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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려거든
  • 고태원(광고홍보3) 학우
  • 승인 2018.05.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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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던 중간고사가 꼬리를 감추고 도망갔다. 도망갔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무엇인 가 휙-하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험 기간이 되면 ‘보이지 않는 무게’에 어깨가 쳐지곤 한다. 시험기간만 되면 괜스레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때론 심장이 쿵쿵 뛰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시험’이라는 단어에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낀다. 하루빨리 이 시기를 넘겨야한다는 일념과 시험이 끝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서로 밀고 당기며 그 가운데 서있는 나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한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비록 한 학기의 중간고사가 지나갔을 뿐이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본교 학우들에게 찬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지루하지만 긴 글을 쓰려한다.

  암을 치료하는 신약이 개발되고 있다고 치자. 임상실험 결과 100명 중 10명은 완치이고, 20명은 병증이 호전되고 있으며, 30명은 별 효과가 없었고, 20명은 더 나빠졌으며, 20명은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면 이 약을 시판해도 될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결코 이 약은 시판되어서는 안 된다. 아니 100명 중 단 한명이라도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킨다면 이 약은 시판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약’이 너무도 오랫동안 버젓이 팔려왔다. 바로 성적과 입시라는 약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고유한 능력과 상관없이 국가에서 혹은 학교에서 지정한 시험을 통해 등급이 매겨진다. 그 등급은 마치 육류처럼 상품의 가치, 즉 나의 가치와 고스란히 연결된다.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시스템은 불량품 ‘Zero화’를 외치며 공정을 조정하지만 시험과 성적에 목숨을 건 학교는 오히려 불량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꿈을 키워보기도 전에 무엇인가 불량품으로 낙인이 찍혀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통계청은 지난 4월 11일(수) ‘3월 고용동향’을 발표하고 실업률이 전년(4.1%)보다 0.4%p 오른 4.5%라고 밝혔다. 이는 2001년(5.1%)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다.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2,781만 1,000명 중 125만 7,000명이 실업 상태였고 실업자 125만 7,000명은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00년 3월 이후 최대였다. 청년실업난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다. 청년 체감 실업률을 보여주는 고용보조지표(확장 실업률)는 24.0%로 지난해와 같았다. 이처럼 대학생 취업난이 정점을 찍었고, 최저임금의 인상에도 불구하고 물가 또한 덩달아 올라 그야말로 ‘출구’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신세 한탄만 하고 있자는 말이 아니다. 민들레 씨앗이 시멘트 바닥을 뚫고 들어가 꽃을 피우는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은 목표,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나름의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어떻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있을까. 민들레가 결국 꽃을 피우듯이, 우리 학교 학우들도 꼭 꽃을 피울 날이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진부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항상 ‘상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의 상상을 뛰어넘어, 마음뿐 아니라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지자는 의미이다. 단순히 내 시야에서만 세상을 보려하지 말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해보아야 한다. 이에 대한 첫걸음이 ‘상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학생활을 하면서 교우관계를 증진한다거나, 학점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 자신 있게 경험해보라고 전하고 싶다. 

  여전히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힘든 사람이라고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고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뒤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저 문자와 숫자에 불과한 종이로 우리의 가치 등급을 매기거나 환산할 수 없다. 틀려도 좋다. 우리는 그 자체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대상자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아닌 바로 우리들이다. 다만, 그런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자신감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느 날, 누군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려거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그래, 틀려도 좋으니 일단 한 번 풀어 보자.”

 

고태원(광고홍보3)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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