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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적게 보고 가족 간 대화를 많이 하는 집 만들기(2)
  • 유현준 (건축학부 교수)
  • 승인 2018.04.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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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거실과 골목길

도로와 거리는 어떻게 다른가? 얼핏 보면 도로와 거리는 둘 다 ‘길’이라는 큰 개념으로 뭉뚱그려질 것도 같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은 다른 뉘앙스를 가진다. 보통 도로라고 하면 이동의 목적이 주가 되는 자동차 중심의 길을 말한다. ‘고속도로’ ‘강남대로’같은 길이 떠오른다. 한자로 쓰면 ‘길 로(路)’자로 표현될 것이다. 반면, 거리라고 하면 길 위에서 여러 가지 이벤트가 일어날 수 있는 사람중심의 길을 말하는 것 같다. 홍대 앞의 ‘피카소 거리’나 ‘가로수 길’이 그 예이다. 한자로는 ‘거리 가(街)’로 표현된다. 우리는 산업사회를 겪으면서 효율성이 높은 도시를 추구했다.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자동차를 나를 수 있는 ‘도로’를 만드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강북의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는 나쁘게 평가받았고, 길이 부조했기 때문에 고가도로를 만들어서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했었다. 70년대부터 강남개발이 시작되면서는 직선의 그리드 도로망을 만들고 자동차가 시원하게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들었다. 이러한 직선 도로의 효율성은 무시할 수 없다. 파리가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을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나폴레옹 3세 시절에 ‘오스만’시장이 새로운 파리를 건설하면서 기존의 건물을 매입하여 모두 철거하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방사형의 직선도로를 구획하면서 마차와 자동차가 빠르게 다닐 수 있는 도로망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많던 개천을 모두 복개하여 자동차 도로로 만들고, 그 도로가 부족하여 그 위에 고가도로를 놓았다. 그것이 우리가 얼마 전에 철거한 31고가도로이다. 지금은 오히려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강북의 골목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거리’대신 ‘도로’를 만들어내면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 동네 문방구 앞길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은 적이 있다. 건물 앞에 상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잠시 쉬라고 놓은 벤치인 것 같았다. 그곳에서 동네 사람들을 만나고 여유롭게 일상을 구경했다. 거기에 잠시 앉아 있자니 몇 분이 안 되어서 아는 학부형을 만날 수 있었고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운 오후의 한 순간이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때 한 두시쯤 하교해서 집에 오면 동네사람들이 집 앞 골목길에 나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장어귀부터 돌을 차면서 오다가 우리 집 골목길에 들어섰는데 할머니와 일하는 누나가 앞집 할머니와 햇볕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은 행복한 기분으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이렇듯이 앞집사람하고 담소를 나누는 골목길은 공동의 거실이었다. 각자 집안에 마당이 있고 문을 열고 나가면 골목이 거실이 되는 것이다. 70년대까지 사람들은 외부공간을 내부공간처럼 사용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올림픽을 치른 중국은 한 가지 골칫거리가 있었는데, 북경에서 사람들이 잠옷을 입고서 거리를 거닌다는 문제였다. 중국정부는 서양의 매너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풍속이 창피하다고 느끼고 검열을 통해서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문화는 거리를 거실처럼 느끼고 사람들 사이의 공동체 의식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렇게 동네 사람들의 거실로, 때로는 아이들의 축구장, 야구장, 배드민턴장으로 사용되던 골목길은 마이카 시대가 오면서 막을 내렸다. 필자의 집에도 아버지가 차를 사시면서 연못과 꽃이 있던 마당에 시멘트를 치고 차를 주차했다. 어려서 꽃을 따고 열매를 갈아서 얼굴에 바르고 놀던 곳, 연못속의 물고기를 바라보던 곳이 사라져도 그 때는 반짝거리는 자동차에 정신이 팔려서 이게 어떤 변화인지 몰랐다. 축구를 하던 골목은 집집마다 차가 생겨나면서 주차장이 되었다. 자동차를 산 우리 식구는 아빠의 고향집에도 갈수 있었고 여기저기 계곡으로도 갈수 있게 해주었다. 자동차는 우리가 멀리 있는 공원에는 갈수 있게 해주었지만, 가까이 있던 마당과 거실 같던 골목길을 빼앗아 갔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얻은 것이 많다고 말해왔지만 사실 우리는 주변의 질 좋은 공간을 팔아서 물건을 산 것 밖에 아니었다. 

70~80년대를 거치면서 전체인구의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마당이 있는 집을 팔아서 온수가 잘 나오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는 마당대신 넓은 주차장을 얻었다. 하지만 마당이 없어지니 발코니까지 확장해서 집을 더 넓히려고 안달이었다. 마당과 골목길의 부재는 고스란히 더 넓은 평형의 아파트를 구하는 갈급함이 된 것이다. 작은 마당이 있는 주택이 100평짜리 주상복합보다 더 넓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차타고 1시간 가야 하는 만평짜리 공원보다 한 걸음 앞에 손바닥만 한 마당이나 열 걸음 걸어서 있는 운치 있는 골목길이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강북달동네로, 유럽의 골목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유현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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