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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원(시각디자인07) 동문친숙한 소재로 절대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작가

영화 <매트릭스>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마치 그것이 현실인 양 여기며 살아간다. 이렇듯 시뮬라크르가 원본을 압도하는 것을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라 하는데, 이는 더 이상 영화 속에서만 등장하는 암울한 소재가 아니라 지금 이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정중원 동문은 하이퍼리얼리즘을 통해 감상자에게 원본과 복제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절대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진짜같이 그린 그림’이라는 게시글로 인터넷에 떠도는 작품과 여러 번의 방송 출연으로 친숙해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중원(시각디자인07) 동문

Q.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이퍼리얼리즘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줄 수 있는가?

A. 사실 장르를 하나로 규정하는게 어려운데, 어쩌다보니 그런 작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우리나라 말로는 극사실주의로, 사진처럼 똑같이 그려 사진인지 그림인지 눈속임을 하는 그림을 뜻한다. 이 개념은 하이퍼리얼리티에서 나왔는데, 이건 사회학에서 먼저 사용된 용어이다. 70년대에 장 보들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가 사용한 하이퍼리얼리티는 쉽게 말해 가짜로 이루어진 사회인데, 가짜가 단순히 가짜가 아니라 원본과 똑같아서 원본과 구분을 할 수 없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가상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영화 <매트릭스>를 생각하면 된다. 여태까지의 가상세계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가상을 경험하는 사람이 실제와 가상을 구분할 수 있었지만, 하이퍼리얼리티의 경험자는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또 구분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사진이미지를 그대로 베끼기 때문에 포토리얼리즘이라고도 불린다. 사진을 찍은 후 확대해 캔버스에 옮기는데 이는 원본보다도 진짜 같다. 초상화는 대상인물의 사진을 본 다음 초상화를 보고 닮았다고 하는데,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은 그 순서가 뒤바뀌어 그림을 바라보고 “너 얼굴에 흉터 있었어?” 라며 원본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사람들은 하이퍼리얼리즘에 대해 “카메라가 있는데 왜 이렇게 그려?”라고 묻는다. 그 질문을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질문의 화살표를 돌려서 우리 일상에, 우리 삶에 적용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원본과 복제의 관계가 분명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철학, 사고, 가치 등이 과연 내 고유의 것일까 생각해보면 아닌 경우가 많다. 남이 이야기해준 걸 내 생각, 내 가치로 환원해서 사는 사람이 많다. 만약 이 그림을 보고 원본과 복제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봤다면 좀 더 넒은 범위에 똑같은 질문을 던져봤으면 좋겠다.

Q. 강연에서 허상이 구조화된 권력을 만났을 때 개인을 구속하고 폭력을 행하므로 이를 경계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인가?

A. 이는 보는 사람의 몫이다. 나는 가상과 현실이 무너져 내려가는 것, 전통적인 원본과 복제의 위계가 무너져 내리는 걸 좋아한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하는 건 이 무너져내려간다는 사실을 알고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원본과 복제의 관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전통적인 위계가 무너지는 것이고 절대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위계나 진리 등이 다 상대적이고 우리가 어떻게 사유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서 “이건 가상의 대상을 굉장히 실제처럼 그려낸 건데 진짜인줄 착각하셨죠?”라며 물음을 던지고, 여태까지 실제성이라 여기던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하이퍼리얼리티라는 것이 진취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놀이터가 될 수 있지만, 그런 것 없이 무조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허상으로 이루어진 감옥이 되어버린다. 그나마 일반적인 감옥은 우리가 갇혀있다는 걸 인지하지만 이러한 감옥은 우리가 갇혀있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것들을 ‘보고 즐깁시다’라는 것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어떻게 악용될 수 있고, 어떤 식으로 개인의 삶을 억압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Q. 작업을 할 때 아크릴 물감을 주로 사용한다. 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가?

A. 아크릴은 화가가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재료 중 제일 젊은 재료이다. 플라스틱 산업의 부산물로, 기름이 아니라 물에 풀어쓰는 수용성 물감이되 유화의 불편함을 개선하면서도 유화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재료이다. 이게 원본과 복제의 관계로 봤을 때, 아크릴은 재료학적으로 유화의 복제, 즉 ‘짝퉁’으로 등장했다. 물론 유화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아류로 등장한 아크릴은 유화만큼 널리 쓰이고 유화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한다. 유화는 재료 자체의 배타성이 존재해 제한되는 게 많지만, 아크릴은 자유분방하다. 이처럼 원본과 복제의 위계를 뛰어넘는 재료적 특성을 지닌 아크릴은 하이퍼리얼리즘과 유사한 면이 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울 때 나는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해 항상 수작업을 했다. 유화로 그리면 건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마감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아크릴을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아크릴에 손이 익으면서 지금은 오히려 유화보다 아크릴을 더 많이 사용한다. 또한 드로잉을 할 때는 목탄을 많이 쓰는데, 이는 우리가 사용하는 미술재료 중 제일 오래된 재료이다. 그래서 간혹 장난식으로 ‘나는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재료와 가장 젊은 재료를 같이 사용한다’라고 말하곤 한다.

