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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서현공간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다

공간, 우리는 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집, 다니고 있는 학교와 같이 일상 속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모두 건축물이다. 이렇게 건축가는 우리의 삶과 밀접히 맞닿아 있다. '시선재' '담류헌' 등의 건축물을 설계하고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1998),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2016) 등을 저술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서현을 만나보았다.

Q. 지난 25년간 건축가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건축가를 직업으로 삼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문과에 진학할 아이들과 이과에 진학할 아이들을 나누었다. 나는 수학이나 물리와 같은 과목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인문학과 관련된 과목을 공부하고자 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칠 때까지만 해도 내가 문과를 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 계기로 인해 이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신문에 '현대 건축의 반항아들'이라는 특집기사가 크게 나온 적이 있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기사는 현대 건축에서의 새로운 시도를 다뤘었다. 당시 이 특집을 인상 깊게 읽었고, 건축이라는 것이 흥미로운 분야라고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건축과에 진학하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건축가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Q. 건축가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풀어내는 방식이 다양한데, 본인의 주된 아이디어 원천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A. 건축 안에도 도서관, 학교, 병원 혹은 주택과 같이 다양한 유형이 있다. 다양한 유형의 건물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의 '요구조건'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요구조건들이 왜 필요한지'와 같은 질문들을 연구한다. 한 가지 예로 도서관을 들 수가 있다. 지난 시대의 도서관은 종이라는 매체의 저장소로서 존재해왔다. 종이에 지식과 정보를 인쇄한 책을 박물관과 같이 쭉 진열해 놓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도서관에는 정보들이 항상 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21세기의 도서관은 과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인문학적인 질문'이라고 한다. 나의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Q. 많은 이들이 건축가는 어떤 집에서 사는지 궁금해 하곤 한다. 건축가 서현은 어떤 유형의 집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A. 나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쓰레기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즉, 먹고, 싸고, 쓰고, 버리면서 지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양을 줄이면서 살고 싶다. 예를 들면, 최대한 화석연료를 덜 태우며 살고 싶다. 화석연료를 덜 사용하기 위해서는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부터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라는 직장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하철역 근처에 살아야하는데, 지하철역 근처에는 단독 주택을 지을 만한 땅이 없다. 또 지하철역 근처의 아파트는 도시가 가지는 장점을 고스란히 구현해준다. 아파트에는 작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차곡차곡 모여살기 때문에 효율성을 가진다. 이와 같은 이유로 아파트에 사는 것이 에너지와 쓰레기를 덜 소비하며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렇듯 살고 있는 집은 자신의 가치관 즉, 자신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와 연관이 깊다.

▲시선재

Q. '시선재', '담류헌' 등 건물에 우리나라의 옛 건물과 같은 전통적인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A.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멋'이다. '34번지'와 같은 이름을 지으면 멋이 없다. 이러한 '멋'은 건축물로 하여금 뿌리를 가지게 하며,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집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한다. 또한 이런 이름들은 왜 이런 집이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시선재'는 '수평선을 보는 집'이란 뜻이다. 이는 그 집에 거주하게 될 사람이 바다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담류헌'은 '말이 흐르는 집'이란 뜻이다. 그 집에는 어떤 한 가족이 거주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 가족은 아파트에서 살다가 아들 둘이 너무 뛰어서 쫓겨났다고 한다. 그들은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애들은 맘대로 뛰어 놀고 엄마아빠는 그 옆에서 맥주를 마시는, 즉,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집을 갖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이처럼 이름을 붙이는 방식은 '당호(堂號)'에서 출발한 것인데, 성명 대신에 그 사람이 머무는 거처의 이름으로써 인명을 대신하여 부르는 것을 당호라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집의 주인과 집의 관계, 그리고 그 집의 중요성에 대해 상기 시켜준다.

Q. 우리 사회에서 건축가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A. 건축가의 역할에는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가 있다. 낮은 단계에서 건축가는 자연 환경 속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을 위해 기후조건을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단순하게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공간, 비 막아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건축가의 높은 단계의 역할은 이러한 단계를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건축물은 기본적으로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방들은 어떤 방식이건 간에 조합된 인간 집합, 즉 사회를 담게 된다. 건물은 사회가 물리적으로 치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 혹은 집단은 상황에 따라 굉장히 유연하게 변동한다. 하지만 건물은 한번 완공되면 유연하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사회와 건물 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변화하지 않은 건물은 이전 사회를 담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교적 높은 단계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새로운 사회에 어떤 방식의 공간이 더 합리적이고 공정한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화장실에는 여자들의 변기 수가 더 적다.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의 크기는 똑같은데,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가 크기가 작으므로 남자 소변기가 여자 소변기보다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줄을 서게 된다. 이것이 사회적인 모순이다. 즉, 건축가들이 해야 할 일은 여성을 위한 변기를 늘리는 것, 장애인들을 위한 화장실 구조를 만드는 것과 같은 건축적 행위를 통해 지금은 더 이상 차별이 용인되는 시대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담류헌

Q. '홍대 앞'이라는 장소는 흔히 젊음과 낭만, 예술과 언더그라운드 문화, 개성 넘치는 자유의 거리로 대변된다. 건축가로서 홍대라는 장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A. 홍대 앞에는 정말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또한, 홍대 앞에서는 버스킹 공연과 길거리 곳곳에 그려져 있는 벽화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홍대 앞에는 한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음악이나 미술, 공연 등의 자유로운 문화 활동들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홍대 앞'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억압이 적은 도시 공간, 즉, 가장 적극적인 해방구였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는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간섭이 심한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눈치 또한 많이 본다. 홍대 앞이라는 장소에서 만큼은 내가 어떻게 입고 다니든, 누구와 다니든,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든 간에 전혀 다른 사람의 시선과 억압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홍대 앞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린 사회공간을 향해 가장 앞에 서는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건축가를 꿈꾸는 본교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간단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 장전해야 될 가장 중요한 무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상상력'이고 다른 하나는 '논리적 사고'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은 '달에다 기지를 만든다'와 같은 유치한 계획에 그치지 않고 인문학적 요소가 융합된 상상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밀물과 썰물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사과가 바닥에 떨어진다는 현상의 연관성을 생각하는 것이 인문학적인 상상력이다. 두 번째는 논리적 사고이다. 건축은 혼자 동굴에 들어가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과 이견을 조율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논리적 사고는 이러한 과정에서 꼭 필요하다. 이 두 개의 무기를 장착하는 것만이 끝은 아니다. 더 많이 상상할 수 있고 더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결국, 방향만 있을 뿐 끝은 없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건축가가 가져야하는 중요한 가치이고 무기이다. 건축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자신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학교를 졸업하는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김은성 기자  (ppicabong@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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