 혐오표현이 여성혐오를 넘어서 남성혐오로 확산되는 등 이분법적 대립의 형태로 확산되어 위험수위에 다다른 상태이다. 또한 미디어 역시 혐오에서 자유롭지 않다. 

영화 '청년경찰' 속 개포동 출처 : 네이버 영화

최근 영화 <브이아이피(V.I.P.)>(2017)는 여성들의 배역 이름을 '여자시체'로 설정하고 여성이 강간·살해당하는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여성혐오논란을 낳았다. 이외에도 미디어 속 폭력의 대상은 대부분 '연약한 여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이미지를 정형화시킨다는 비판이 일었다. <청년경찰(Midnight Runners)>(2017)' 또한 중국동포에 대한 혐오논란에 휩싸였다.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 중국동포 밀집 거주 지역을 우범지대로 보이게 하며 중국동포들을 범죄 집단으로 묘사해 중국동포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화했다는 비난이 제기된 것이다. 더불어, '혐오'에서 비롯된 혐오표현의 일종인 비속어 역시 우리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된다. 속물적 특성을 가진 한국 여성이라는 뜻의 '김치녀'를 비롯해 한국 남성 전체를 비하하는 속어 '한남충', 그 외에도 '급식충', '설명충', '진지충' 등이 사용되고 있다. 현재 SNS 해시태그에 등록된 '극혐'이라는 단어는 무려 8만 5천 개 이상 검색된다. '극혐'은 '혐오하다'라는 말에 '어떤 정도가 더할 수 없을 만큼 막다른 지경'이라는 의미의 접미사가 더해져 '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증오의 개념과 견줄 정도의 싫음을 나타내는 용어지만, 그 뜻을 넘어서 현재 우리 일상 속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각종 혐오표현들은 단순히 싫음을 표현하려는 의도보단 일상적인 재미로 쓰이면서 누구에게나 익숙한 일종의 '공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불평등이 낳은 혐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혐오표현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만 15~59세인 성적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그리고 그 외의 여성 등의 표적 집단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성 소수자는 98.0%, 장애인 응답자 95.0%, 여성 응답자 90.4%, 이주민
응답자는 50.0%로 집단 대다수가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혐오는 주로 사회적 소수자를 겨냥하고 있다. 여성,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혐오로 이어진 것이다. 많은 사회학자들은 '마이너리티'에 속한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멸시하거나, 배제하고 차별하면서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행위자체를 '혐오'라고 규정하고 있다. 소수자들을 배척하는 말과 행동으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혐오표현은 세계 각국에서 역사적으로 문제시되어 왔다. 유럽에서는 유태인에 대한 나치의 혐오로 비롯된 학살과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을 초래하기도 하였고, 미국에서는 흑인 및 유색인종을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겼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무분별한 혐오표현의 사용을 규제할 법안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혐오표현 규제논리가 오히려 해당 구성원들에게 피해자 의식을 갖게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는 '모럴 패닉(Moral panic)'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모럴 패닉'은 보수집단들이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제에 대해 표현하는 강렬한 감정이다. 보수권력 집단은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흔들릴 때 불안감을 느끼며 그에 반하는 소수자 집단이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여기는 것이다.

 

 

본교 총학생회 인권연대국에 '혐오'를 묻다

혐오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 또한 물들이고 있다. 작년 11월 14일(화)에는 본교 비공식 온라인 커뮤니티인 페이스북 페이지 '홍익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통해 단체 채팅방 및 실생활에서 이루어진 성희롱 실태를 폭로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가 보여주듯 학교 내에도 숨겨진 혐오들이 존재하고 있다. 학내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해 본교 총학생회 인권연대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성현(컴퓨터2) 학우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사진 캡션 :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혐오발언 캡쳐본


Q. '혐오' 또는 '혐오표현'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혐오' 또는 '혐오표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사전적 의미로 혐오(Hate)는 매우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혐오표현 (Hate speech)에서의 혐오는 이와 약간 다르다. 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정체성을 부정하며 차별하고 배제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혐오는 혐오표현을 통해 차별을 재생산하게 된다. 정확한 개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성혐오와 남성혐오의 예를 들겠다. 여성혐오는 혐오표현이다. 그렇지만 남성혐오는 혐오표현이 아니다. 여성은 소수자로서 차별받아온 과거와 현재가 있다. 또한 여성혐오표현을 통해 이러한 차별이 재생산될 우려가 있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 다수자로서 차별 받아온 과거뿐만 아니라 차별의 재생산 또한 없다.

 

Q.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혐오표현에 대해 지적하면 '이게 왜 혐오표현이냐' 혹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 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우리 모두가 그러한 발언에 대해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한번이라도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 있는가? 혐오표현으로 인한 당사자의 고통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 조금 더 불편함을 표현했으면 한다.