Q. 대다수 작품의 소재는 인물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어렸을 때부터 인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 얼굴을 바라보는 건 우리가 다른 사물을 바라볼 때의 감정과 기분이 다르다. 우리가 사람얼굴만큼 매일 지겹게 보는 것도 없는데 볼 때마다 안 질린다. 똑같은 얼굴을 어떤 기분과 어느 장소에서 보느냐에 따라 또 다르다. 이런 점이 재밌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친구나 명사의 사진을 가지고 그렸지만, 이제는 가상과 실제를 가지고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원본이 없는 짝퉁을 만들어버리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러 석고상이나 회화 작품의 경우 어느 대상을 모델로 했을 텐데, 우리는 그가 어떻게 생겼을지 작품을 통해 이미지는 있지만 실제로 그를 본 적은 없다. 그 이미지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조건이 있다. 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형태가 어떻게든 남아있어야 한다. 또 그걸 상상으로만 그리면 그렇게 그린 티가 나기 때문에 진짜처럼 그리기 위해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찾아야한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를 그리고 있다. 이처럼 형상이 어떠한 형태로도 남아있고, 그와 비슷한 모델을 찾을 수 있고, 내가 관심 있는 인물과 같이 삼박자가 갖추어지면 제일 좋다.

Q. <페르소나>라는 작품이 있다. 그 개념이 갖는 의미를 생각했을 때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A. 페르소나는 ‘가면’이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나왔는데,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사람들이 그 상황에 맞는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있다고 보았다. 정신분석학에서는 페르소나와 자아가 따로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자아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럼 자아가 의미가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세상은 무대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결국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결국 무대 위다. 우리의 내면은 우리가 잘 연기하기 위해 거처 가는 공간이다. 분장실의 출구는 항상 무대 입구와 연결되어있다. 그렇다면 배우 연기가 무대를 벗어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듯, 사람은 사람을 떠나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페르소나와 내면의 자아를 완전히 구분해서 볼 게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것으로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자아가 환상일 수도 있고, 여러 개가 중첩된 페르소나가 자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의 내면이나 정신 이런 걸 따져보면 그 사람이 연출하고 싶은 가면인 것 같다. 아주 전통적인 이분법, 페르소나와 자아, 그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 이런 걸 흔들어버리고 싶다.

Q. 수많은 작품 중 <신격화된 셰익스피어>라는 작품이 기존의 작품 사이에서 눈에 띈다.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해달라.

A. 군 전역 후 복학 직전에 그린 그림이다. 나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복학을 앞두고 일러스트레이터로 내 정체성을 정해야할지, 순수미술가로 정해야할지 고민하며 그렸다. 나는 영상이 좋아서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진학했지만, 소질도 없었고 동기나 선배와 비교해봤을 때 그들만큼 할 자신도 없었다. 군대에서 진로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는데,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고 잘 하던게 그림인데 왜 다른 곳에서 한눈을 팔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좋아해서 군대에서 읽은 <에드워드 3세>를 마지막으로 6년에 걸쳐 그의 작품을 모두 읽었고, 이를 기념하고 싶었다. 휴가를 나왔을 때, 앵그르의 화집을 우연히 봤더니 <신격화된 호메로스>라는 작품이 있었다. 호메로스와 그에게 영감을 받은 사람들을 그린 작품을 보고 이를 패러디해 <신격화된 셰익스피어>를 그려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회화전에서 상도 받은 일종의 팬 아트이자 자기고백적인 그림이다.

Q. 어느 방송에서 “모든 사람은 예술품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는 개인의 주체성과 다양성을 존중해야한다는 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A. 모두가 예술작품이라는 이야기는 강력한 개인, 스스로 생각하자는 뜻이다. 생각을 가지고 자신에게 한번만 질문해보면 된다. ‘이게 정말 내 생각인가?’ 우리는 스스로 나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중에 내게 주어진 것이 많다. 이에 대해 질문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이게 맞는 거야!”라고 말했을 때 굉장히 기죽는 경우가 많다. 내 학력과 부유함에 상관없이 내가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 존엄한 개인이기 때문에 “왜요? 그게 아닌 것 같은데?”라고 한번만 더 질문을 해보자는 것이다. 남들의 이야기나 사회적인 통념에 비판하는 것에 대해 거침이 없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게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철학을 규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상처를 덜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을 드러냄에 있어 거리낌 없는 태도를 가진 강력한 개인들이 모인 사회가 훨씬 더 건강한 사회이다. 우르르 몰려가는 분위기가 아니라 시끄러운 분위기가 있는 사회, 이런 사회가 훨씬 더 다양한 개인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 굳게 생각한다. 또한 SNS에 글을 많이 올리는 편인데 이 역시 ‘내 이야기가 맞으니 내 이야기를 들으세요’가 아니라 ‘여러분도 같이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해봐요’라는 제안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재환 기자  (jhl0601@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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