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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기자가 말하는 ‘기자’

이지혜(경영11)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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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겨레 신문사에서 노동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아직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새내기라 기자로서의 경험은 짧지만, ‘기자지망생’으로서는 몇 마디 나눠보고 싶다. 내가 ‘신문기자가 되겠다’는 말을 처음 입 밖으로 뱉은 건 대학 1학년을 마칠 즈음이었다.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뿐이었지, 뭘 준비해야 기자가 될 수 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언론지망생이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락날락, 부류의 책을 뒤적뒤적, 한국어능력시험 준비를 깨작깨작. 왜 우리 학교에는 언론 관련 학과가 없는 것인지 답답해하면서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다른 대학 언론 수업을 청강할 때도 저널리즘이 무엇인지를 배웠을망정 기자가 되는 방법을 배울 수는 없었다. 그 막막함은 만들어진 길을 찾는 사람의 것이었다. 이미 기자가 된 자의 후기, 유명 기자의 조언이나 어떤 수업 커리큘럼을 따라가면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그 어떤 길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언론사 시험에는 정해진 시험범위가 없다. 사교육의 수혜를 잔뜩 받고 자란 세대에게 이는 블랙홀과 같다. 정치·외교적 이슈부터 사회문화적 현상이나 원론적인 가치관까지 심지어 어느 해 어느 방송국에서는 우리 학교 정문 앞에 세워졌던 야외조소전 `일베상’까지 문제가 된다. 언젠가 농담처럼 ‘세상이 다 시험범위’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게 참이다. 그렇다 보니 모범답안도 없다. 언론사 시험은 자신감 없이 흔한 논리를 따라가는 답변이나, 객기만 남아 좀 튀어보겠다고 던지는 답변이나, 나 이렇게 많이 안다고(외웠다고) 자랑하는 답변은 필요 없다. ‘유명한 철학자 누구누구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이게 옳다’가 아니라 그 철학자 누구누구에 대해 수험생이 스스로 직조해낸 생각과 판단을 묻는 것이다. 이 점이 언론사 시험 준비생의 첫 그리고 마지막 과제다. 나까짓 게 국제외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떠들어봤자 아무도 관심 없을 텐데, 정치구조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내가 답을 내려봤자 반박당할 텐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그걸 버텨야 한다. 이는 실제 기자가 하는 일과도 상당히 통한다. 기자는 아무리 오래 한 분야에서 활동해서 풍월을 좀 읊는다 해도, 결코 전문가가 될 수 없다. 기자는 빠른 흡수력으로 사안을 파악하고 다양한 시각 중에서 가장 합당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해 기사를 쓴다. 그 기사를 읽은 독자가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기자는 주장하는 문장을 쓰지 않지만 한 편의 기사는 첫 문장부터 인터뷰이 선정까지 모두 기자의 판단 결과다. 매일 마감시간에 맞춰서 판단의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기자, 그런 기자를 뽑기 위한 시험에서 필요한 바는 매끈한 복제가 아니라 투박할지언정 스스로 만든 판단이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어떤 상품이 가치를 인정받고 소비자에게 팔리도록 시장에 내놓는 행위를 ‘목숨을 건 도약’이라 불렀다. 이게 온당한가? 설득력이 있나? 가치가 있나? 매 순간 의심이 따른다. 만들어진 길 찾기를 포기하고 조금씩 의심과 판단의 근육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에야 나는 길을 볼 수 있었다. 기사든 언론사 시험 논술이든 다 도약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도약을 응원하도록 만들고 싶다면 우선 자신의 도약을 따라가 보자. 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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