 

Q. '나는 싫어하는 걸 싫어한다고 말할 뿐이다' 또는 '혐오의 표현도 표현의 자유이다'등의 입장도 존재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가 혐오표현에 대해 적용되는 것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 표현의 자유는 말 그대로 개인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보장하는 기본권 중 하나다.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만 자유인 것이지, 다른사람에게 피해가 가면 그것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다. 누군가를 '살해'하는 것은 자유를 보장받아서는 안될, 규제가 필요한 문제인 것처럼 혐오표현 또한 마땅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혐오표현 역시 명백한 영혼의 살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Q. 학교 내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혐오가 존재하기도 한다. 학내에서 학우들이 혐오인지 모르지만 혐오가 될 수 있는 언행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A. 학교 내에는 우리가 모르는 혐오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많이 쓰이고 있지만 혐오인지 인지하기 어려운 언행들을 예로 들겠다. 먼저 욕설로 많이 쓰이는 '병신'이다. '병신'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그 기능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그러나 '병신'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신체적 결함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 사람을 넘어 하나의 욕설이 됐다. 따라서 '병신'이라는 단어는 장애인에 대한 비하와 희화화의 의미를 담고 있는 '혐오표현' 중의 하나이다. 장애인 혐오표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인지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또한 여성에게 '처녀성'을 강조하고 순결함과 불결함으로 여성을 이분화하며 발언하는 '처녀막'은 여성혐오표현의 일종이다. '처녀성' 자체와 성관계여부를 따지려는 것 또한 여성혐오적 관점이라 볼 수 있다. 혐오표현에는 다양한 수위가 존재한다. 높은 수위자체도 문제이지만 낮은 수위의 혐오표현들은 그 경계에서 인지가 고착화되기 쉬운 점을 적극적으로 경계해야한다.

 

Q. 학교라는 곳 또한 혐오표현의 청정지대라고 할 수 없다. 학내 곳곳에 숨은 혐오를 감소시키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 개개인이 혐오표현에 대해 인식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주위사람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가장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제와 교육이 필요하다. 이에 인권연대국에서는 △2019학년도 입학생부터 졸업필수요건으로 인권에 관한 교양을 지정요구 △교수 강의평가의 인권침해관련조항 추가 △성인권위원회의 안정화 △학생회 선본 대상으로 인권의제질문, 그에 대한 답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유 등을 학교에 요구하거나 학생회 측에서 개선하려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항들은 학교 측과 계속 논의 중이니 많은 관심을 바란다.

 

 

혐오사회에 익숙해진 우리, 혐오도 '표현의 자유'일까

혐오 발언을 향한 저항의 목소리가 필요한 때

이토록 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된 것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혐오에 대한 확산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 그러나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관대한 사회분위기와 더불어 심지어 관대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인식 또한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현할 자유가 있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혐오나 증오의 감정을 개인적인 사고의 한 측면으로 여기는 이들은 혐오표현의 규제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그들의 말대로 표현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지만 그 범위가 무한정일 수는 없다. 혐오발언은 단순히 경멸적인 표현이 아닌, 인종, 성별, 성 정체성 등 피해자 스스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부정하기 때문에 사회 일원으로서의 평등함을 해친다. 또 이것이 일회성 표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에 대한 실질적인 편견과 사회적 폭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사회 갈등의 초석을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혐오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집단적 차원으로 형성되면 통제력을 상실한 집단적 광기와 폭력, 복수 등의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 이에 독일 등 일부 선진국가에서는 이미 혐오표현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혐오표현에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적으로 혐오표현에 맞서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이들에게 '프로불편러' 혹은 '예민보스'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한다. 그렇기에 혐오표현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혹여 '프로불편러''예민보스'라는 수식어가 붙을까 마음속 불편함을 억누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를 불러온 미투운동의 결과가 입증하듯 우리 사회 속 폭력과 불평등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나친 혐오표현을 묵인하게 된다면 우리사회는 혐오로 말미암은 수많은 억압과 폭력들이 계속해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혐오발언에 대한 저항발언은 한 개인이 개별적으로 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외롭고 공허한 외침으로 전락되기 쉽다. 그러므로 혐오에 저항하는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세계인권선언의 제1조 조문의 일부에서도 볼 수 있듯 세계적으로 법과 질서뿐 아니라 도덕적 소양을 중시하는 이유는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을 이끌기 위함이다. 혐오는 행복에 명백히 반(反)하는 단어이다. 잘못에 대한 비판은 마땅히 사회를 성장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지만 그 이상의 도를 넘은 비난과 혐오는 계층간의 갈등과 차별을 형성할뿐이다. 누구나 사용하기에 무심코 혐오표현들을 뱉어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발언을 되돌아보고 혐오에 무뎌진 고요한 사회 속 침묵을 깨뜨려야 할 것이다.

 

김보문 기자(qhans0211@mail.hongik.ac.kr)

김은성 기자(ppicabong@mail.hongik.ac.kr)

금민주 기자(snm05136@mail.hongik.ac.kr)

이남주 기자(skawn1791@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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