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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산업 단지 속 남모를 적적함을 담은 『외딴방』(1999)‘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과 함께 작가의 과거를 대면하다

삼엄한 공장과 노동자들, 공단이 있는 소설 속의 구로동. 그곳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려온 기자는 낯선 거리 가운데 덩그러니 놓였다. ‘이 부근 어디일 텐데...’ 돌연 차에서 내려 벙벙하게 서있던 기자에게 펼쳐진 광경은, 다름 아닌 거대한 대형 아웃렛과 쇼핑몰을 메운 인파들이었다. 디지털단지 사거리는 떡볶이와 어묵, 꼬치 등 길거리 음식의 잡다한 냄새들로 가득했고 이는 곧 기자의 코를 정신없이 들쑤셨다. 여느 서울의 역세권들과 다름없는 이 장소는, 1994년과 1995년 신경숙 작가가 그녀의 장편소설 『외딴방』에서 떠올린 자신의 열일곱부터 열아홉 살까지의 공간이다. 또한 작가 자신이 잃어버린 열여섯과 스무 살 사이의 그 동떨어진 시간이자, 반면 잘 보관한 사진처럼 작가에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공간이다. 그 시절을 떠나와 작가 스스로 한 번도 돌아가 보지 못한 그곳에, 기자는 나름의 어렴풋한 상상 속 모습을 그리며 무심코 발을 내디뎠다.

너. 는. 우. 리. 들. 얘. 기. 는. 쓰. 지. 않. 더. 구. 나. 네. 게. 그. 런. 시. 절. 이. 있. 었. 다. 는. 걸. 부. 끄. 러. 워. 하. 는. 건. 아. 니. 니. 넌. 우. 리. 들. 하. 고. 다. 른. 삶. 을. 살. 고. 있. 는. 것. 같. 더. 라.

작가의 가슴에 물방울처럼 떨어져 박히던, 영등포여고 동창 하계숙의 목소리. 작가는 ‘그런 시절’에 대해 쓰고 있다. 가산동 마리오 아웃렛 부근의 쇼핑 시장을 지나, 기자는 가산디지털단지 한 중간에 위치한 ‘수출의 다리’에 올랐다. 과거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구로동맹파업 현장이던 가리봉오거리, 현재 디지털단지오거리 부근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의 시끌벅적하던 시장은 어느새 저 멀리서 작게 재잘거릴 뿐, 기자의 앞에는 휑하게 펼쳐진 쓸쓸한 도로만이 보인다. 파업 현장, 투쟁 현장이던 그곳은 시끌벅적한 현대 쇼핑몰의 모습과 황량한 도로의 모습으로 뿌연 안개 속에 불투명하게 놓여 어딘가 텁텁하게 느껴진다.

그냥 지나칠 만한 어느 부분은 너무 세밀하게 기억이 나는가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라야 할 어느 부분은 황폐한 거리처럼 텅 비어 있다.

급작스러운 씁쓸함에 기자는 다리에서 내려와, 방금 내려다보았던 그 도로를 걸었다. 도로의 왼편 너머로 보이는 철도에는 지상 전철이 거세게 지나가고 있었다. 철도를 따라 걷다 보니, 다시금 길거리 천막에 널린 옷가지들, 그 위에 뒤얽힌 사람들의 손과 목소리가 시끌벅적하다. 그리고 저 멀리 철길의 연장선 끝으로, 꽤 커다랗게 자리한 가산디지털단지역의 입구가 보인다.

나는 육 년 전에 이렇게 써놓고 있다. 수원행 전철이 통과하는 전철역이 그 동네의 시작이다, 고. 전철역 앞에서부터 길은 세 갈래로 나뉜다, 고. 길은 세 갈래였어도 어느 길로 접어드나 공단과 연결되었다, 고. 단지 그 집으로 통하는 좌측 길만 사진관과 보리밭다방 사이로 골목이 또 있었고, 그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고. 그러나 집들이 있는 그 골목을 벗어나 시장으로 통하는 육교를 건너고 나면 그 시장 끝도 역시 공단이었다, 고. 서른일곱 개의 방이 있던 그 집. 미로 속에 놓인 방들. 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들어가 이젠 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이 또 있던 삼층 붉은 벽돌집.

‘나’는 외사촌과 함께 밤기차를 타고 큰오빠가 있는 서울로 오게 된다. 직원훈련원에 입교하고, 또 그곳을 떠나 구로 1공단의 동남전기주식회사에 취직한다. 서른일곱 개의 방 중 하나, 가리봉동의 외딴방에 외사촌과 ‘나’, 큰오빠와 셋째오빠까지 함께 머무르게 된다. 많은 방을 가진 그 집, 계단 오른 편에서 두 번째 문. 희재 언니는 그 방에 혼자 살았다. 그 시절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앞, 언제나 실이 꿰어져 있는 미싱 바늘 앞에서 그들은 주름 잡힌 푸른 작업복을 입고 거친 손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노조 측의 잔업 거부와 회사 측의 회유. 그 투쟁 속에서 사진가가 되고 싶은 외사촌과 작가가 되고 싶은 열일곱의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노조지부장과 미스 리, 그들을 ‘배신’한다. 신길동의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산업체 특별학급의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 시장에서, 외사촌과 ‘나’는 국거리를 사고 육교를 지나 전철역 앞 외딴방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북적북적하게 남아있을 그 가리봉시장으로 가보고자 기자는 그들이 지나다닌 육교에 올랐다. 전철역 앞에 나뉘는 골목들은 어느 길목으로 가든 공단으로 통한다고 했다. 육교 위에서 바라본 기자의 눈에는 어느 길목에서도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공단 대신 푸르고 거대하게 번쩍이는 건물들만이 멀리에, 또 가까이에 보였다.

그들의 외딴방 창에서 공터 너머로 마주하게 되는 전철역. 그곳은 ‘가리봉역’으로, 과거 명절을 앞두고 고향에 가는 여공들로 인산인해였다고 한다. 가리봉역은 2005년 7월,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기자는 지하철 역사 내로 들어가 공단에서 퇴근 후 오후 5시에 신길동의 영등포여고로 등교하던 작가와 같이, 가리봉동에서 신길역으로 향했다. 역에서 나온 기자의 눈앞에는 또다시 황량한 도로와 함께 떠나온 가리봉동의 철길이 이어져 있다. 철도길 위 휑한 큰길가에서 안쪽으로 꺾어 들어가 보니, 적당하게 널찍한 골목을 따라 저 멀리 영등포여고가 보인다. 슬그머니 교내의 운동장까지 길을 따라 들어간 기자는, 텅 빈 운동장의 쌀쌀맞은 공허함에 도로 정문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날씨는 분명 포근했다. 기자에게 다가왔던 그 시린 황폐함은 무엇이었을까. 공허한 운동장에서 떠오른 것은 산업체 특별학급 학생들의 피곤함에 절어 퍼레진 얼굴들이었을까. 10월 어느 날 어두워지는 운동장에서, 대통령 서거를 말하는 늙은 교장의 목멘 훈화와 그에 눈물이 나지 않던 ‘나’에 대한 연상이었을까. 혹은 그 후의 비상계엄령과 학교를 나오지 않던 희재 언니의 공백에 대한 것이었을까.

 

“언니가 뭐라구 해도 나는 언니를 쓰려고 해. 언니가 고스란히 재생되어질지 어쩔지는 나도 모르겠어. (중략) 이렇게 엎드려 뭐라고뭐라고 적어보고 있을 때만 나는 나를 알겠었어. 나는 글쓰기로 언니에게 도달해보려고 해.”

“‥‥‥”

“‥‥‥뭐라구”

“‥‥‥”

“조금만 크게 말해봐? 뭐라는 게야”

“‥‥‥”

“응”

“‥‥‥”

“문학 바깥에 머무르라구? 날 보고 하는 소리야?”

“‥‥‥”

“문학 바깥이 어딘데”

“‥‥‥”

“언니는 지금 어디 있는데”

학교에서 도망 나와 교문 앞을 서성이던 기자는 결국 가리봉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공간을 벗어나 버렸다. 작가가 이 공간에 돌아온다면 어떤 정서를 느낄까. 큰오빠의 가발에 몇 번이고 큭 하며 웃던 희재 언니. 방문에 자물쇠를 굳게 채워놓은 채 한동안 보이지 않던 희재 언니. 그녀는 외사촌 송별회 이후 외딴방에 혼자 남은 ‘나’에게 휴가를 간다며, 저녁에 방으로 돌아오면 문을 잠가달라고 전한다. 열아홉의 ‘나’, 열아홉의 작가는 어두워진 시간에 교문을 나서 외딴방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그녀를 생각한다. 휴가를 떠난 그녀의 공백은 꽤나 길게 느껴진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냄새, 기다림’ 때문에, 항상 잠겨있던 희재 언니의 방문은 부수어졌다.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희재 언니의 죽음. 그녀의 죽음은 작가로 하여금 외딴방에서 도피하게 했으며, 반면 그 시간의 기억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작가는 말한다. 자신이 아무리 집착해도 소설은 삶의 자취를 따라갈 뿐이라고, 그 글을 써냄으로써 삶을 앞서나갈 수도, 나란히 걸어갈 수조차 없다고. 그리고서 자신의 빠른 체념과, 그 체념을 메워주던 장식과 연출, 과장들을 신랄하게 자기비판한다. 작가가 밝히고자 한 과거의 사실과 그 억압된 의식에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적 고투는, 그녀로 하여금 사실도 허구도 아닌 원고를 완성하도록 책상에 잡아두었다. 끝끝내 숨어버리는 것들을 삶의 다른 각도로 바라보며, 반면 그 이면에는 자신을 간헐적으로 괴롭히던 그녀 내부의 난폭함, 야만성과 무질서, 섬약함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다른 열정 속으로 건너가고 싶었다는 작가의 갈망이 엿보였다.

‥‥‥오빠. 문학을 생각할 때면 주인을 응시하는 개의 사무친 눈이 떠올라. 그 눈이 가진 운명의 아름다움을, 사랑을 섬기는 슬픔을, 보아선 안 될 것을 보아버린 침묵을.

 

홍준영 기자  mgs05038@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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